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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가치가 퇴색하는 세상입니다. 뿐만 아니라 급격한 자동화로 인간의 노동 그 자체가 종말을 고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세상이기도 합니다. 마주했던 노동 현실의 민낯을 보며 현장의 관찰자이자 조율자로서 신입 노무사가 보고 겪고 느낀 것들을 독자와 공유합니다. [기자말]
현대 사회에서 회사에 다닌다는 말은 곧 사람을 마주한다는 말과 똑같다. 제조업인지 서비스업인지, 단순 육체노동인지 첨단 지식노동인지를 막론하고 인간관계를 수반하지 않는 일은 거의 없다. 특히 팀 단위 협업을 중심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상당수의 기업에서, 개인은 기존의 관료제 구조에서의 상하관계뿐만 아니라 팀 동료 구성원과의 관계까지 끊임없이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인간관계는 곧 갈등의 연속이고, 이는 직장인들의 애로사항이 된다. 아무렇지 않게 툭 던진 한마디가 모여 상처가 되고, 보이지 않는 사내 정치에서 누군가는 희생양이 되고 만다. 심지어 이제는 하급자들이 집단의 위력으로 상급자를 따돌리는 등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비전형적 갈등 관계까지 나타나고 있다.

2019년 이른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근로기준법에 신설되면서, 이러한 갈등관계는 법적 다툼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길지 않은 경력이지만 사측과 노측 모두의 편에서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다뤄 오면서, 괴롭힘이란 알면 알수록 복잡하고 해결이 참 난감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⑴ 괴롭힘 행위자에 대한 직접적인 처벌조항이 없어 계도 효과가 낮고, ⑵ 설령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되더라도 현실적으로 2차 가해를 방지하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점은 이미 많은 언론에서 지적했다.

판단기준

고용노동부의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매뉴얼(2019)>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의 행위 요건으로 세 가지를 든다.

먼저 '직장 내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한 행위'여야 한다. ⑴ 조직도상 직속 상사뿐만 아니라 ⑵ 사내 직위·직급상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지위상의 우월성을 가지고 행동한 경우 심지어 ⑶ 동료 또는 하급자라 하더라도 집단으로 위력을 발휘한 경우에는 '우위를 이용한 행위'라고 인정될 수 있다.

다음으로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은 행위'여야 한다. 이는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점에서 업무와 관련된 행위여야 함을 의미한다. 이 업무 관련성이란 반드시 직접적인 업무수행 중 발생하는 행위뿐만 아니라, 업무수행을 빙자하는 등 상황에 따라 폭넓게 판단해 그 행위가 사회통념상 업무수행에 필요한 수준을 넘어섰다고 인정될 때 성립한다.

여기에 괴롭힘 행위로 인해 유·무형의 결과가 발생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괴롭힘에 따라 ⑴ 신체적·정신적인 고통이 발생하거나 ⑵ 통상적인 업무를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근무환경이 악화한 경우를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판단하게 된다.

사례

⑴ 반드시 피해자에 대한 명시적인 폭언이나 욕설이 있어야만 직장 내 괴롭힘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법원은 부장급 직원이 부하들에게 "찌질이 둘이 앉아 있네", "입이 조용하다 했더니 손이 시끄럽구먼, 쯧쯧", "수준 좀 올리자, 수준 좀..." 등 비아냥거리는 말을 하거나, 자리를 비키면서 "어휴 재수 없어", "또라이"라는 등 혼잣말에 가까운 말을 하더라도 그러한 행위가 지속적으로 일어난 경우 괴롭힘이라고 인정한 사례가 있다(서울행법 2019.3.29., 2018구합65361).

⑵ 사용자는 업무상 적정한 범위 내에서 인사권 행사에 재량권을 가지나, 직원의 본래 업무와 전혀 관계없는 업무를 부여하는 행위는 인사상 불이익을 넘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 수 있다. 법원은 일찍이 대학 학교법인이 그 소속 대학교수를 본연의 업무에서 배제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교수의 의사에 반해 전공 분야와 관련 없는 강의를 배정함으로써 결국 강의를 하지 못하게 만든 행위를 괴롭힘으로 판단해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적이 있다(대법원 2008.6.26., 2006다30730).

