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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글쓰기 그룹 '반려인의 세계'는 반려동물에 대한 고민과 반려동물로 인해 달라지는 반려인들의 삶을 다룹니다. 이번 주제는 '반려인이 되고 나니 보이는 것들'입니다.[편집자말]
코끼리는 저 멀리서부터 걸음 속도를 줄이지도, 높이지도 않고 일정하게 걸어왔다. 손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오자 코끼리는 차분하게 걸음을 멈췄다. 지근거리에서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몸집이 컸다. 얌전했지만 어딘가 늙고 지쳐 보이는 인상의 코끼리였다. 진회색 몸 곳곳에는 흙탕물이 말라붙어 부스러져 있었다.

태국인 직원이 손을 내밀어 우리를 한 명씩 코끼리 등에 올라탈 수 있도록 부축했다. 스물한 살 여자 두 명을 태운 코끼리는 끙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다시 느리게 걷기 시작했다. 코끼리의 걷는 속도와 방향에 맞춰 내 몸도 리드미컬하게 흔들렸다. 열대의 이국,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나는 이 모든 것이 신기하고 즐거웠다. 그래, 즐거웠다.

여기까지 생각하다 나는 '으으' 하는 기이한 소리를 내며 진저리를 친다. 한때는 즐거웠던 기억이 이제 더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벌써 17년 전 일인데도 '코끼리 타기 관광'을 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누구 발이라도 밟은 것처럼 화들짝 놀라고 만다.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혼자 있어도 부끄럽다. 이게 다 고양이 때문이다.

고양이라는 세계를 만나고
 
내 세계는 점차 고양이를 중심으로 재편됐다.
 내 세계는 점차 고양이를 중심으로 재편됐다.
ⓒ elements.env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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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키우기 전까지 나는 동물에 무지한 사람이었다. 가끔 마주치는 이웃의 강아지나 한 번씩 예뻐할 줄 알았지 그 외에는 관심도 없고, 딱히 알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귀여운 강아지를 보면 몇 초쯤 인사를 나누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던 내가 강아지도 아닌 고양이 반려인이 될 줄이야.

남편의 고양이 반냐, 그리고 내가 입양한 고양이 애월까지 고양이 두 마리와 산 지도 벌써 9년이다. 그 시간 동안 나는 고양이 등허리를 어루만지며 네 번의 이사와 이직과 해고와 또 다른 업을 찾는 일들을 통과했다.

이제 나는 내 삶과 고양이를 분리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버터가 스르륵 녹아 스며든 팬케이크처럼, 고양이가 내 삶에 완벽히 녹아들어 분리할 수가 없다. 고양이를 떼어내면 내 삶의 일부도 떨어져 나갈 것이다.

고양이를 키우며 알았다. 누군가를 내 삶에 들이는 건 상대방 하나만 오는 게 아니라는 걸. 고양이를 키운다는 건 고양이의 세계도 함께 온다는 의미였다. 실제로 나는 두 번 버려졌던 첫째 고양이를 키우면서 과거 '반려동물은 펫숍에서 사는 것'이라고 여기던 생각에서 벗어나 반려동물 입양이라는 세계에 눈을 떴다.

내 세상은 점차 고양이를 중심으로 재편됐다. 과거에는 별것 아니던 일들이 고양이라는 세계를 만나고 나니 별것이 됐다. 이제 나는 유튜브의 사랑스러운 먼치킨 고양이나 스코티쉬폴드 영상을 보지 않는다. 먼치킨의 경우 짧은 다리를 위해, 스코티쉬폴드는 접힌 귀를 위해 인위적으로 개량되어 유전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스코티쉬폴드의 경우 폴드와 폴드끼리 교배를 하면 99%가 유전 질환에 걸리게 된다는 충격적인 사실도 알게 되었다("순종 고양이들과 유전병" 뉴스1, 2017.9.19.). 이 사실을 몰랐다면 모를까 알고 나니 귀여움으로 무장한 먼치킨과 스코티쉬폴드의 영상을 소비하기 어려워졌다.

