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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양(입양으로 맺어진 가족관계를 끊는 것. 2012년 입양특례법 시행 이후 입양과 파양 모두 가정법원의 판결로 성립된다)을 막기 위해 위기입양가정을 만나러 다니고 있지만, 어떠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파양을 선택하고야 마는 가정 곁에서 그들이 최대한 진실되게, 잘 이별하도록 도와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과 마주하게 된다. 파양 이후에도 아이와 가족의 생은 계속되고 그들은 각자의 삶에 다시 뿌리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가족이 잘 헤어지도록 돕는 전문가라니.

'파양'이라는 선택지는 이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상상도 못 했던 장면이었는데 어느새 그 단어가 가장 흔한 동네를 매일 거닐고 있다. 뱅글뱅글 도는 입양의 핵 한가운데로 진입한 느낌이랄까. 이곳에서는 방향감각을 잃을까 자꾸만 나침반을 보게 된다. 자꾸만 머리 위 하늘을 올려다보며 숨을 고르게 된다.

아이의 건강한 성장과 혹시라도 가능할지 모를 다음 기회를 위해서라도 이제는 이 가정이 멈춰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이와의 삶을 이어갈 자신이 없고, 멈추기엔 비난이 두려운 현실 앞에서 멍하니 주저앉아 있는 부모에게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들이 자신 앞에 놓인 현실을 찬찬히 직시하도록 도와주는 일 외에 또 무엇이 있을까.

잘해보겠다던 결심이 수백 번 무너지고, 결국 이 모든 것이 아이 탓이라며 통곡하는 그 어그러진 마음이 안타깝지만 아이를 위해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다고 느껴지는 그때가 나는 가장 어렵다.

아이들에게 치명적인 이별
 
가족이란
 가족이란
ⓒ 이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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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양을 결정한 가정의 마무리 상담을 몇 차례 진행한 적이 있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마음이 멀어진 상태였던 터라 가족의 회복을 위한 상담이 아닌 아이를 위해 어떻게 잘 이별할 것인가에 대한 상담을 진행하게 되었다. 아이와 버티는 동안은 하루에도 몇 번씩 뒷목을 잡고 쓰러질 듯 혈압이 오르내리던 부모의 모습이 막상 아이를 돌려보낸다는 결정 앞에 서자 한결 차분해 보였다.

우리가 무슨 짓을 한 건가, 결국 나는 이것밖에 안 되는 건가, 아이가 상처를 최소로 받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상황을 무어라 설명하면 좋을까, 나를 포함한 모든 어른이 작은 아이 앞에서 부끄러움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생부모와의 분리를 한번 겪고 입양가정을 만난 아이들에게 닥치는 이런 이별은 치명적일 수 있다. 아직 어린 나이이다 보니 이 모든 슬픔과 상실을 감당하기 쉽지 않아 깊숙이 억압해 버릴 뿐, 아이 안의 신뢰 체계는 와르르 무너지는 중이다.

누구도 신뢰할 수 없으며, 나의 생존은 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신념이 더 공고해져 아이는 누구와도 깊은 사랑을 할 수 없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사랑을 건네고 싶어 입양했던 아이가 사랑에 가장 무능한 상태가 되어 방출되는 잔인한 결말이 여기에 있다.

내가 마지막 이별 상담을 했던 가정의 아이는 입양 이전에 자신이 살았던 보육원으로 가길 원했다. 하지만 그곳은 아이가 살던 가정의 행정구역을 넘어선 타지역에 있던 곳이라 판사의 특별한 배려가 필요했다. 아이의 부모는 자신들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이가 원래 있던 그 자리로 되돌아가도록 돕는 것이라 생각해 판사에게 제출할 전문가 소견서를 써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한 자, 한 자 간절한 바람을 담아 소견서를 썼다. 심각한 외상을 입은 이 아이가 그나마 익숙한 고향으로 돌아가 치유할 기회를 주는 것이 어른인 우리가 건넬 수 있는 최대치의 배려가 아닐지 판사님의 자애로운 판결을 부탁드린다고 써 보냈다.

한 달 후쯤 '선생님, 오늘 파양 판결받았어요. 그리고 아이는 원래 있던 OO원으로 돌아갔어요'라는 입양엄마의 문자를 받았다. 다행이라는 생각도 잠시, 정말 이렇게 끝이 났구나. 아이와 가족은 다시 남남으로 돌아가 다른 하늘 아래 살아가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며 삶이 참 얄궂다고 느껴진다. 정말 이런 날이 오는구나, 이런 풍경을 보게 되는구나.

십수 년 전만 해도 파양을 하는 부모는 괴물같이 생겼을 거라 생각했다. 아이를 사랑으로 품지 못해 방임하거나 학대하는 이들은 모두 머리 위로 뾰족한 뿔이 나있어 누구라도 알아볼 만큼 악한 모습일 거라 생각했다. 살아보니 그렇지 않다.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그 일들이, 결코 나는 아닐 거라고 믿는 삶 속으로 어느 순간 비집고 들어간다.

감격의 순간에 머물러 있는 부모 
 
평생 이어진 관계
 평생 이어진 관계
ⓒ 이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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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이 한 아이의 인생을 바꾸는 아름답고 숭고한 결정이라고 믿는 이들은 많지만, 그 변화를 위해 상처받은 아이를 받아들이고 사랑하기까지 내 한계와 마주하며 고통스러운 희생을 치러야 한다는 생각은 많이 부재한 것 같다. 입양이 평생 이어지는 가족의 '삶'으로 인식되기보다 한 아이를 구원하는 감격스런 '순간'에 머물러 있는 탓이 아닐까.

친생자녀를 잘 키웠다고 자부하는 부모일수록, 첫 입양자녀를 수월하게 키운 부모일수록 앞으로의 입양도 자신의 기대처럼 되리라는 비현실적인 기대감을 갖기 쉽다. 그러나 비현실적인 기대는 실제 삶에서 예상치 못할 어려움을 겪을 확률을 높여주기에 무척 위험하다. 입양으로 만날 아이는 내 기대와 전혀 다를 수 있고, 아이가 이전에 경험한 일들이 이후의 삶에서 어떤 케미(궁합)를 일으킬지는 살아봐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입양은 그 어떤 행복도 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확실함과 두려움의 파도를 타며 평생 도전을 받아들이는 일에 가깝다. 인생의 다른 영역이 그러하듯 확고한 믿음으로 무장한 이들보다 '그럴 수도 있겠네' 라며 흔들릴 준비가 된 유연한 이들이 더 잘 통과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내가 생각한 입양과 다르더라도 기꺼이 귀를 열고 마음을 내어놓을 수 있는 이들이 아이의 손을 잡고 도전을 향해 한 발 한 발 전진하는 삶이 진짜 입양 아닌가 싶다.

입양이 내 생각과 다르다고 끝내야 한다는 말은 인생이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르니 끝내야 한다는 말과 어떻게 다를까. 인생에는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도 있지만 더 많은 시간 그 선택을 책임지는 시간으로 채워진다. 입양은 '한 아이의 세상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한 아이의 세상을 바꾸기 위해 평생 가족이 되는 일'이다. 평생이라는 단어와 상실이라는 단어가 부담스럽게 느껴진다면 입양은 당신에게 좋은 선택이 아닐 수도 있음을 생각해보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설아 시민기자는 건강한입양가정지원센터 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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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연결을 돕는 실천가, 입양가족의 성장을 지지하는 언니, 세 아이의 엄마, <가족의 탄생>,<가족의 온도> 저자, 가끔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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