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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도서실 개관식에서 책을 살펴보고 있는 관계자들. 1952년 2월 20일 개관식 때 촬영한 사진이다. 국회도서관은 ‘도서관’이 아닌 ‘도서실’로 출발했다. 사진 오른쪽부터 존 무쵸 주한 미국대사, 윤택중 의원, 신익희 국회의장, 박종만 국회사무총장이다.
▲ 국회도서실 개관식 국회도서실 개관식에서 책을 살펴보고 있는 관계자들. 1952년 2월 20일 개관식 때 촬영한 사진이다. 국회도서관은 ‘도서관’이 아닌 ‘도서실’로 출발했다. 사진 오른쪽부터 존 무쵸 주한 미국대사, 윤택중 의원, 신익희 국회의장, 박종만 국회사무총장이다.
ⓒ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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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익희는 외교의 중요성을 인식해온 정치인이다. 망명시절 한ㆍ중 우호에 각별히 심혈을 기울이고, 해방 후에는 우방의 친선외교에 노력하였다. 국력이 약한 작은 나라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든든한 우방의 존재가 중요하다는 신념이었다. 

신언서판을 갖추고 여러 가지 외국어를 구사하는 국회의장의 신분이어서 신생국 외교역할에 안성맞춤이었다. 방미시절 단장과 자유중국 국빈방문의 성과에 이어 1953년 5월에는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에 참석한 것을 계기로 6ㆍ25 때 지원해준 참전 우방 등 26개국을 두루 순방하였다. 외교적 성과가 괄목할 만했다. 

5월 18일 부산을 떠난 신익희 의장과 김동성 의원 일행은 한국 대표단으로 일본을 경유하고, 곧바로 미국ㆍ캐나다를 거쳐 5월 28일 런던에 도착했다. 6월 2일 대관식에 참석하고, 6월 10일까지 런던에 체류했던 해공은 여행 도중에도 국내 사정을 염려해 계속 친지들에게 서신을 보내고는 했다. 

해공은 영국에 체류 중, 고국에서는 휴전 반대 데모가 거국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고, 룩셈부르크와 벨기에 순방 도중 6월 18일에는 대통령이 반공 포로를 석방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는 우방 요인들에게 우리의 사정을 설명, 그들을 납득시키는 등 친선 여행 중에도 우국충정의 심정을 한 시도 잊지 않았다. (주석 1)

그가 방문한 나라는 미국ㆍ영국ㆍ프랑스ㆍ아일랜드ㆍ스웨덴ㆍ덴마크ㆍ서독ㆍ네덜란드ㆍ벨기에ㆍ룩셈부르크ㆍ이탈리아ㆍ터키ㆍ이집트ㆍ에디오피아ㆍ레바논ㆍ희랍ㆍ호주ㆍ필리핀ㆍ태국ㆍ자유중국ㆍ일본 등 26개국이었다. 이들 나라를 방문하여 친선을 도모하고 귀국한 것은 그 해 9월 19일이다. 장장 4개월에 걸친 친선방문의 장도였다.

당시 한국은 오랜 식민지와 동족상쟁의 전쟁으로 국제사회에서 썩 좋지않은 이미지로 인식되고 있었다. 신익희는 영국 여왕 앞에 당당하게 우리 말로 발언하였다. 귀국보고의 한 대목.
신익희 국회의장을 비롯한 의회 지도자들이 장면 주미 대사의 안내로 애치슨 미 국무장관을 만나 미국의 원조에 대하여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있다(가운데 애치슨 미 국무장관 그 왼쪽 신익희 국회의장, 오른쪽 장면 주미 대사1950. 3. 22.).
 신익희 국회의장을 비롯한 의회 지도자들이 장면 주미 대사의 안내로 애치슨 미 국무장관을 만나 미국의 원조에 대하여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있다(가운데 애치슨 미 국무장관 그 왼쪽 신익희 국회의장, 오른쪽 장면 주미 대사1950. 3. 22.).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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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5일 버킹검 궁전에서는 영국 여왕을 만나 대화하는 시간이 마련되었는데 함께 간 국무총리 백두진, 주영공사 이묘묵 동지가,

"여왕과 악수하고 알현하는 의식은 신 의장이 하는 게 옳다."고 하며 나에게 우리 나라를 대표해서 이야기하라고 하더군요. 그래 한국 대표 차례가 되기를 기다려서 여왕 앞에 나가 악수하고 나는 명백한 우리 말로 얘기해 주었구료.

"내가 이번에 온 것은 당신의 대관식을 축하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당신의 영용한 군대가 한국 전쟁에 파견돼 우리 국군 장병들과 어깨를 나란히 작전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 특별히 당신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온 것입니다."

분명하고도 또렷한 한국말로 인사를 했구료. 물론 외교에 있어 자기 본국의 말을 사용하는 것이 이상스러운 일이 아니겠지만, 근대 영국 궁정 안에서 자기 본국의 언어로 명쾌한 인사를 한 예는 아마도 별로 없었던 듯 여왕은 퍽 감명 깊은 태도로,

"의당 할 일을 했을 뿐 특별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들을 성과는 아닙니다."며 의사를 표시합디다. (주석 2)

그가 해외순방중일 때 이승만 정부는 6월 18일 반공포로 2만 5000여 명을 석방하고, 7월 27일 정부가 불참한 가운데 휴전협정이 조인되었다. 가는 곳마다 이것이 화제가 되고, 각국 정부 인사나 언론이 이에 관해 물었다. 신익희의 답변은 확고하고 명료했다.

우리 한국 사람은 평화를 애호(愛好)하고 전쟁을 혐오하는 민족이다. 나로서 얘기하기에는 그리 명예롭지는 않지만 우리는 5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나라로 남을 침략한 사실이 한 번도 없다. 다만 침범을 당했을 때 방위적 수단으로 대항하여 싸운 일은 허다하다.

전 세계에서 평화를 애호하고 전쟁을 혐오하는 민족이 있다면 그 민족이 바로 한민족일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한국 사람은 평화를 사랑하기 때문에 전쟁을 싫어한다.

요새 유엔군 측이 공산 침략자들과 정전(停戰)을 협의하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 국민이 반대하는 것은 우리가 평화를 싫어하는 호전적인 민족이라서가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진정한 평화가 아니고 단지 위계에 의한 위조된 평화이기 때문이다. (주석 3)


주석
1> 유치송, 앞의 책, 664~665쪽.
2> 신창균, 앞의 책, 649쪽.
3> 앞의 책, 649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해공 신익희 평전] 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해공, #신익희, #신익희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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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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