또 산책을 하다 펫숍을 지나가게 되면 옛날처럼 유리창에 달라붙어 조그마한 강아지들을 구경하지 못한다. 대신 나는 상품처럼 강아지와 고양이 열댓 마리를 진열해놓은 펫숍을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지나친다. 낮이고 밤이고 지나치게 조도가 높은, 창백한 하얀빛 아래서 산책도 하지 못하는 강아지를 보는 일이 마음 편치 않아서다. 그렇게 나는 불편한 게 많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고양이에서 더 확장된 세계
 
코끼리는 생각보다 거대하고 조용했다
 코끼리는 생각보다 거대하고 조용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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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 불편함은 돌고 돌아 나를 겨눈다. 고양이를 키우기 전의, 아무렇지 않게 동물을 소비하던 과거의 나를 지금의 내가 직시하게 된 것이다. 시작은 우연히 본 기사 한 건이었다. 코끼리 타기 관광을 지양하자는 내용의 기사를 읽으며 나는 적잖게 충격을 받았다.

코끼리는 지능이 높고 자의식이 강해 인간에게 쉽게 굴복당하지 않는 야생동물인데, 이런 코끼리를 쉽게 이용하기 위해 꼬챙이로 반복해서 학대하는 행위가 이뤄지고 있다는 이야기였다("코끼리 관광상품에 숨은 잔인한 학대를 알린다" 애니멀라이트, 2019.5.28.).

기사 내용과 내 경험을 번갈아 떠올리니 어디론가 숨고만 싶었다. 물론 동물 학대라는 걸 알았다면 코끼리 관광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무지해서 해맑았던 내 모습을 떠올리면 여전히 면구스럽다.

한 번 수면 위로 떠오른 기억은 또 다른 기억을 소환했다. 아쿠아리움에 가서 돌고래쇼를 보며 손뼉을 쳤던 일(바다에서 포획된 뒤 돌고래쇼와 체험에 이용되는 돌고래들은 스트레스로 폐사하기도 한다)이라든가, 관리가 잘 되지 않는 작은 동물원에 가서 동물들을 구경했던 일(일부 소규모 동물원은 수익을 위해 좁은 공간에 동물을 전시하는 등 동물복지 문제를 안고 있다)들까지. 잊고 살았거나 가끔 기억해도 무심했던 일들에 이제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예전엔 아무렇지 않았던 것들이 이제는 거북해진다
 예전엔 아무렇지 않았던 것들이 이제는 거북해진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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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화들이 단순히 부끄러움으로 남지 않기 위해서 나는 '하지 않는 방법'을 익히고 있다. 그토록 좋아하던 아쿠아리움의 개복치를 보는 일도, 봄날의 동물원에 가서 날씨를 즐기는 일도 이제는 하지 않는 편을 택한다. 식단을 짤 때는 되도록 붉은 고기보다는 흰 고기를 택하고, 흰 고기보다는 생선을 택하려 한다(물론 자주 실패한다).

사실 이런 일들은 깃털만큼이나 가벼운 것들이다. 내 주변에는 동물권을 생각하다 비건이 된 사람도 있고, 동물 털이 함유된 물건은 절대 쓰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런 일들에 비하면 내가 하는 일이란 고작 아쿠아리움을 끊고, 동물복지마크가 없는 계란을 사지 않는 사소한 것들이다.

하지만 이 사소한 행위조차도 고양이를 키우기 전에는 일체 하지 않았던 일이다. 고양이로 인해 나는 인간 이외의 존재들과 아주 조금, 1mm 정도는 더 가까워졌다. 부끄러운 일이 많아졌고 되도록 먹지 않는 음식도 있다.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지키고 싶은 어떤 마음가짐이 생겼다. 그러니 이 모든 일은 고양이 덕분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필자의 브런치(@relaxed)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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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에 대한 고민과 반려동물로 인해 달라지는 반려인들의 삶을 다루는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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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작가. 책 <쓰지 못한 단 하나의 오프닝>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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