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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순 박사는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 후 한신대학교에서 신학 박사학위를 받고, 한신대 연구교수 등을 지냈다. 그는 지난 1980년 전두환 정권에서 '한울회사건'으로 2년 반 넘게 옥고를 치렀다. 당시 이 한울회사건의 1심 판사는 한때 대통령후보였던 이인제(1948- )였고 대법원 판사는 이회창(1935- )이었다.

지난 김대중 정부에서 박재순 박사는 한울회사건 때문에 옥고를 치른 것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아 민주화운동유공자로 표창을 받았다. 하지만 지난 2015년 박근혜 정권의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그는 한울회사건으로 서울고등법원과 대법원에서 다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는 2기 진실화해위원회에 한울회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을 신청했고 지금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씨알사상연구소 소장으로서 지난 2008년 세계철학자 대회에서 '유영모, 함석헌 철학 발표회'를, 2009년 한일철학대회에서 '씨알철학과 공공철학의 대화'를 주관했다. 그는 그동안 <다석 유영모의 철학과 사상>, <함석헌의 철학과 사상>, <삼일운동의 정신과 철학>, <애기애타: 안창호의 삶과 사상> 등의 책을 펴냈다.

내가 그를 존경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가 행동가이자 동시에 사상가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말로만 또는 글로만 떠드는 이른바 '키보드 워리어'들이 있다. 또한 생각 없이 무조건 일만 저지르고 보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그는 깊은 생각을 곧 과감한 행동으로 옮긴다. 그런 박재순 박사가 최근 <도산철학과 씨알철학>을 펴냈다. 지난 9월 2일부터 27일까지 그와 이 책과 관련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해 싣는다.
 
박재순 박사
 박재순 박사
ⓒ 박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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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산철학과 씨알철학>을 쓰기로 마음먹은 동기는?
"나는 대학시절부터 함석헌 선생님께 배우며 함 선생이 닦아낸 씨알사상을 연구했다. 함석헌은 오산학교에서 이승훈과 유영모의 영향을 받고 오산학교의 교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자신의 삶과 사상을 형성해갔다. 오산학교는 안창호가 일으킨 구국 교육운동의 뜻과 정신을 바탕으로 세워지고 운영된 학교다. 함석헌의 씨알사상은 안창호의 정신과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씨알사상의 뿌리를 밝히고 완성하기 위해서 도산의 사상을 연구했다.

동서문명의 만남과 민중의 주체적 자각으로 전개된 한국근현대의 중심에서 도산은 시대정신을 구현하며 살았던 인물이다. 도산은 독립협회, 신민회, 3·1운동, 임시정부로 이어진 한국근현대의 중심에 있었다. 도산의 삶과 사상을 연구하면 한국근현대의 정신과 철학을 밝힐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 이 책에서 강조하고자 한 주요 핵심 내용은 무엇인가?
"도산, 유영모, 함석헌의 철학이 하나로 이어진 한국근현대의 철학이며 한국근현대가 생명과 역사의 진리를 인식하고 실현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시대라는 것이다. 역사 속에서 자신의 생명을 온전히 불태우며 살았던 도산, 유영모, 함석헌은 '나'를 탐구하고 실현한 민주·보편적인 생명철학자임을 강조하려 했다. 도산, 유영모, 함석헌은 한국근현대의 창조적 철학자이면서 동서양을 아우르는 세계보편적인 생명철학자였다."

- 20세기를 살다간 도산, 다석, 함석헌의 삶과 사상을 아는 일이 21세기를 사는 오늘 우리들에게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도산, 다석, 함석헌이 살았던 한국의 20세기는 동서양의 세계인류가 풀어야 할 문제와 과제가 응축된 시대였다. 이들의 삶과 사상은 인류가 걸어가야 할 길을 밝히고 새 시대의 비전과 철학을 제시한 것이다. '나'를 존중하고 사랑하고 바로 세움으로써 민족과 국가를 바로 세우고 세계정의와 평화에 이르는 길을 이들이 열어놓았다.

21세기의 사람들은 저마다 저다운 삶을 개성과 창의를 가지고 주체적으로 살면서 남에게 유익이 되는 생산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먼저 나를 존중하고 사랑하면서 남을 사랑하고 존중하며 이롭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도산, 다석, 함석헌은 나를 존중하고 사랑하면서 남을 존중하고 이롭게 하면서 나라를 바로 세우고 인류의 정의와 평화를 이루는 삶의 길을 열고 그 길로 갔던 이들이다. 이들의 삶과 사상은 21세기 오늘 우리의 삶을 위한 사상이다."

- 도산은 철학자라기보다는 실천가, 행동가라고 보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도산은 뛰어난 실천가, 행동가, 조직가, 교육자였다. 그는 동서양을 아우르며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깊은 정신과 철학을 지닌 위대한 사상가였다. 그의 철학이 삶과 역사의 가치와 목적을 실현하는 실천적인 생활철학이었기 때문에 유물론과 관념론, 수학과 과학에 의존하는 서양철학자들은 도산의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평가하지 못했다. 동양철학자들도 동양고전의 틀 안에서 생각했기 때문에 근현대의 시대정신을 구현한 도산의 생명철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평가하지 못했던 것이다."

