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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윤미
▲ 디카시 "걸레" 양윤미
ⓒ 양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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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소 한편에 있는 자동 세차기에 회색 걸레들이 줄지어 서 있다. 주유를 마치고 배를 든든히 채운 차량이 물세례를 통과하고 나면, 거품을 묻히는 단계를 지나 세찬 바람과 함께 물기를 닦아주는 걸레질을 맛본다. 온몸을 회전시키며 차를 닦는 걸레를 지나치고 나면 세차가 끝난다.

하루 종일 더러운 차량을 맞이하는 걸레는 회색이다. 아주 작은 때만 닿아도 금세 티가 나는 하얀색은 걸레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때가 묻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검은색도 별로다. 때가 묻은 것을 적당히 알아챌 만한 밝은색이면서도, 이만하면 잘 헹궈냈노라 할 만큼 적당히 어두운색이어야 했다. 적당히 때 묻은 어른의 색은 어쩌면 회색일지도 모른다.

집집마다 걸레는 집안의 구석자리에 놓여 있다. 더러운 찌꺼기들을 훔쳐내고 때 구정물을 끌어안는 일은 집을 유지하는 데 있어 가장 필수적인 일 중에 하나다. 더러움을 흡수한 걸레가 비로소 검은 눈물을 흘릴 때 걸레가 지나간 자리들은 환하게 빛난다. 이 세상 모든 집에는 걸레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세상 모든 집에는 검은 눈물로 집을 위해 기도하는 성자들이 있는 셈이다. 

엎드려 걸레질을 하는 집도 있고 밀대에 청소포를 부착해 바닥을 닦는 집도 있다. 모양과 형태가 어떻든 걸레질이란 그동안 깨닫고 있었던 더러움과 미처 알지 못했던 더러움을 마주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걸레질은 숭고하다. 더 깨끗한 공간을 위해 허리를 굽혀 낮은 자세로 걸레질을 하고 나면 마음의 환기가 찾아온다.

내 몸이 거하고 있는 공간이 집이라면 내 영혼이 거하고 있는 공간은 마음이라 할 수 있다. 마음이 지저분하다 못해 지옥 같을 때, 우리의 영혼은 자신을 편히 누일 공간을 잃어버린다. 마음속을 뒤덮은 어둠을 몰아내는 방법, 짜증스러운 더러운 감정에서 벗어나는 법을 모를 때 우리는 눈에 보이는 더러움을 박박 닦기도 한다. 

집을 닦든 마음을 닦든 닦아내는 행위 자체를 하지 않으면 우리가 거하는 공간은 환해지지 않는다. 시커멓고 더러운 것을 마주하는 일은 달갑지 않지만 몸과 마음을 편히 누이기 위해 우리는 걸레를 들어야 한다. 나와 우리, 더 나아가 세상을 환하게 하는 걸레질은 그래서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눈에 띄지 않는 집안 모퉁이에 머물러 있는 걸레만큼 깨끗함을 사랑하는 물건이 있을까. 집안 가장 후미진 곳에서 더러움을 끌어안고 사는 걸레만큼 고마운 물건이 있을까. 집을 빛나게 해주는 물건이 더러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참으로 역설적이다. 

발 디딜 곳 하나 없는 집에 발 디딜 공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손수 걸레를 드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사람들의 시커먼 면면이 눈에 밟혀서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매번 자식의 방을 닦아주는 부모일 수도 있고, 서로 밥을 사겠다며 실랑이를 벌이는 친구일 수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후미진 마음의 모퉁이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가 적재적소에서 제 소임을 십분 발휘한다. 

기꺼이 나의 더러움을 제 몸에 묻히고 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그들이 두고 간 환한 기적을 본 적이 있는가. 뽐내지 않고 가만히 다가와 무심히 밝혀두고 간 사랑의 헌신에 감격한 적이 있는가. 우리는 모두 깨닫든 깨닫지 못하든 어떤 누군가가 닦아둔 방에서 걸레를 잡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마침내 내 방뿐 아니라 다른 이의 방까지 닦아줄 힘을 얻으며 성숙한다.

걸레를 드는 일은 미처 걸레를 들지 못한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며 그가 편히 쉬길 바라는 거룩한 기도와 같다. 무엇보다 확실한 건, 무릎을 꿇고 드리는 그 기도의 끝에 가장 먼저 환해지는 이는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 (https://brunch.co.kr/@claire1209)에도 업로드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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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차 영어강사/ 번역도 가끔씩 - 문화예술인/ 시인 - 5년차 엄마사람 -디카시 공모전 수상 및 시부문 신인상, 우수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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