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의 뒤를 이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한국계 할리우드 영화가 국내 개봉 전 사례 도용 논란에 휩싸였다. 뒤늦게, 영화사와 감독도 대응에 나섰다.

미 현지에서 한국계 입양인의 가슴 아픈 사연을 담은 영화 <푸른 호수(Blue Bayou)>를 상대로, 상영 중단 서명 운동과 함께 해시태그 보이콧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영화 <푸른 호수>는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월드 시네마' 부문에 공식 초청됐으며 제74회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된 바 있다.

논란은 2016년 미국에서 추방당해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계 입양인 아담 크랩서(한국명 신상혁)에서 시작됐다. 아담 크랩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할리우드 야망을 위해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이용하지 말라"며 영화 <푸른 호수>를 강하게 비판했다.
 
 영화 <푸른 호수>

영화 <푸른 호수> ⓒ 유니버설 픽쳐스

 
영화 <푸른 호수>는 한국계 할리우드 영화감독이자 배우인 저스틴 전이 감독과 각본, 주연을 맡은 작품이다. 주인공인 한국계 입양인 안토니오가 30년 넘게 미국에서 살다가 이민세관단속국에 붙잡혀 한국으로 강제추방 당하는 줄거리다. 주인공은 어릴 적 양부모에게 학대를 당했으며 임신한 아내를 두고 외딴 나라 한국으로 추방당해야 하는 위기에 처해 있다. 영화는 지난 17일(현지 날짜)부터 미 전역 영화관에서 상영되고 있다. 

이에 대해 지난 20일 한국계 추방 입양인인 아담 크랩서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날 선 비판을 하고 나섰다. 그는 "나는 수익이나 수상, 눈물을 짜내기 위해 만들어진 할리우드 캐릭터가 아니다. 진실을 밝힐 수 있도록 (포스팅을) 공유 해달라"며 영화 <푸른 호수>가 자신의 이야기를 무단으로 사용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영화 제작사에 자신의 이야기를 쓰도록 동의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페이스북에 "저스틴 전이 입양인 추방에 관한 주제에 접근하는 방식에 아주 실망했다. 그는 처음부터 아이디어를 정해 놓은 것 같았고 의견이 아니라 동의를 받으려는 것 같았다"고 썼다.

이어 "4년 전 저스틴이 나에게 접촉했고, (중략) 연락이 없다가, 2020년 한 프로듀서가 나에게 양부모와 나의 사진을 요청했다. 간단한 숙제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내 양부모가 저지른 강간, 성범죄, 아동학대를 비롯해, 나를 포함해 나의 입양인 형제와 자매에게 가한 학대는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라며 영화사의 무성의한 접근 방식을 비판했다.
 
 아담 크랩서 페이스북

아담 크랩서 페이스북 ⓒ 황상호

 
그는 또 "영화는 바로 영화제에 출품됐고, 입양인을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 어떠한 언급도 없었다"며 "고통을 겪은 사람은 그들이 준비됐을 때 그들의 이야기를 할 존엄성이 있다. (중략) 나는 저스틴과 그의 팀에게 할리우드 야망을 위해 다른 사람들의 트라우마를 이용하는 것을 멈출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진실을 말하라"고 주장했다.

입양인 권익 활동가 "보이콧"... 상영 중단 온라인 서명 시작

영화를 비판하고 나선 것은 입양인 당사자들이다. 미 현지에서 입양인 권익 활동 '정의를 위한 입양인(Adoptees for Justice)' 캠페인을 주도하는 비영리단체인 미주한인봉사교육협의회(NAKASEC)는 21일 성명을 발표하며 "저스틴 전 감독이 우리 커뮤니티 멤버의 삶을 표절했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상영 중단 온라인 서명 운동(change.org/BoycottBlueBayou)과 해시태그 '보이콧 푸른 호수(#BoycottBlueBayou)' 운동을 시작했다. 서명 운동은 목표치 1000명 가운데 28일 기준(현지 날짜) 778명이 서명했다. 
   
