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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대 정부통령 민주당 신익희와 장면 후보 벽보(1956. 5.).
 제3대 정부통령 민주당 신익희와 장면 후보 벽보(1956. 5.).
ⓒ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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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당사에서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는 민주당의 대선구호가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두 번째는 〈부자에게는 세금을, 서민에게는 복지를, 청년에게는 일자리를〉(2004년 민노당)라는 구호를 들기도 한다. 

1956년 5월 15일 실시된 제3대 대통령선거와 제4대 부통령선거는 우리 헌정사상 처음으로 여야 후보가 국민 직선에 의해 대결하는 '선거다운 선거'의  효시가 되었다.

집권당인 자유당은 이승만 대통령이 함량이 크게 부족한 측근 이기붕을 러닝 메이트로 지명하고, 제1야당 민주당은 신익희 대통령 후보에 장면 부통령 후보, 혁신계의 진보당은 조봉암과 박기출을 정ㆍ부통령 후보로 각각 선출하여 대선 진용이 짜여졌다.

4사5입 개헌파동으로 이승만의 3선 출마의 길을 튼 자유당은 공공연하게 이 대통령의 후계자로 등장한 이기붕을 러닝 메이트로 묶어 당선시키기 위해 1년 반 동안에 걸쳐 정지작업을 진행해 왔다. 다수의 문인ㆍ학자ㆍ언론인들이 이기붕의 호를 딴 '만송족'이 되어 그의 부통령 만들기에 동원되었다.

그러나 노회한 이승만은 3월 5일 실시된 자유당 지명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지명을 받았음에도 불출마를 선언, "제3대 대통령에는 좀 더 연부역강한 인사가 나와 국토통일을 이룩해주기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정치적인 위장술책이었다.  

이렇게 되자 자유당은 각종 관제민의를 동원하여 이승만의 번의를 촉구했다. 연일 경무대(청와대) 어귀에는 관제 데모대가 집결하여 이승만의 재출마를 탄원하는가 하면, 자유당 지방당부와 지방의회로부터 재출마를 간청하는 호소문ㆍ결의문ㆍ혈서가 답지했다. 

그것도 부족하여 평소에는 서울시내의 통행을 규제해오던 우차와 마차를 총동원하여 "노동자들은 이 박사의 3선을 지지한다"는 함성을 지르도록 하는 소위 '우의마의'까지 동원하여, 국제적인 조소꺼리를 만들었다.
 
민주당 신익희 후보 유세차
 민주당 신익희 후보 유세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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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시위에 참가한 사람이 연인원 500만 명이고, 연판장에 서명한 사람은 300만 명에 이르렀다. 물론 이들 역시 대부분 동원된 서명자들이었다. 당시 대한민국 유권자 총수와 맞먹는 수치였다.

이와 같이 관제민의 소동이 절정에 이르자 마침내 이승만은 3월 23일 담화를 통해 "민의에 양보하여 종전의 결의를 번복하고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심하였다"고 밝히면서 선거전에 나서는 곡예를 부렸다. 

민주당은 정ㆍ부통령후보 선출을 둘러싸고 심각한 갈등과 대립이 벌어졌다. 후보선정에 있어서 신익희(민국당 계열)와 장면(원내자유당 계열)의 지지세력 사이에 심각한 대립을 나타냈으며 부통령 후보에는 장면ㆍ조병옥ㆍ김준연이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그후 몇 차례의 타협 끝에 3월 29일 전국대의원대회에서 대통령후보에는 압도적인 954표를 얻은 신익희, 부통령후보에는 700여 표를 득표한 장면이 선출되었다. 

신익희는 수락연설을 통해 "나라를 아끼는 동포들의 숙원과 이 뜻에 의해서 민주당이 지명한 민주 명령에 복종한 것입니다. 또한 그 명령에 복종함으로써 국민을 위하여 봉사할 것을 다짐합니다."는 소견을 밝혔다. 

혁신계에서는 진보당추진위원회에서 대통령후보에 조봉암, 부통령후보에 박기출을 내세웠다. 이렇게 하여 이승만ㆍ신익희ㆍ조봉암으로 압축된 제3대 정부대통령 선거전은 투표일인 5월 15일을 향해 서서히 열기가 달아오른 가운데 야권후보 단일화 운동이 추진되었다. 

조봉암은 ① 책임정치의 수립 ② 수탈없는 경제체제의 실현 ③ 평화통일의 성취 등 3가지 정책을 신익희 후보가 수용하면 용퇴하겠다고 제의했다.

민주당에서는 야당후보 단일화를 기피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조봉암의 협상제의를 수락하고 ① 내각책임제와 경찰의 중립화 ② 유엔감시하의 남북한 총선거 ③ 경제조항의 재검토 등을 협상 조건으로 내걸고 야당연합전선을 위한 담판에 나섰다. 진보당은 막바지 회담에서 "진보당에서 대통령후보를 양보할테니 민주당에서 부통령후보를 포기하라"는 협상안을 제시하였다.

20여 일을 끈 두 야당의 협상이 지지부진한 채 5ㆍ15선거전은 어느새 중반전에 접어들었다.

민주당은 선거구호를 〈못살겠다 갈아보자〉로 내걸고 자유당의 실정과 독재, 부정부패를 공격하고 나서고, 자유당은 노골적으로 〈구관이 명관이다〉, 〈갈아봤자 별 수 없다〉는 등의 구호로 맞서면서 조직확장에 총력을 경주했다. 

앞에서 쓴 대로 이때 민주당의 선거 구호는 역대 선거사상 가장 탁월하고 시의에 적합했던 것으로, 정치에 무관심하던 국민들까지 투표장으로 불러오게 만들었다. 이 구호는 민주당 엄상섭 의원과 선전부장의 착상인 것으로 알려진다.  

선거전은 날이 갈수록 격렬해졌다. 전국 각 도시는 말할 것도 없고 농촌에까지 민주당은 붐을 일으켜 지지자가 늘어나고, 정부기관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언론이 민주당에 동조하는 논조를 보이는 등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급속히 확산되기 시작했다.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해공 신익희 평전] 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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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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