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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충북 청주에서 차별금지법 제정 목요행동을 진행중인 김현석 위원장(중앙)과 활동가들
 지난 8월 충북 청주에서 차별금지법 제정 목요행동을 진행중인 김현석 위원장(중앙)과 활동가들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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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정의당 충북도당 성소수자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 차별금지법 제정 충북 연대 집행위원으로, 충북 스쿨미투지지모임으로, 충북대학교 국제경영학과 학부생으로, 심지어 13학번인데 아직 졸업 못한 좀 안된 학부생으로, 암 생존자로, 대형견 진수의 아빠로, 김○○씨와 김○○씨의 둘째 아들로, 정신질환 환자로, 많은 이들의 친구로서 살고 있는 28살 시스젠더 게이 성소수자 남성 김현석이라고 합니다." - 결의대회 발언 중

지난 11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차별금지법 제정 쟁취 결의대회에서 n번째 커밍아웃을 하고 나서,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서 연속기고 한 꼭지를 제안해 주셨다. 얼떨떨하고 놀랐지만 그만큼 감격스러웠다. 약간 성덕이 된 것 같은 기분이랄까.

2~3년 전, 밥공기만큼의 빛이 겨우 들까 말까 한 원룸 침대에 몸을 접고 누워서는 눈 떠서 다시 눈 감을 때까지 차별금지법이나 성소수자 같은 키워드로 구글링만 하루 종일 했던 날들이 스쳐갔다. 불과 몇 년 전이지만 참 이런 글이 귀했었다. 마음이 무너지는 글에 무너진 마음마저도 부숴버리는 댓글들, 나를 어떻게든 방구석으로 몰아넣는 글들이 대부분이었다.

간혹 운이 좋으면,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서 용을 쓰는 사람들이 있는지', '그럼에도 얼마나 이 법의 제정이 어렵고 먼 미래에 있는 일인지'. 아니면 '성소수자가 자꾸 죽는 것이 사실은 정말 사회적인 문제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용기 내서 말하는 글을 한두 개 정도 발견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이렇게 어렵사리나마 찾은 마음이 무너지지 않는 글들은 두고두고 읽으면서 외웠다. 나중에 게이라서 곤란해질 때나 혹시 모를 커밍아웃할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운이 좋아서 나도 설명 못하는 어려운 내 이야기를 기가 막히게 풀어놓았거나 그걸 위해 싸우는 사람들에 대한 글들을 볼 때면 질질 울었다.

결국 어느 날에는 법원 앞에서 무지개 깃발을 흔들면서 친구들과 부둥켜안은 채 울고 있는 내 모습 같은 걸 상상하기도 하면서. 좋아요를 누르고 카카오톡 내게 보내기로 공유도 하고 기사에 후원금을 보내기도 했다.

용기 내서 이런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 줘서 고마웠고 그때는 할 수 있는 일이 그런 것뿐이었다. 잠시나마 세상 어딘가에는 내가 이런 사람이라서 미워하지 않고, 오히려 옹호하고 헤아리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게 너무 좋았다. 조금 덜 외로웠다.

겁이 났다
 
"제가 이런 사람이라는 게 요즘은 보통 그냥 그렇습니다. 그런데 또 종종 너무 버겁습니다. 들킬까 봐 조마조마하고 부끄러울 때도 있고 외롭고 무섭기도 합니다. 때로는 같이 있는 사람이 부끄럽고 무서워하기도 합니다. 부모님일 때도 친구일 때도 있습니다. 저도 외롭고 무섭지만, 그럴 때는 아닌 척합니다.

어제는 친구와 시내 한복판에서 저를 반대한다는 피켓이 길을 이어가며 전시돼 있는 걸 봤는데, 친구가 취업 면접 때문에 좀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그냥 괜찮은 척했습니다. 저희 집 바로 옆 교회에는 동성애 독재법을 반대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고 저는 매일 저녁마다 건너편 횡단보도에서 그 현수막을 보면서 신호등을 기다립니다. 그래도 보통은 그냥 그렇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어렵게 찾던 글을 직접 쓰게 되다니. 기가 막힌 행운이다. 자랑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나 이번에 칼럼 쓴다."

서둘러 주변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자랑했다. 칼럼이라는 어감이 갖는 그 세련되고 근사한 것에 내 이름이 달린다니. 이 놀라운 소식을 스스로 여기저기 빠르게 전했다. 대부분 놀라며 축하해줬고 심지어 부모님도 이번엔 조금 놀라신 것 같았다. 그것도 좋은 쪽으로.

어깨가 으쓱해지고 숨은 달떴으며 심장이 엄청 빨리 뛰었다. 특히 아버지가 굉장히 자랑스러워하셨다. 나중에 기자 되는 거 아니냐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까지 뿌듯이 하시면서 글이 올라오면 보내달라고 하셨다. 주변에 자랑하고 싶다고. 한순간에 피가 차게 식었다.

"아부지, 그런데 나 내용이 좀. 아부지가 어디 얘기하시기엔 좀 그렇지 않을까. 다들 알게 될 텐데."

깃털처럼 가볍게만 느껴지던 기분이 삽시간에 가라앉았다. 방바닥에 붙은 몸 구석구석 무게가 실감 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마냥 기뻐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한테 자꾸 이렇게 말할 기회가 생겨서 내 이야기를 하다 보면 부모님이 곤란해지시지 않을까.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을, 조금은 멀찍이서 가슴 아프게 바라 볼 자리조차 뺏겨서 나와 같은 자리에서 이 상황을 같이 겪게 하는 건 아닐까. 겁이 났다.

