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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글쓰기 그룹 '반려인의 세계'는 반려동물에 대한 고민과 반려동물로 인해 달라지는 반려인들의 삶을 다룹니다. 이번 주제는 '반려인이 되고 나니 보이는 것들'입니다.[편집자말]
지난 여름. 반려견 은이와 대구의 한 공원에서 산책을 하고 있을 때였다. 흙으로 조성된 생태 친화적 공원엔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은이도 모처럼 밟는 보드라운 흙의 감촉을 즐기는 듯 했다. 그런데 은이가 걷고 있는 그 길에 물줄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비도 오지 않았고, 근처에 수도가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이상하다 싶었다. 나는 주변을 살펴봤다.

물줄기는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슬쩍 아이들의 놀이를 훔쳐본 나는 놀라고 말았다. 아이들은 개미굴을 파헤쳐놓고는 그 안에 물을 붓고 있었다. 아마도 이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뛰어놀다 우연히 작은 구멍 하나를 발견했을 것이고 재미 삼아 구멍을 파다가 물을 넣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안에 있을 개미들을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개미들 다 죽는 거 아니야"라며 키득거리는 한 아이의 천진난만한 목소리가 섬뜩하게 느껴졌다.

아무리 작은 생명이라고 해도 살아있는 것을 죽음으로 내모는 일을 놀이로 여기는 아이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담소를 즐기는 부모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착잡해져왔다.   

반려견을 키우며 불편해진 것들

내가 처음부터 이렇게 예민한 건 아니었다. 예전엔 나 역시 이런 것들을 자연스런 아이들의 놀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은이와 함께하게 되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나와는 완전히 다른 종인 은이와의 교감은 사람 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들도 느끼고 생각할 수 있으며 안전과 삶을 갈구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했다. 

때로는 은이가 바라보는 세상이 궁금하기도 했다. 사람과 달리 흑백으로만 보인다는 은이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어떨지, 후각으로 주변을 파악하는 느낌이 어떨지 궁금해졌다. 다른 동물들의 세계도 알고 싶어졌다. 하늘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새들의 느낌과 비오는 날 땅으로 나와 꿈틀거리는 지렁이의 기분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그러자 불편해지는 것들이 많아졌다. 아이가 바닷가에서 작은 게를 잡아 와 키우기 시작했다는 이웃의 블로그 글, 실내 동물체험공간에서 먹이를 주는 모습을 담은 SNS 속 사진, 산에서 잡아 온 곤충을 키우다 죽었다고 슬퍼하는 아이에 대해 고민했던 한 친구. 나는 이제 이런 이웃과 친구들에게 공감해주기가 힘들다. 지극히 '인간중심적'으로 생명을 대하는 이들의 모습은 자꾸만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다른 생명들을 이처럼 도구로 대하게 된 걸까? 아이들은 어쩌다 다른 생명체를 놀잇감으로 여기게 된 걸까? 나는 이런 것들이 교육에서부터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인간중심' 교육이 낳은 생명경시풍조
     
모든 동물들은 저마다의 특성에 맞게 살아갈 권리가 있으며 마땅히 한 생명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모든 동물들은 저마다의 특성에 맞게 살아갈 권리가 있으며 마땅히 한 생명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 elements.env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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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가 벌어기지 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의 단골 현장학습 코스 중 하나는 동물원 혹은 동물체험 시설 견학이었다. 아이들은 야생동물을 가둬놓고 만지고 먹이를 주는 것을 '동물 사랑'이라고 배운다. 하지만, 동물의 입장에서 이는 고유의 삶의 방식을 박탈당한 학대에 해당한다. 

작은 동물을 사육하는 것을 생태교육이라 여기는 곳도 여전히 많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한 이웃은 유치원생 아이의 과제로 개구리를 키워야 했다. 유치원에서는 생태교육의 일환으로 아이들에게 올챙이를 컵에 담아 나누어 주고, 집에서 개구리로 변하는 과정을 관찰해오라고 했단다.

올챙이가 개구리가 된 후, 이웃은 그 개구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했다. 하지만 나는 이웃보다 개구리가 더 당황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숲의 연못에서 살아야 할 개구리가 작은 어항에 갇혀 실내에서 살아야 한다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래서일까. 그 개구리는 이웃이 어떻게 하기도 전에 일찍 세상을 떠났다.

