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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사진전 ? 더 라스트 프린트 전시회장 사진.
 LIFE 사진전 ? 더 라스트 프린트 전시회장 사진.
ⓒ 전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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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초 <LIFE 사진전 – 더 라스트 프린트>에 다녀왔다. 부제는 '디지털 시대에 남겨진 가장 아날로그적인 기록'이다. 1936년 창간된 시사 잡지 라이프(LIFE)는 사진 중심의 획기적인 편집으로 역사적인 사진을 많이 남겼지만, 급격히 변하는 언론 매체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2000년 5월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됐다. 라이프 지(紙)가 온라인 잡지사로 구조조정 되는 과정은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배경이 됐다.

사진 전시는 조약돌을 손에 올린 화가 조지아 오키프의 사진으로 시작된다. 조지아 오키프는 꽃을 확대해서 그린 화가로 유명하다.
 
"아무도 진지한 태도로 꽃을 보지 않는다. 꽃은 작아서 보는 데 시간이 걸리는데 현대인은 바빠서 그럴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꽃을 거대하게 그리면 사람들은 그 크기에 놀라 천천히 그리고 진지하게 보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도 진지한 태도로 보지 않는 집안 살림을 거대하게 펼쳐놓은 니나 린(Nina Leen)의 <빗자루를 들고 있는 주부 마조리 맥위니(1947년)>도 인상적이었다. 전업주부인 그녀가 일주일간 하는 집안일은 35개의 침대와 750개의 식기, 세척 할 은식기 400개, 준비할 음식 174파운드와 세탁물 250개다. 보이지 않는 집안일을 '보이는 것'으로 구현해놓은 사진 앞에서 숨이 막혔다.
 
이렇게 한 발자국 더 가까이, 충분히 다가가 돋보기를 들이대는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 (to draw closer)'은 라이프 지의 중요한 모토였다. 대상과 현상을 보이는 대로 보지 않고, 그 너머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것은 라이프 지의 다른 모토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to find each other and to feel)'과 연결이 된다.
 
포토 저널리즘의 아버지로 불린 알프레드 에이젠슈테트(Alfred Eisenstaedt)의 사진이 잘 말해준다. 그는 '사진의 핵심은 인물과 사건이 스스로 이야기하게끔 만드는 것'이라며, 겉으로 보이지 않는 대상의 본질을 끌어내기 위해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렇게 편안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단지 몇 장의 사진만 찍었다 한다. 그래서 그는 라이프 지 전속 사진기자 중 필름을 많이 사용하지 않기로도 유명했다.
 
그가 찍은 메릴린 먼로의 사진을 보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메릴린 먼로가 자택에서 쉬고 있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찍은 사진은 한 시대를 풍미한 섹스 심볼로 표현된 어느 사진보다 더 아름답다고 느꼈다. 그의 사진을 보고 있으니 제주도에서 만난 반치옥 사진작가가 생각났다.
 
제주도에서 만난 사진 작가
 
반치옥사진관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라온 내 사진.
 반치옥사진관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라온 내 사진.
ⓒ 반치옥사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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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나는 제주도 여행을 검색하다 우연히 '반치옥 사진관'을 알게 됐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 대해 인터뷰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당신이 가장 잘 드러날 수 있는 각도와 조명을 만들어 당신을 기록합니다"라는 소개가 마음에 들었다. 우리 부부는 '중년의 시간'을 기록하기로 했다.
 
한적한 제주도 스튜디오에 방문했다. 반치옥 작가는 조명을 섬세하게 설치하면서 자연스럽게 남편에게 말을 걸었다. 지금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지금 관심 있는 것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을 어떻게 설명해줄 수 있는지……. 그는 대화하면서 툭툭 셔터를 눌렀다. 커다란 모니터로 보이는 남편의 얼굴은 편안해 보였는데, 내가 30년 만에 처음 보는 표정과 분위기가 있어 신기했다.
 
내 차례가 왔다. "왜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하셨어요?" 첫 질문에 나는 사진관 소개 글이 매력적이었다며 "작가님이라면 겉으로 보이는 외모를 찍는 것이 아니라 내면을……" 말하다 울컥 울고 말았다. 아. 어쩌죠? 뭐 어때요. 괜찮습니다. 반 작가는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서인지, 앞에 걸린 사진 이야기를 꺼냈다.
 
한번은 딸이 치매에 걸린 80대 아버지를 모시고 왔다 한다. 외향선 선장이셨던 그분에게 '다시 태어나면 어떤 직업을 가지고 싶은지' 질문했다. "모자를 쓰고 싶어." 모두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그분은 큰 소리로 말했다. "모자를 쓰고 싶다고. 선장 모자를 다시 쓰고 싶어." 선장 모자를 쓰고 환하게 웃는 사진 속 어르신을 보고 나는 또 눈물을 왈칵 쏟았다.

이런 이야기가 그냥 나올 리가 없다. 외모 그 너머에 닿으려 끊임없이 질문하는 작가의 마음이 전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예쁘게 '인생 사진'을 찍으러 와서 나는 울기만 했다.

울기만 했는데, 이렇게 웃고 찍었네
 
그렇게 작가와 교감하며 찍은 사진을 몇 주 뒤에 받아보고 나도 내가 처음 보는 표정에 깜짝 놀랐다. 내가 이렇게 웃을 수도 있구나. 내 얼굴에 이런 모습이 숨어있었구나. 사진은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지금, 행복하니?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어?"
 
막 퇴근한 남편의 손에 편의점 봉투가 들려있다. 그 안에서 메릴린 먼로가 환하게 웃으며 나왔다. 알프레드 에이젠슈테트가 찍은 메릴린 먼로의 사진이 들어간 맥주가 출시됐다는 뉴스를 보고 반가워 남편에게 부탁했다. 손에 쥐고 가까이 보니 그녀의 미소 안에 화려했지만 외로웠던 이야기가 엿보인다.
 
한 장의 사진이 백 마디의 말이나 글보다 많은 것을 말할 때가 있다. 사진 속의 이야기는 꼭 유명한 사진작가의 렌즈가 아니더라도 내가 찍은 셀카에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내 이야기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일 테니까. 창문으로 들어오는 가을 밤바람이 제법 서늘하다. 날씨가 더 추워지기 전에 메릴린 먼로와 함께 맥주 한 잔 하며, 삶(life)을 이야기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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