⑶ 업무 연관성이라는 측면에서도 반드시 업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선임 직원이 후임 직원에게 "술자리를 마련하지 않으면 인사상 불이익을 주겠다"라고 반복하여 강요하다가 "아직도 날짜를 못 잡았느냐"며 경위서를 제출하라거나 "성과급의 30%는 선배를 접대하는 것이다"라고 발언을 한 경우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직장 내 괴롭힘이 성립했다고 판단한 적이 있다(대전지법 2015. 8. 28., 2014고합207).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첫 날인 16일 경기도 수원시 고용노동부 경기지청 민원실에 마련된 직장 내 괴롭힘 신고센터에서 민원인들이 상담을 하고 있다. 2019.7.16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첫 날인 16일 경기도 수원시 고용노동부 경기지청 민원실에 마련된 직장 내 괴롭힘 신고센터에서 민원인들이 상담을 하고 있다. 2019.7.16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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⑷ 따돌림의 양상에 있어서도, 단순 언어폭력이나 의도적 배제, 비난 여론 조성 외의 행위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될 수 있다. 일례로, 국가인권위원회는 따돌림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보일러나 에어컨 등을 제공하지 않고 가해자들끼리만 사용하는 행위는 업무상 적정성을 넘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보았다(인권위 16진정0186100).

⑸ 더 나아가 시설안전 목적으로 설치한 CCTV를 이용, 야간근무 중에 경비원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면서 근무태도를 지적하거나 업무 중 착석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야간시간에 계속 CCTV를 확인하겠다"라고 발언하며 상시적인 감시가 이루어짐을 반복적으로 주지시키는 행동 또한 노동자의 인격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어 괴롭힘이라고 인정하였다(인권위 19진정0656702).

이외에도 고용노동부는 위 매뉴얼에서

⑹ 퇴근 이후 저녁시간이나 주말에 지속적으로 팀 모바일 메신저 단체 채팅방에 글을 올리고 이에 대답하지 않는다고 추궁하는 행위
⑺ 사내 행사를 빌미로 직원들에게 점심시간 등 휴게시간을 이용해 장기자랑 연습을 하라고 강요하며 실제로 특정 복장을 입고 임원진 앞에서 노래를 부르라고 하는 행위
⑻ 임금 삭감을 받아들이지 않은 노동자에게 사무실 및 업무용 PC 비밀번호를 바꾸어 접근을 막고 사내 메신저에서도 탈퇴시키는 등 따돌리는 행위
⑼ 상사가 먹고 남은 음식을 모두 먹으라고 하거나 흰머리를 뽑고 안마를 하라고 강요하는 행위
⑽ 상사가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 작성을 지시하고 개인적인 외부 강의를 위한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작성하도록 하거나 시험문제 채점 등을 지시하는 행위

등을 모두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제안

위와 같이 누군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서 행동한 일이 피해자나 제3자가 보기에는 상당히 부당하고 개인의 인격을 침해하는 일이라고 판단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특히 직장 내 괴롭힘은 가해의 의도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성립할 수 있으므로, 이에 일부 사용자들이나 심지어 노동자들조차 "뭐만 하면 괴롭힘이라고 하니, 일하기가 참 팍팍하다"면서 섭섭함을 호소하곤 한다.

하지만 이는 이전까지의 경직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조직문화가 그만큼 해체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오늘날, 노동자들은 과거라면 참고 넘겼을 사내 부조리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과정이 어떻더라도 결과만 좋으면 된다고 믿었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과정이 공정하고 정의롭지 못하면 결과 또한 의미가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직을 운영하는 사용자뿐만 아니라 그 조직 내에서 수많은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우리 노동자들은 항상 나의 행위가 타인에게 아픔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지하면서 살아야 한다. 아무렇지 않게 무심코 던진 말이 누군가에게는 큰 아픔이 될 수 있고, 제 딴에는 친해지기 위해 장난친 것이라고 해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불쾌한 일이 될 수 있다는 점을 항상 고려해야 한다.

회사는 업무를 위한 장이지 친목단체가 아니라는 점에서, 원칙적으로 업무상 필요한 일 외에는 타인에게 함께할 것을 강요하는 것도 삼가야 한다. 물론 사내에서 만난 관계라도 '인생 친구'처럼 지내는 경우도 많지만, 이는 오랜 기간 라포(rapport)가 형성된 경우에나 가능한 만큼 적어도 업무 외에는 각자의 삶에 필요 이상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

업무와 관련해서도 개별 직원이 통상적으로 수행해야 할 수준을 넘어 과도한 업무를 부여하거나 거꾸로 의도적으로 어떠한 업무도 전혀 부여하지 않는 것도 삼가야 한다. 우리는 헌법상 일할 권리를 가지며 이는 단순히 생계 차원을 넘어 스스로의 가치를 입증한다는 점에서, 적당한 환경에서 적당히 도전적인 수준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직장 내 괴롭힘이 남의 일이라고 치부해서는 안 된다. 나도 가해자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지고 타인을 최소 한도로라도 배려하려는 마음가짐을 가진다면, 직장 내 괴롭힘으로 불필요한 법적 분쟁의 양쪽에 서서 상처받는 일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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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 조은노무법인 공인노무사, HR컨설턴트(위장도급/산업안전보건 등) // 前 YTN 보도국 영상취재1부 영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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