나는 이런 교육 과정이 아이들에게 생명경시를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동물을 그들만의 터전에서 데려와 인간이 방식으로 키워도 된다는 사고 자체가 생명을 도구화하는 태도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런 '생명경시' 교육은 초등학교 이후에도 계속된다. 2019년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동네 과학학원들에서는 어떻게 알았는지 내게도 홍보 문자들을 보내왔다. 그런데 이들이 자랑하는 커리큘럼엔 '동물해부'가 버젓이 들어있었다. 소 눈, 개구리, 돼지 폐 등을 해부한다는 학원들의 홍보에 나는 적잖이 놀랐다. 놀라운 건 이 문자가 2000년 말에도 계속 되었다는 사실이다. 

2018년에 개정되어 2020년 3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동물보호법에서는 미성년자의 동물해부(사체포함)를 금지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학원들이 이러는 이유가 있긴 하다. 동물보호법상 동물의 정의는 포유류, 조류, 파충류, 양서류, 어류가 다 포함이 되는데, 대통령령으로 단서를 하나 달았기 때문이다. '식용 목적으로 사육하는 파충류, 양서류, 어류는 이 법에서 제외된다'는. 이런 예외 조항 때문에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지만, 이 법의 취지가 '미성년자의 동물 해부 실습을 금지' 하는 것인 만큼 이러한 해부 실험은 하지 않는 게 옳다. 

세계적으로도 동물해부는 생명을 도구화하는 것은 물론, 아이들에게 정신적 트라우마를 남기는 것으로 인정돼 교육과정에서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그럼에도 해부 특강은 인기를 끌었고, 몇몇 이웃들은 SNS에 흰 가운을 입고 해부를 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자랑스레 찍어 올리기도 했다.

달라진 일상, '좋은 생명체'가 되어 가는 기쁨 
 
반려동물과의 교감은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종의 동물들과도 연결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반려동물과의 교감은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종의 동물들과도 연결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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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아이와 함께 몇 군데 과학 학원 상담을 다니면서 우리는 적잖이 놀랐다. 생각보다 동물 해부 수업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이와 나는 고민 끝에 아무리 유명한 학원이라 해도 동물 해부를 하는 과학 학원에는 다니지 않기로 했다. 아이는 흰 가운을 입고 동물을 해부하는 대신 집에서 파자마 차림으로 인터넷 강의를 듣는다. 하지만 아이가 과학 수업을 따라가는 데는 지금껏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렇듯 은이와 함께 살아가면서 우리 가족은 불편하게 생각되는 일이 많아졌다. 때로는 죄책감이 들었다. 마음의 짐을 덜고자 우리는 일상을 바꿨다. 먼저 동물원과 수족관은 우리 가족의 나들이 코스에서 완전히 제외시켰다. 동물과의 교감은 은이와 함께 살고, 유기동물보호소를 방문해 봉사하거나, 숲에서 새소리를 듣고 곤충들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또한, 작은 곤충도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우리 가족은 산에 갔다 모자나 신발에 애벌레가 붙어오거나 집에 곤충이 들어오면 창문을 열어 나가도록 유도하거나 나무젓가락 등에 조심스레 올려 밖으로 내보내 준다. 원래 있던 산까지 데려다 주지는 못해도 최대한 자연에서 살도록 하기 위해서다. 

누군가는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더 불편해진 것 아니냐고 말이다. 수족관이나 동물원에도 마음대로 못 가고, 곤충이 들어올 때마다 귀찮게 밖에다 데려다줘야 한다니 많은 제약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나와는 완전히 다른 동물의 삶을 생각하면서 오히려 우리의 삶이 '확장'되어 감을 느낀다. 다른 동물들을 존중하려는 노력은 다른 존재와 우리를 연결시켜준다. 이런 연결감을 느낄 때 나는 내가 조금 더 좋은 '생명체'가 되어 가는 기쁨을 느낀다.

나와 우리 가족은 동물 생태학자 사이 몽고메리가 저서 <좋은 생명체로 산다는 것은>에 적은 "좋은 생명체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반려견 은이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인간 중심의 좁은 시야를 확장시켜주었다. 예전에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된 우리는 일상을 바꾸었고 이는 삶이 확장되고 다른 존재와 연결되는 기쁨을 느끼게 해 주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도 이런 기쁨을 알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기 위해 나는 제대로 된 생명존중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동물원이 아닌 동물보호단체를 방문해 진정한 생명존중을 배우고, 숲의 동물들은 숲에서 살아야 하는 걸 먼저 가르친다면 얼마나 좋을까?

동물들을 인간의 호기심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그들 나름의 세계를 가진 주체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바라보는 법을 익힐 수 있다면 참 좋겠다. 그럴 때 우리는 조금 더 '좋은 생명체'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생명체'들이 함께 할 때 인간이 만든 사회도, 우리를 둘러싼 자연도 조금 더 건강해질 것이라 믿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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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에 대한 고민과 반려동물로 인해 달라지는 반려인들의 삶을 다루는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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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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