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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녀’는 누구의 이름인가요? 일의 세계에서, 학교에서, 병원에서, 거리와 광장에서 우리는 다양한 삶을 오늘도 살아냅니다. 우리가 부딪친 차별의 현실을 지우고 우리의 페미니즘을 시끄러운 예민함 정도로 치부하는 사회를 향해 우리는 말합니다. 당신이 아는 ‘이대녀’는 없다.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라! 차별금지법 제정, 더는 미뤄서는 안 됩니다. [편집자말]
한국에 아르바이트 안 해본 청년이 몇이나 될까? 일단 내 주변엔 없다. 친구들의 이름을 떠올리면 그 친구들이 하는 아르바이트도 같이 떠오른다. 일식집, 카페, 밥집, 초콜릿가게, 도넛가게, 영어학원, 국어학원, 빵집, 옷집, 국수집, 만화카페.

나 또한 재수할 때를 제외하고는 알바를 쉰 적이 없었다. 19살부터 시작한 노동경력은 벌써 몇 년을 훌쩍 넘어 이제는 어떤 포스기를 쓰든, 얼마나 복잡한 메뉴를 판매하든, 일주일이면 파악 끝내고 어색함 없이 일할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고 자부할 수 있다.

알바경력 n년의 시간은 많은 것들을 가르쳐주었다. 대표적으로는 가짜로 웃는 법, 목이 쉬지 않도록 복식호흡으로 '솔'키의 목소리 내는 법, 점장님과 매니저님 눈치를 보며 해야 할 일을 파악하는 법, 퇴근 시간을 귀신같이 알아채는 법 등이 있다.

일을 시작하며 가장 처음 배운 것은 앞의 두 가지였다. 노동법도, 햄버거 패티를 굽는 법도 아닌 '가짜로 웃는 법'. 처음으로 시작한 알바는 미성년자도 받아주는 패스트푸드점이었다. 처음 했던 아르바이트치고는 할 만한 편이었다. 야채 박스를 옮기는 것도, 감자를 튀기는 것도, 무겁고 뜨거웠지만 별로 힘들진 않았다. 가장 힘든 것은 가장 몸을 덜 움직이는 일이었던 주문 받는 일이었다.

나는 아직도 햄버거를 판매할 때 웃어야 하는 이유를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은 '안경 쓴 여자 알바생이 안 웃어서' 매장 점수를 낮게 평가했다는 컴플레인을 남겼다. 우리 가게 점장님은 시종일관 무표정이었지만, 한 번도 '남자 점장이 안 웃어서'와 같은 컴플레인은 들어오지 않았다.

알바를 시작하고 두어 달 동안은 어떻게 해야 어색하지 않게 웃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세 달을 고민해도 답이 안 나오자 표정은 포기하고 목소리 톤이라도 높였다. 다섯 달 쯤 일하니까 웃는 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한숨 쉴 때 짓는 영혼 없는 미소였다. '이제 나도 컴플레인에서 탈출했다!' 하고 기뻐하기도 잠시, 그렇게 익숙해진 아르바이트는 여섯 달을 못 채우고 그만두어야 했다.

점장님이 "이 이모티콘은 여자친구한테만 보내주는데 특별히 너 한테도 써준다"라는 카톡을 보내는 빈도가 잦아지고, 주말에 만나서 밥을 먹자거나 영화표가 생겼다고 오는 연락을 거부할 핑계가 더 이상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열아홉 여성이었고 점장은 서른 살의 남성이었다. 순수한 의도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돌아보면 나의 아르바이트 경험은 패스트푸드점 레파토리의 반복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친절하게 웃을 것을 요구받고, 추근거림과 성희롱 그 사이의 미묘한 대화들을 아무렇지 않게 넘겨야 했으며, 나의 모든 수고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 노동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취급되었다. 내가 얼마나 일을 잘 하는지는 의미 없었다.

