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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노동자회는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일터와 삶터를 살아가며 평등과 존중에 대해 고민하는 수많은 후원회원, 지지자들과 함께 길을 만들어왔습니다. 오는 10월 13일 후원의 밤을 맞이하여, 여성노동자회는 우리가 어떻게 연결되어 왔고, 연결되기 위해 노력해왔는지를 풀어내고자 합니다. 여성노동자회는 더 많은 이들과 연결되어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꿈꿉니다.[편집자말]
강은미 의원은 대학 졸업 이후, 1995년에 로케트전기에 입사하여 10년간 노동자로 일했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부당해고 되어, 100일간의 복직투쟁 끝에 복직하는 데 성공했다. 강 의원은 로케트 전기 창사 이래 최초로 복직에 성공한 노동자다. 해고되어 광주여성노동자회를 만났고 지금까지 광주여성노동자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 당시 현장에서 노동자분들의 삶 이모저모를 목격하면서 정계 투신의 뜻을 굳히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 옛날 강은미 회원의 활동과 삶이 현재의 강은미 의원을 만들어준 밑거름이 아닐까? 노동자에서 국회의원이 되기까지의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1. 소개 

Q. 광주 여노의 오랜 회원이시죠! 강은미 회원님,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정의당 국회의원 강은미(환경노동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입니다. 로케트전기에서 노동자로 일하다 정의당 광주 서구 기초의원, 광주광역시의회 의원을 거쳐 지금의 자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보다 정의롭고 공정한 세상을 만드는데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Q. '국회의원 강은미'에 비해 '로케트 전기 노동자 강은미'는 사람들이 잘 모를 것 같아요. 강은미 의원님께서는 로케트 전기 창사 이래 최초로 복직에 성공한 노동자셨지요?  부당 해고부터 복직까지의 이야기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기초의원 선거에 출마를 결심하기 전까지 저는 광주의 로케트전기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제가 입사한 것은 1995년 5월이었습니다. 로케트전기는 당시 유행하던 '삐삐'의 건전지인 '삐삐밥'을 주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로케트전기에서 근무한지 10여 년이 지난 2004년 1월에 회사 측에서 출산·육아휴직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인사고과를 낮게 줘 공장 직원 8명을 해고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모두 다 여성이었고 저도 그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처음엔 너무 억울했고 다음엔 속상하다 못해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당시엔 어린 아이들이 눈뜨기 전 출근해 잠든 후 퇴근하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무리하게 초과 근무를 시켜도 거부하지 않고 묵묵히 맡겨진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냉정했습니다. 저는 필요할 때는 한 가족이라며 일을 시키더니, 설을 며칠 앞둔 엄동설한에 '어떻게 이렇게 손쉽게 자를 수 있나' 싶은 생각이 들자 서운하고 화가 났습니다. 부당한 일이라며 해고자들끼리 똘똘 뭉쳤고 당시 35세였던 저는 복직투쟁위원장을 맡아 회사와 맞섰습니다.

하지만 복직투쟁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로케트전기가 회사의 논리에 맞춰 노무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었던 탓에 법적 다툼으로 가더라도 결코 유리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오래전에 우리 회사에서 해고됐던 사람들이 대법원의 복직 판결까지 받았음에도 끝까지 회사로 돌아오지 못한 일을 이야기하며, 우리를 걱정해주는 회사 동료들은 "빨리 포기하고 다른 직장을 알아보는 것이 낫다"는 이야기도 잊지 않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굴하지 않았고, 겨울 한파 속에 광주시민들과 지역노동자의 연대투쟁을 끌어내는 등 다양한 방식을 동원해 투쟁에 나섰고 결국 중도 포기한 1명을 제외하고 전원이 복직했습니다."

#2. 광주여노와의 인연

Q. 처음 소개드렸다시피 강은미 회원님께서는 광주여노의 오랜 회원이신데요, 광주여노와 처음 연을 맺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로케트전기 복직투쟁 당시 (광주여노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여성노동자회가 언론에 우리를 소개했고 그것이 보도되면서 크게 이슈가 됐거든요. 또 시시각각 변하는 회사 측과의 상황에서 수시로 자문을 해주셨고요. 필요할 경우 회사도 방문해 중재 역할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지역 대책위 같은 게 꾸려졌는데 잘 이끌어주시기도 했습니다."

Q.오랜 인연인 만큼 각별한 점이 있을 것 같은데요, 강은미 회원님께 광주여노는 혹시 어떤 의미인가요? 

