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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안경신 선생의 공훈록 사진이 기존 초상화에서 실물 사진으로 23일 변경됐다.
 독립운동가 안경신 선생의 공훈록 사진이 기존 초상화에서 실물 사진으로 23일 변경됐다.
ⓒ 보훈처 공훈록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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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안경신 선생 보훈처 공훈록 초상화가 23일 사진으로 교체됐다.  앞서 16일 <오마이뉴스>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학과 석사과정 김경준씨가 논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안경신 선생의 사진을 단독으로 공개한 바 있다. (관련기사 : 94년 만에 발견된 '평남도청에 폭탄 투척' 안경신 선생 사진  http://omn.kr/1v8hc) 

선생은 1920년 8월 3일 밤 평남도청과 평양부청 등에 폭탄을 던져 건물을 파괴한 독립운동가로, 당시 임신 상태에서 거사를 주도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21년 3월 출산 직후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선생은 1심에서 사형을 언도받았으나 이후 2심에서 10년 형으로 감형됐고 1927년 12월 14일 가출옥했다. 생전 사진은 가출옥 직후 <조선일보> 기자를 만나 인터뷰했을 당시 모습이다. 

보도 이후 김씨는 지난 20일 오전 보훈처에 '독립운동가 안경신 선생의 사진을 검토해 달라'라는 민원을 제기했다. 

민원에서 김씨는 "안경신 선생은 그동안 사진 없이 흐릿한 초상화 한 장으로 전해져 왔다. 독립유공자 공훈록에도 사진 대신 그림이 삽입됐다"며 "기사를 검토해본 결과 이번에 발견된 사진이 안경신 선생의 모습이 확실하다. 보훈처에서 해당 사진을 면밀히 검토한 뒤 안 선생의 공식 사진으로 공훈록 등에 반영해 주기를 부탁드린다"라고 요청했다.

김씨의 민원에 보훈처는 발 빠르게 응답했다. 23일 보훈처는 독립유공자 공적조서에 기록된 선생의 모습을 기존 초상화에서 김씨가 발견한 선생의 모습으로 교체했다.

이에 대해 김씨는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확인된 안경신 선생의 사진은 이번에 찾은 사진이 최초이자 유일한 사진으로 알고 있다"며 "이제야 비로소 선생의 사진을 찾았으니 온전한 모습으로 선생을 기억할 수 있게 됐다"라고 심경을 밝혔다.

보훈처도 24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민원인 제보를 바탕으로 1927년 12월 조선일보 기사를 확인했다. 이를 토대로 안경신 선생의 실물 사진이 확인돼 기존 그림에서 사진으로 대체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독립운동가 안경신 선생에 대해 우리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그러나 1927년 12월 가출옥 후 선생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의거 후 낳은 아기 역시 '눈이 멀은 채로 살아남았다'라는 이야기 이외에 알려진 소식이 없다. 

2015년 5월 보훈처는 안경신 선생을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같은달 16일 중앙일보는 안경신 선생의 후손이라 밝힌 60대 황경희씨의 사연을 소개한다. 당시 황씨는 자신을 안경신의 언니 안필녀의 손주라고 밝혔다. 

기사에서 황씨는 자신의 아버지(고 황성옥/안경신 선생 외조카)가 1951년 1·4 후퇴 때 월남했고, 안 선생을 포함해 북한에 남은 가족들과 소식이 끊겼다고 전했다. 안 선생에겐 언니 안필녀, 오빠 안창석, 안세균 등 형제 4명이 있다. 안 선생은 출옥 뒤 평양에 있던 오빠 안세균씨의 집에서 생활했다는 기록만 남아 있다.

이에 대해 보훈처는 "이달의 독립운동가 선정 후 후손이라 말씀 주신 분과 접촉한 것은 맞다"면서도 "훈장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혈육임을 증명하는 객관적인 증빙 자료가 요구된다. 하지만 증거자료가 확보되지 않아 현재까지도 안경신 선생의 후손에게 훈장을 전해드리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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