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신익희가 마지막 머물렀던 종로구 효자동 가옥
 신익희가 마지막 머물렀던 종로구 효자동 가옥
ⓒ 유영호

관련사진보기

 
이승만 정권은 신익희를 정치적으로 제거하고자 국회의장 선거에서도 비열한 방법을 동원하였다. 제헌국회 때부터 7년 동안 격동기에 중후한 인품과 명사회ㆍ명의장으로 국회를 안정적으로 자리잡게 한 것은 그의 공로가 컸다. 그러다보니 국회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도 차기 대통령감으로 널리 인식되었다.

관권 부정선거에서도 자유당은 총선에서 개헌선인 3분의 2 의석을 확보하지 못해 갖은 협박으로 무소속 당선자들까지 끌어 모았다. 총선 당선자는 재적 203명 가운데 자유당 103명, 무소속 69명, 민주국민당 15명, 대한국민당 3명, 독촉국민회 2명, 제헌동지회 1명이었다. 제1야당인 민주국민당이 참패한 것은 관권선거에도 원인이 있었지만, 본질적으로는 친일지주들의 이미지를 갖는 한민당과의 합당이 패인으로 작용하였다. 

야권에서는 신익희의 개인적인 명망성을 들어 다시 의장 후보에 천거하였다. 하지만 자유당 당선자나 협박에 못이겨 무소속에서 이적한 의원들의 선량의식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이들을 믿지 못한 것은 자유당 수뇌부도 마찬가지였다. 

이날의 의장 선출에 있어서 자유당은 같은 당원일지라도 믿지 못한 나머지 암호 투표를 실시했다. 그 방법에 있어서 여당이 내세운 국회의장 후보 이기붕의 이름을 투표 용지에 기입할 때 사전 묵계가 있었다. 

서울ㆍ경기 출신 의원 25명은 내려 써 정상적인 형태를 취한다. 충남북 출신 22명 의원은 가로 쓰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기입한다. 경남북 출신 42명 의원은 가로 쓰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기입하고, 전남북 출신 의원 31명은 엇비슷하게 기입하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며, 강원ㆍ제주 출신 15명 의원 역시 엇비슷하게 기입하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도록 한다.

무섭게 으르고 위협하며 돈 주고 매수하여 투표가 끝난 뒤에라도 빠져 나간 수효를 환하게 알 수 있게끔 특별 암호 투표를 실시하였다.  

그러나 소속 의원 1백 35명 가운데 만송(晩松)에게 투표한 의원수는 1백 24명으로 나왔다.

사전에 빈틈없이 무시무시하게 단속하였건만 열 한 표의 이탈표가 발생하였다. (주석 10)
해공 신익희 선생
 해공 신익희 선생
ⓒ 눈빛출판사

관련사진보기

 
신익희가 속한 민주국민당 소속의원은 15명인데, 그런 속임수 투표에서도 52명의 지지표가 나왔다. 결국 의장 이기붕, 부의장 최순주ㆍ곽상훈이 당선된 것으로 선포되었다. 

의장직에서 물러난 그는 당시까지 살던 삼청동 106번지 저택을 약속한대로 국가에 헌납하고 효자동 2번지 막다른 골목의 집으로 세들어 이사하였다. 그리고 국회의사당까지 걸어서 출퇴근하였다. 가장이 큰 감투를 썼지만 청렴결백하여 가족은 여전히 가난에 시달렸다. 딸의 증언이다.

재주 좋은 사람도 많았지만 우리는 늘 경제적으로 가난했다. 아버지는 가끔 "이 애비가 못난 탓이라고 위로하려므나." 위로하듯 말씀하셨지만, 

나는 "국회의장 딸이 단간 셋방살이를 한다."는 일엔 조금도 불평이 없을 뿐 오히려 떳떳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승만의 폭정은 날로 더해갔고 정치의 혼란은 날이 갈수록 심해갔다. 

우선 기억에 남는 큰일 중엔 악명 높았던 54년 5ㆍ20선거(제3대 민의원 총선거)가 있는데 자유당은 아버지의 선거구인 경기도 광주에서조차 최인규를 맞세워 관권과 금력이 총동원된 선거전을 폈다. 물론 아버지는 재선됐지만 전체 야당 세력은 형편없이 오그라들었고 국회의장직도 내놓고 말았다. (주석 11)

그는 공사생활에서 지극히 청렴의 극치를 보였다. 비서의 증언이다. 

피란 중 부산에서 회색과 검은색 실로 섞어서 짠 홈스펀 양복감 두껍기가 소 덕석 같은 것 한 벌감을 국회 사무처에서 배급받아 양복점에 맡겨 지어 입은 적이 있었는데 겨우 내내 이 한 벌로 그 이듬해, 또 그 이듬해, 3년ㆍ4년을 지냈다. 나중에는 안감이 해져서 사자털 같이 너덜너덜하게 된 것을 그대로 입고 다니셨다. (주석 12)


주석
10> 신창균, 앞의 책, 746쪽.
11> 신정완, 앞의 책, 111쪽.
12> 신창현, 앞의 책, 735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해공 신익희 평전] 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이 기자의 최신기사 맘모스여당에 맞서 고군분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