 웹페이지 Change.org에서 진행되고 있는 보이콧 캠페인

웹페이지 Change.org에서 진행되고 있는 보이콧 캠페인 ⓒ 황상호

   
한인 입양인이자 미주한인봉사교육협의회 사무국장인 베키 벨코어는 성명서를 통해 "아담 크랩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각색해도 된다고 동의를 한 적이 없을뿐더러 권리를 양도한 적이 없다"며 "영화 속 주인공 안토니오의 이야기는, 아담 크랩서가 입양된 나이, 추방 당시 아내가 임신했던 사실, 배우자의 전 남편과 사이에 있었던 딸을 친자식처럼 아끼는 모습, 새아버지의 폭력 등 아담 크랩서의 삶과 구체적으로 닮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는 (실제적인) 변화를 가져올 만한 어떤 방법이나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며 "이렇게 생략된 점을 미루어볼 때 감독이 영화를 만든 의도에 질문이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고 언급했다.
 
 미주한인교육단체협의회(NAKASEC) 인스타그램

미주한인교육단체협의회(NAKASEC) 인스타그램 ⓒ NAKASEC

 
저스틴 전 측 "여러 입양인의 기사를 참고했다"

지난 8일 NBC 뉴스 보도에서 저스틴 전은 영화를 위해 여러 입양인 뉴스 기사를 꼼꼼히 조사했고 그중 대표적인 사례가 아담 크랩서라고 밝힌 바 있다.

이후, 입양인 단체가 영화 보이콧에 나서자 본격적인 대응에 나섰다.

28일(현지날짜) NBC뉴스에 따르면, 저스틴 전은 영화 제작 과정에서 13명의 입양인과 한국계 변호사가 참여했고 영화 모든 초안에 대해 핵심적인 입양인과 공유했다고 밝혔다. 또 영화 <푸른 호수>는 한 사람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어 "이 영화를 만든 이유는 (입양인에 대한) 비인간적인 정책을 알게 되었고, 사람들이 알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영화가 입양인에 대한 관심을 계속 불러 일으켰으면 좋겠다"라며 영화 제작 취지에 대해 호소했다.

또, 영화 제작사인 포커스 피처스는 최근에 결성된 입양인 단체 '입양인 옹호(Adoptee Advocacy)'와 영화 제작 과정에서 상의를 했다고 밝혔다. 영화 제작사를 대신해, '입양인 옹호'는 "학대 가정에서 자라고 법적으로 문제가 생겨서 어린 아이를 두고 추방된다는 점은 많은 입양인이 겪은 역사와 매우 유사하다"며 영화 보이콧 움직임에 대해 "우리를 심각하게 강타하는 행위(devastating gut punch to us)"라고 답했다.
 
 영화 <푸른 호수>

영화 <푸른 호수> ⓒ 유니버설 픽쳐스

 
저스틴 전은 영화 <트와일라잇>에 출연해 주목을 받은 뒤  2014년 감독으로 데뷔해 영화 <국> <미쓰퍼플> 등 한인 이민자의 정체성을 그린 영화를 제작해 평단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입양인 아답 크랩서는 1979년 3세 때 미국으로 입양된 뒤 양부모의 학대와 폭력을 겪다 16세 때 노숙자 신세가 됐다. 양부모가 시민권 신청을 하지 않아 불법체류 상태로 있다가 2016년 37년 만에 한국으로 추방됐다. 이때 아내는 임신 중이었다. 2015년 11월 MBC <다큐스페셜>과 이듬해  MBC 휴먼 다큐 <사랑>을 통해 그의 사연이 전파를 타면서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영화는 10월 13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푸른 호수 저스틴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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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트레블러17 대표 인스타그램 @rreal_la 전 비영리단체 민족학교, 전 미주 중앙일보 기자, 전 CJB청주방송 기자 <오프로드 야생온천>, <삶의 어느 순간, 걷기로 결심했다>, <내뜻대로산다> 저자, 르포 <벼랑에 선 사람들> 공저 uq261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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