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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향교는 고려 인종5년(1127) 화개산 북쪽 고구리 향교골에 처음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향교이다. 홍살문을 지나 외삼문으로 가는 오르막길에 감나무 잎들이 팔랑이고 있다.
 교동향교는 고려 인종5년(1127) 화개산 북쪽 고구리 향교골에 처음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향교이다. 홍살문을 지나 외삼문으로 가는 오르막길에 감나무 잎들이 팔랑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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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바람이 불 때마다, 감나무 잎들이 쏴아 소리를 내며 팔랑거린다. 감나무들은 인천 교동향교(강화군 교동면 교동남로 229-49) 초입인 홍살문에서부터 정문에 이르는 오르막길 양옆으로 길게 늘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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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잖아 저 감나무 가지엔 해풍을 맞으며 가을햇살을 품은 홍시들이 주렁주렁 달릴 것이다. 태극문양이 그려진 외삼문 오른편으로 크고 작은 비석들이 모여 있다. 39기의 비석들은 교동도를 다스렸던 '겸부사'들의 선정비다.

향교 안으로 들어가자 왼편 서재와 오른편 동재 사이로 명륜당이 눈에 들어온다. 계단을 올라 내삼문을 지나니 왼편에 서무, 오른편에 동무가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건물인 대성전을 호위하고 있다. 명륜당은 교육을 하는 곳이고, 대성전은 제사를 올리는 곳이다.

향교는 공자와 같은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학생을 가르치기 위해 국가가 설립한 교육기관이다. 고려시대 과거제를 실시하고 학교제도를 정비하며 시작한 향교는 조선시대 유교이념의 보급과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며 전국적으로 확대 설치됐다.
 
교동도는 삼국시대 이래 해상교통의 요지로 조선 중기엔 경기·황해·충청의 삼도수군을 관리하던 삼도수군통어영이 설치됐던 섬이다. 교동읍성은 조선 인조7년(1629) 교동에 경기수영을 설치하면서 쌓은 성으로 높이 6m, 둘레 430m의 읍성이다.
 교동도는 삼국시대 이래 해상교통의 요지로 조선 중기엔 경기·황해·충청의 삼도수군을 관리하던 삼도수군통어영이 설치됐던 섬이다. 교동읍성은 조선 인조7년(1629) 교동에 경기수영을 설치하면서 쌓은 성으로 높이 6m, 둘레 430m의 읍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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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향교는 고려 인종5년(1127) 화개산 북쪽 고구리 향교골에 처음 세워졌다. 우리나라 최초의 향교였다. 현존하는 243개 향교 가운데 가장 오래된 향교이기도 하다. 교동도는 중국에서 바닷길로 한반도에 올 때 처음 거쳐야 하는 땅이었다. 영조17년(1741) 교동읍이 읍내리로 옮겨지면서 교동향교는 지금의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조선시대 들어와 향교는 교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봄·가을로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고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올리는 정도의 상징적 공간이 됐다. 전교(典校) 1인과 장의(掌議) 여러 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는데 교동을 찾는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이다.
 
공자와 같은 성현의 위패를 모시어 제사를 지내는 명부전
 공자와 같은 성현의 위패를 모시어 제사를 지내는 명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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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부전으로 오르기 위해 거쳐야 하는 문
 명부전으로 오르기 위해 거쳐야 하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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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운선 지나던 요충지
 

교동향교를 빠져나와 삼사 분쯤 갔을까. 성문을 중심으로 양쪽 성벽이 다른 빛깔을 띤 교동읍성(읍내리 577번지)이 나타난다. 수년 전만해도 읍성은 문루만 남아 있었는데 지금은 지붕을 얹었고 성벽도 새롭게 쌓은 모습이다. 교동읍성의 실루엣은 푸른 가을하늘을 배경으로 더 선명하게 빛난다.

임진왜란(1592), 정유재란(1597)을 겪은 조선은 요충지에 수군진을 설치하고 종3품의 수군첨사를 파견해 바다를 지켰다. 교동도는 조운선이 지나는 중요한 곳이었으므로 남산포에 삼도수군통어영이 설치됐다.

교동읍성은 조선 인조7년(1629) 교동에 경기수영을 설치하면서 쌓은 성이다. 높이 6m, 둘레 430m의 읍성이다. 동·남·북쪽 3곳에 성문을 두고 망을 보기 위한 문루를 세웠는데 동문은 통삼루, 남문은 유랑루, 북문은 공북루라 불렀다. 처음 성을 쌓은 이후 영조29년(1753년)에 수리를 했으며 고종21년(1884)에 남문을 다시 세웠다.