손님이 몰려서 바깥까지 줄을 서 있는 점심시간 피크타임에 주문을 척척 받아내고 음식이 밀리지 않도록 서빙을 해도 나는 그저 '알바'였다(손발노동 운운하는 윤석열은 내가 알바하는 가게에서 한 시간도 못 버틸 거라고 나는 장담한다). 그렇기에 손님들은 "이리 오너라" 하고 나를 부르곤 자기들끼리 재밌다는 듯 웃을 수 있었을 거다.

나를 소모시키지 않는 노동을 하고 싶다

나의 차별 경험은 너무나 뻔하고 흔해서, 이렇게 적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형적이다. 하지만 그렇게나 많이 이야기되었어도 여전히 바뀌지 않는 지점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들은 '그러니까 공부 열심히 해서 돈 많이 주고 좋은 대우 받는 직장에 취업하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럼 누가 서빙하는데? 빵은 누가 팔고, 케이크에 꽂을 촛불이 몇 개인지는 누가 물어볼까?

나는 내 아르바이트 노동이 좋다. 맛있게 잘 먹었다고 인사하는 손님들을 볼 때 뿌듯하고, 무슨 빵이 맛있냐고 묻는 질문에 고심하여 답하는 것이 즐겁다. 그리고 남들이 쉽게 말하는 '좋은 회사에 취업하는 과정'이 나에게 적합할 것이라고도 생각하지도 않는다.

당장 "결혼은 언제 하냐"는 질문을 넘어 "페미니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표정을 보게 마스크를 내리라"고 요구하는 회사들이 아직 남아있는 사회에서, 어떻게 취업을 할 수 있을지 막막한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닐 거다.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걸까? 나를 인격적으로 대우하는 곳에서, 상식적인 급여를 받으며, 나를 소모시키지 않는 노동을 하고 싶다. 일하는 곳곳에 묻어있는 차별과 혐오를 그냥 참아가면서 일하고 싶지 않다. 나는 일을 좋아하기에 더욱 더 좋은 환경에서 일을 하고 싶다.

제현주 작가님의 <일하는 마음>의 문장을 빌리면, "언제나 내가 일하기를 좋아하고, 기왕이면 일을 잘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조금쯤 부끄러워하며, 그런 내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던 때도 있었"다. 아르바이트 노동을 평가 절하하는 사회에서는 더욱 그랬다.

사람들은 일하는 것이 당연히 더럽고 힘든 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최저시급 겨우 받는 아르바이트 노동, 몸 쓰는 노동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일을 즐겁게 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일을 즐겁게 해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하는 곳 어디든 안전해야 한다. 떠밀려 도착하는 곳이 결국 낭떠러지인 세계에서는, 고작 버티는 것이 최선일 수밖에 없으니까.

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해 '참아가며' 일해야 하는 세계를 끝낼 때가 왔다. 더럽고 치사한 것을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 않는 세계를 그린다. 부당한 지시와 모욕적인 언사를, 채용 과정에서의 성차별을, 차별과 혐오의 시선들을, 단호하게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이야기하고 싶다.

차별금지법이 모든 것들을 단숨에 가져다주기는 어렵지만, '안 되는 것'들을 최소한으로 합의하는 시작점은 될 수 있다 생각한다. 사회적으로 합의해야 하는 것들은 이런 것들이다. 차별과 혐오를 해서는 안 됩니다! 음식점 직원을 아가씨라고 부르지 마세요, 일하는 사람의 외모에 대해 평가하지 마세요, 채용 과정에서도 인격적으로 대우하세요. 제발 좀!

그럴 수 있다면 나도 아주 맛있는 밥과 빵을, 친절한 목소리와 함께 서빙해줄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아무리 바쁘고 혼잡한 시간에 오더라도 말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혜리(한국여성노동자회 페미워커클럽)입니다.


태그:#차별금지법, #이대녀, #노동, #아르바이트, #성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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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차별의 예방과 시정에 관한 내용을 담은 법입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다양한 단체들이 모여 행동하는 연대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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