"힘들 때, 언제든지 찾아가서 위로받을 수 있는 친정 같은 곳입니다. 2004년 해고되었을 때, 옆에 있어 주신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고, 든든한 뒷심이 되어 주셨는데요, 그때나 지금이나 여노가 늘 마음 한 켠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해고 당한 내게 가장 큰 힘이 되어 준 것처럼 일하는 여성이 임금차별과 직장 내 괴롭힘, 성폭력 등에 노출되었을 때, 그들에게 손 내밀어 주는 곳이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여전히 회원으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3. 국회의원이 되기까지

Q. 해고 노동자에서 국회의원까지, 사람들이 그 스토리를 무척 궁금해 할 것 같아요.처음 정치 입문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복직 투쟁 진행 과정에서 주변의 지인 몇 분이 저의 '끼'를 보았던 모양입니다. 언젠가 사적으로 만난 자리에서 "정치를 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해 주었지만 처음엔 "마음에 없다"고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노동운동의 길과 정치의 길은 엄연히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출마를 권유하는 지인들이 늘어나고 스스로도 복직 투쟁을 경험하면서 노동자 삶과 정치의 연관성을 고민하기도 했던 터라 2005년 여름 결심을 굳히게 됐습니다. "

Q. 그렇다면 과거의 노동 운동 경험이 현재의 의정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바가 있을까요? 

"복직 투쟁을 통해 힘없는 노동자와 서민의 실태를 체감했습니다. 서로 어깨를 걸고 의지한 채 한 발 한 발 나아가면서 깨달은 것은 '사람이 힘'이고 '사람이 희망'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회사를 떠나 정치에 입문한 이유는 서민의 땀과 눈물을 닦아주는 세상을 만드는데 힘을 보태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희망입니다.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서로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항상 노력하고 있습니다."

Q. 멋지네요! 그 말씀대로 강은미 의원님께서는 여성 노동 의제에 대해서도 활발한 의정활동을 펼치고 계시죠. 골프장 캐디, 학습지 교사와 같은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해서도 산재 적용 특례 확대 법안을 낸 바 있으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여성 노동 문제와 관련한 의원님의 활동을 듣고 싶습니다.

"특수고용 노동자, 5인 미만사업장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등은 가장 기본적인 노동권보호 법안인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노동권은 물론이고 산업재해를 당해도 산재보험 당연가입 대상자가 아니다보니, 어려움이 많습니다. 이런 노동자들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산재보험에 반드시 가입하는 법안을 발의했고, 반영이 되었습니다. 

또,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당시부터 '가사노동자'는 근로기준법 적용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올해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해 정당한 노동자 권리를 보장받게 되어 이 법을 대표발의 한 의원으로서 뿌듯한 마음이 있습니다."

Q. 코로나19로 여성 노동자들은 어느 때보다도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는데요, 여성 노동자들의 권리 증진을 위해 필요한 정책적 과제를 고민하고 계신 바가 있을까요?

"여성노동자들의 현실과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은 채 재난 위기 대책이 일자리의 숫자만 가지고 논의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특히 간접 고용 형태로 일하고 있는 여성들의 고통은 이중고, 삼중고입니다. 간접 고용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 또는 최저임금법에 정한 최소한의 근로 조건만을 보장받 거나 심지어 그조차도 제대로 보장 받지 못하는 기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간접 고용 노동자들의 노동3권이 무력화된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진정한 사용자인 원청의 노동관계법상 사용자성이 부인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에서 간담회 등을 개최하는 등 정책적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근본적으로는 청소, 경비, 시설관리 등 서비스 업종에서 원칙적으로 간접 고용을 제한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는 원청과 하청의 공동 사용자성을 인정하거나 원청에게 최소한 노동조합법상 사용자성을 전면적으로 인정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을 촉구하는 '국회의원 강은미'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을 촉구하는 "국회의원 강은미"
ⓒ 국회의원 강은미 공식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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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앞으로의 삶

Q. 복직투쟁에서부터 국회의원의 삶까지, 꾸준히 여성 노동권을 위해 싸우는 모습이 너무 멋지십니다. 혹시 이 땅의 여성 노동자들에게 건네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실까요?

"저는 70년대생입니다. 독재정권시대에 태어나 우리 사회의 민주화 과정을 보고 배우며 성장했습니다. 지난하고 피눈물나는 과정이었지만 분명 사회는 진보적으로 바뀌었고, 지금도 그 역사 한복판에 열심히 현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불평등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일터에서, 일상에서, 연대의 장에서 열일하는 여성 동지들에게 존경의 박수를 드리며 저도 그 길에 함께 하겠습니다."

Q. 마지막으로 광주여노에게 응원의 한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여전히 소외받고 차별받는 여성들이 있습니다. 여성노동자회는 일하는 여성의 버팀목입니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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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노동자회 온라인 후원의 밤, '연결 : 우리의 노동이 보편이 될 때까지' 참여하기 (http://kwwnet.org/?p=14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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