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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스토너>
 책 <스토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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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해내야할 일을 잘 마쳤는가 불편한 날이 있다. 오늘 일로 시작된 자책은 '얼마 전의 프로그램은 아쉬움 없이 해냈나', '학생 때는 왜 더 노력하지 않았지'와 같은 생각으로 이어진다. 결국 인간관계의 의심으로까지 번지고 반복되는 후회에 쉽게 잠이 들지 못한다.

자신감이 한풀 꺾이고 침대 아래로 푹 가라앉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회피할 마음으로 스마트폰이나 다른 뭔가를 뒤적거려볼 수도 있지만 금세 더 큰 자괴감이 들거라는 걸 안 후로는 그저 밀려드는 파도를 맞이한 채로 파도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린다. 

그런 날 소설이 위로를 준다. 특별한 사건 없이 잔잔히 흘러가는 이야기들이 느슨한 듯 잘 짜여진, 그런 소설이 좋다. 커가면서 한꺼풀씩 이상이 벗겨지는데, '보통의 인생은 이런 것이다'라고 알려주는 것 같다. 누구나 실수하고 다시 돌아가고, 그리고 그저 살아낸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소설 <스토너>는 에세이 모임 선생님의 추천으로 내 책장으로 왔고, 거의 곧바로 꺼내 읽었다. 책 소개를 읽자마자 긴 흐름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잘 맞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출간 후 잊혀져 있던 작품이 50년이 지나고서야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스토리도 마음에 들었다. 이전 시대의 작품을 읽으면 시간과 시간, 공간과 공간 사이의 여유라고는 없는 현재와 다르게 느긋한 분위기가 있어서 좋다. 다 읽고난 후 다시 책장에 꽂을 때는 당분간 인생 소설이라고 해도 되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주인공인 스토너는 농부인 아버지의 바람으로 농업을 배우러 대학에 간다. 하지만 농업 대신 문학에 빠져 교수가 된다. 1차세계대전에 참전하는 동료들과 달리 학교에 남기로 결정했고 학생들에게 달갑지 않은 시선을 받는다. 파티에서 첫눈에 반한 여인 이디스와 결혼하지만 이어진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않았다.

어머니로서의 짐을 부담스러워했던 부인 대신 아버지로서 딸에게 최선을 다한다. 나중에 진정한 사랑 캐서린을 만나지만 떠나보내게 된다. 동료 교수 로맥스와의 갈등으로 교수 생활 내내 부딪히며 부당한 대우를 당하지만 함께 공격하는 대신 인내하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버텨낸다.

이 소설이 아름다운 이유는 매력적이지 않은 주인공 스토너가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으려 살아가는 인생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스토너는 인생 전체에 걸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선택하고 그 선택에 따라 이어지는 인생 그대로를 받아들인다. 다른 화려한 주인공들에 비해 읽는 동안 내 삶에 가까이 스며드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는 스토너에게 고통을 주는 인물을 악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인생에서 절대 악과 선은 없듯 스토너의 삶에 얽혀 있는 가닥을 풀어 전체를 본다면 각각 인물들을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 스스로도 다른 사람들의 삶에 얽혀 살아가고 있음을 잊지 않도록 다시 새겨보게 되었다. 

마침내 죽음을 앞둔 스토너는 스스로에게 여러번 묻는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교육자로서의 신념, 사랑, 우정 그리고 실패한 것들을 떠올린다. 마지막에서야 실패라는 것이 '그의 인생과 비교하면 가치없는 생각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죽음은 상상하기도 싫고, 현재가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자주 생각하고 말한다. 소설 속에서 죽음은 묵묵히 살아낸 인생의 자연스러운 마지막이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대로의 삶을 충분히 살아낸다면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고 말해주고 있다. 

인생에서 실패의 순간은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스스로가 원하는 삶을 살았다고 확신할 수 있다면 충분히 성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두운 마음에 떠오르는 실패의 연대기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면 조금은 안심해도 되겠지. 스스로가 하찮게 느껴지고 위로받고 싶은 날이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도 올라갑니다.


스토너 (초판본, 양장)

존 윌리엄스 (지은이), 김승욱 (옮긴이), 알에이치코리아(RHK)(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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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시골 출신. 조상신의 도움을 받아 소소한 행운을 누리며 군산에서 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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