- 도산의 삶과 사상 형성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인물이나 사건은?
"도산은 유길준의 '서유견문'(1895)을 읽고 큰 영향을 받았다. 유길준은 문명개화를 내세우는 개화파였으나 '실상개화(實狀開化)', '자주개화(自主開化)'를 주장함으로써 한국의 실정과 상황에 맞는 문명개화를 주체적으로 할 것을 주장했다. 그는 또한 군민공치(君民共治)를 주장함으로써 민중을 불신하고 멸시하는 다른 개화파들과는 달리 민중을 정치의 주체로 존중하고 앞세웠다. 도산은 한국근현대의 인물들 가운데 유길준을 가장 존경했다. 도산은 유길준이 조직했던 흥사단의 이름을 따서 후에 미국에서 독립운동과 인격수련을 위한 조직인 흥사단을 창립했다.

도산은 서재필과 윤치호가 이끌었던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에 적극 참여하면서 새로운 문명과 민주정신을 배우고 익히게 되었다. 그는 21세 때 평양에서 독립협회 관서지부가 주최한 관민공동회에서 '쾌재정 연설'을 하였다. 그는 민을 깨워 일으키는 쾌재정 연설을 통해서 민중(민족)과 하나로 되는 깊은 체험을 했고 평생 초심을 잃지 않고 민을 깨워 일으켜 나라를 바로 세우는 일에 헌신했다. 그는 미국에서 공립협회를 조직하고 한국에 돌아와서 신민회를 조직하였으며 훗날 상해에서 임시정부를 조직해 민을 깨워 일으키고 나라를 바로 세우는 일에 몸을 바쳤다."

- 일제강점기 많은 민족지도자들이 처음에는 독립운동에 앞장섰다가 말년에는 이광수나 최남선처럼 변절하고 친일파가 되었다. 도산이 친일파가 되지 않고 끝까지 변절하지 않을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왔다고 보는지?
"도산은 젊은 시절에 민중과 하나로 되는 깊은 체험을 했다. 그 자신이 민중의 한 사람이었으며 죽을 때까지 민중과 하나로 살아가는 민주정신을 지켰다. 그러므로 그는 민족(민중)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다. 하늘을 우러르는 겸허한 맘으로 몸과 맘을 갈고 닦는 자기 수양을 철저히 했고 자기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맘 그대로 동지와 친구를 존중하고 사랑했다.

그는 자신과 민족(민중)을 분리시키지 않았고 '하늘과 나'를 버리지 않는 생명철학과 정신을 잃지 않았다. 그는 환경과 조건에 흔들리지 않는 초월적인 하늘의 정신과 신념을 끝까지 견지했다. 민중과 하나로 되는 민주정신과 초월적인 정신을 지녔기 때문에, 생명과 역사의 주인과 주체인 '나'를 잃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친일파가 되지 않고 자신의 신념과 정신을 지킬 수 있었다."
 
도산철학과 씨알철학
 도산철학과 씨알철학
ⓒ 박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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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산, 다석, 함석헌이 그 어려운 삶의 여정 속에서도 죽을 때 까지 절대 낙관과 희망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도산, 다석, 함석헌은 모두 자신의 삶과 정신 속에 하늘을 품고 있었다. 하늘의 초월적인 정신과 신념을 지녔기 때문에 어떤 난관과 시련 속에서도 그들은 절대낙관과 희망을 유지할 수 있었다.

생명은 본래 물질 안에서 물질을 초월한 '나'를 가진 것이다. 물질 안에서 산다는 점에서 물질적 조건과 상황에 영향을 받지만 물질을 초월한 '나'를 가진다는 점에서 생명은 어떤 조건과 상황에서도 낙관과 희망을 가질 수 있다. '하늘과 나'를 가진 참된 생명철학자였던 도산, 다석, 함석헌은 모두 절대 낙관과 희망을 가지고 살았던 이들이다.

- 특별히 전광훈(목사)을 생각하며, 오늘 한국기독교인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고 그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한국기독교인들의 어떤 노력이 더욱 절실하다고 보는지?
"전광훈을 비롯해 많은 기독교인들이 기복신앙과 샤머니즘에 깊이 빠져 있다. 도산, 다석, 함석헌은 기복신앙과 샤머니즘을 극복하고 청산했으며, 민주적, 과학적이며 깊은 도덕과 영성을 지닌 보편적 생명철학을 형성했다. 기독교뿐 아니라 불교도 사회적 영향력과 권위를 갖지 못한 까닭은 기복신앙과 샤머니즘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기복신앙과 샤머니즘을 극복하고 청산하지 못하면 기독교도 불교도 21세기의 종교가 될 수 없다. 전광훈처럼 지성과 덕성이 결여된 인물을 숭배하며 따르는 기독교인들은 예수와 성경에 근거한 진정한 기독교인들이 아니다. 그런 기독교인들은 귀신을 숭배하는 샤머니즘과 물질을 숭배하는 기복신앙에 빠진 우상숭배자들일 뿐이다.

도산, 다석, 함석헌은 과학과 종교를 통합하는 이성적, 영성적이며 높은 도덕과 굳센 실천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개성이 있고 창의적이면서 공동체적인 삶을 실현하는 21세기 새로운 종교, 새로운 문명을 열어가는 길을 제시했다. 한국기독교인들이 도산, 다석, 함석헌을 연구함으로써 21세기의 참된 신앙과 삶을 배우고 익혀 가면 좋겠다."

도산철학과 씨알철학

박재순 (지은이), 동연출판사(2021)


태그:#박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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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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