"뭐 어떻노, 인제 퇴직인데. 상관없다. 까짓 거."

아버지는 머뭇거리거나 탐탁지 않은 내색을 안 하시려고 힘을 줘서 말씀하셨다. 어떤 기분일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큰 마음먹고 하신 말씀이지만 생각하면 막막하고 겁이 나셨을 것이다.

한번 생긴 꼬리표는 우리를 구분 짓고 괴롭히겠지만
 
"그래서 편하게 살려고 매일매일 애쓰고 있습니다. 병원에서 약도 꼬박꼬박 받아먹고 학교도 열심히 다니고 친구들이랑 잘 지내고 강아지 산책도 매일 합니다. 겁내지 않고 외롭고 무서워하지 않으려고 이렇게 활동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괜찮지 않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걸 다하고 있는데 여전히 조마조마하고 외롭고 무서울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듣고 싶던 말이었지만, 내가 쓴 글을 다른 직장 동료 분들에게 자랑하고 나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아버지 뒤에서 오갈까 생각하니 전혀 기쁘지 않았다. 그 집 아들 동성애자래.

뭔가 문제 있는 가정으로 아주 쉽게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찧고 찧이다 그렇게 곤죽이 된 험담을 알게 되었을 때 이미 아버지는 그들에게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사실은 그 집 애가 '어떤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며, 이제껏 아버지가 사람들과 보낸 시간까지 소용없을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이들은 이미 이해한다는 듯 아버지에게 아버지를 설명할 것이고, 무례하고 잘못된 내용을 바로잡기 위해 '그게 아니라'고 운을 띄우는 순간 아버지는 불편하고 번거로운 사람이 되어버릴 것이다. '표본'에서 '이웃'이나 '친구'로, 심지어 '가족'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아주 어렵고 오래 걸릴 것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부러 괜찮게도 말해보고 무게 잡고 설명도 계속해보겠지만 그것마저도 여의치 않을 것이다.

한번 생긴 꼬리표는 아무도 몰래 우리를 구분 짓고 괴롭히겠지만 여간해선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결국 '우리가 신경 쓰지 않으면 된다'고 스스로 위로하고 마음을 다잡아도, 늘 셔츠 밑에 꼬리표가 나와 있는지 불안한 마음을 집 밖에 나서는 순간부터 집에 돌아와서 잠에 들고 나서 꿈속에서까지도 느끼게 될 것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번갈아가며. 텔레비전 화면에서도 신문지 위에서도. 죽을 때까지. 영원히.

아버지는 상관없다 하셨지만, 나는 절대로 상관없지 않을 것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아버지도 조금은 아실 것이다. 결코 상관없지 않았던 이들을 살면서 계속 봐오셨을 테니까. 그리고 당신께서도 그런 사람들과는 절대 상관할 일 없을 거라고 생각하셨을 테니까.

나의 용기가 당신의 용기가 되길
 
"이 이야기는 제 이야기지만 여기 계신, 또 여기엔 안 계시지만 그냥 마음 편하게 잘 살기 위해서 매일 매 순간을 열심히 채워나가면서 살고 계시거나 그렇게 살고 싶으셨던 모든 분들의 이야기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단 한 명도 남겨두지 않겠다는 차별금지법의 선언은 외롭고 무서운 날들이 계속 이어져서 용기를 완전히 잃을 것 같은 순간에도, 아직 제가 시도해보지 못한 방법들과 경험해보지 못한 날들을 상상하게 합니다. 저와 모두에게 계속 그냥 그렇고 편하고 괜찮게 살 수 있는 기회가 꼭 필요합니다. 저도 아무도 그냥 그런 사람이라서 외롭고 무섭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와 우리 모두는 그래서 차별금지법이 꼭 필요합니다."

온라인 결의대회에서 '단 한 명도 남겨두지 않겠다'는 차별금지법의 선언을 되짚으면서, 나도 아무도 그냥 그런 사람이라서 무섭고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사실 나는 아무도 아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당신이라서 손가락질을 받는 걸 상상할 필요가 없고 그래서 그런 걸 견뎌낼 배포나 용기를 따로 준비한 적이 없는 것처럼, 나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너무 무섭다. 무섭지 않기 위해 용기를 내면 그 뒷일을 위해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까지도 감당할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알기에 더 무섭다. 나는 결코 준비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용기를 내본다. 여전히 아무도 '그냥 그런 사람'이라 무섭고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나는 이 글을 올리고 나서 다행히 별 일이 없을 수도, 아니면 주변의 누군가가 읽게 되어서 별 일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별 수 없지 않은가.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조금이라도 덜 외로울 수 있다면 이 방법이 직빵이라는 것을 내가 알고 있다. 당신이 어쩌면 지금 외롭고 무서울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이 희망 없는 이야기를 쓴 것은, 이걸 쓰는 지금 쓰는 이와 읽는 이가 아직 있다는 것이 희망이기 때문이다.

이건 앞으로 닥쳐 올 모든 일에 함께 서 있을 당신과 나를 위해 용기 내는 행동이며, 우리는 이렇게 용기내고 조금씩 서로를 덜 외롭게 하면서 계속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아부지, 잘 읽으셨어요?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김현석 정의당 충북도당 성소수자위원회 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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