고종27년(1890) 동문과 북문을 다시 세웠으나 현재는 찾아볼 수 없다. 현재 남은 것은 남문인 유랑루로 1921년 폭풍으로 무너져 반원 형태의 홍예문만 남았던 것에 지붕을 얹고 성벽을 더 쌓은 것이다.
 
실향민들 수구초심 간직한 대룡시장, ICT관광플랫폼인 교동제비집


교동에 가면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 대룡시장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교동도 사람들과 황해도 연백사람들은 옆집처럼 드나들었다. 장이 서면 장을 보러 갔고 선남선녀의 중매가 이뤄지기도 했다. 그만큼 교동도와 연백 사람들은 정서적으로 매우 가까웠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연백 사람들이 교동도로 건너왔다. 전쟁이 잠잠해지면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금세 70년이 흘렀다. 대룡시장은 실향민들을 중심으로 연백의 그것과 비슷하게 지어졌다. 교동이발관, 동산약방, 중앙신발, 거북당 등 지금도 여전히 1960~1970년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찰보리 호두과자와 같은 먹거리도 풍성하다.
 
교동이발관, 동산약방, 중앙신발, 거북당 등 지금도 여전히 1960~1970년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대룡시장. 사진은 옛 이발관 풍경은 그대로 둔 채 분식집으로 운영 중인 교동이발관.
 교동이발관, 동산약방, 중앙신발, 거북당 등 지금도 여전히 1960~1970년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대룡시장. 사진은 옛 이발관 풍경은 그대로 둔 채 분식집으로 운영 중인 교동이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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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제비집은 자전거타기 등 교동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플랫폼이다.
 교동제비집은 자전거타기 등 교동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플랫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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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그리워하는 실향민들에게 제비는 고향에서 온 반갑고 귀한 손님이었다. 교동제비집은 ICT기술을 접목한 관광플랫폼이다. 제비집엔 야외무대, 기념품·특산품 판매소가 있으며 자전거로 교동한바퀴, 평화의 다리 만들기, 교동신문 만들기, 교동관광명소 가상체험(VR), 대룡시장투어, 추억의 사진촬영, 순무김치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이 진행된다.

교동면은 전 지역이 민통선과 군사시설보호구역이며 어로한계선이 있어 조업도 제한되는 지역이다. 교동 쌀은 품질이 좋아 여러 지역에서 인기 있는 상품이며 콩, 수수, 고구마, 인삼도 재배한다.

화방석, 꽃삼합, 광주리, 손가방 등 완초공예품은 강화도 화문석만큼이나 이름이 높다. 2014년 교동대교가 개통하면서 육지와의 연결이 편리해졌다.

교동도 다을새길​... 화개산 정상에 오르니 연백 땅이 한 눈에​​

'다을새'는 교동의 옛 지명인 달을신(達乙新)에서 유래한 말이다. 교동도는 삼국시대 이래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조선 중기엔 경기·황해·충청 삼도 수군을 관할하는 삼도수군통어영이 설치됐다.

한강과 임진강, 예성강이 하나로 만나는 어귀에 위치한 교동도는 고려와 조선 왕족의 유배지이기도 했다. 광활한 간척지가 펼쳐져 있으며 철새떼들의 이동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월선포를 출발해 숲길을 따라가다 보면 가장 먼저 교동향교를 만난다. 공자님께 인사를 드리고 화개산으로 오르다 보면 고려 말 문신 목은 이색(1328~1396)이 머물렀던 화개사를 지난다.
 
교동다을새길은 교동의 옛 이름 가운데 하나인 다을새를 써서 만든 것으로 월선포선착장에서 시작해 교동을 한바퀴 돌아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코스이다. 사진은 교동읍성 석축 모습.
 교동다을새길은 교동의 옛 이름 가운데 하나인 다을새를 써서 만든 것으로 월선포선착장에서 시작해 교동을 한바퀴 돌아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코스이다. 사진은 교동읍성 석축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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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정상에 오르면 섬 전체는 물론, 북한 땅까지 눈에 들어온다. 정상에서 석천당을 지나 산업화시대 골목시장풍경이 남아 있는 대룡시장에서 간식을 먹고 교동읍성을 돌아 월선포선착장으로 오면 어느덧 한나절이 훌쩍 지난다. 교동제비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돌아도 좋으며, 화개사 앞에서 숲길로 접어들어 면사무소 방향으로 가는 12.7km의 코스도 있다.

■ 왕골공예마을 가는 길(월선포선착장~월선포선착장 16km, 소요시간 5시간)​​

월선포선착장->교동향교->화개사->화개산정상->석천당->대룡시장->남산포->교동읍성->동진포->월선포선착장

문의 032-934-1906​

글·사진 김진국 총괄편집국장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천시 인터넷신문 'i-View'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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