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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여유롭던 추석 연휴가 끝나고 모두가 각자 일상의 삶을 시작했다. 쉬는 날이 5일이나 되었지만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어제 셋째 딸네 가족이 떠난 집은 금세 휑한 느낌이다. 온기로 가득했던 시간은 순간 사라지고 집안은 고요만이 가득하다. 손주는 어찌 그리 예쁜 말을 잘하는지 사람 마음을 헤아려 주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손주가 없는 집은 웃음소리 여운만 남는다.

딸네 가족이 떠난 자리엔 가을 햇살이 창을 넘어 거실 안으로 들어온다. 나는 유난히 포실포실한 가을 햇살을 좋아한다. 왜 그런지 가을 햇살은 쓸쓸함이 묻어 있는 듯해서 사람이 그립다. 가을 바람마저도 서늘해서 여름 바람과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바람도 청량하고 서늘한 기운이다. 항상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나는 가을을 닮은 사람이라 말하고 싶다.

아직도 코로나19 확진자가 많이 나오고 있으니 이번 추석은 그냥 만나지 말자고 딸들에게 남편은 말했지만 딸네 가족은 내려오는 시간을 달리하고 내려왔다. 막내딸과 막내 사위는 지난 금요일 내려와 하룻밤 자고서 서울 올라가고 셋째 딸네 가족은 추석 전날 손자와 함께 내려왔다가 어제 용인으로 올라갔다. 

자식은 언제나 만나도 반갑고 기쁘다. 특히 명절에는 만날 가족이 없거나 찾아갈 곳이 없으면 외롭고 서럽다. 모두 자기 삶의 현장에서 열심히 살다가 명절이면 찾아가는 곳이 부모와 형제자매들이다. 가족이란 우리가 살아가는 서로의 힘이며 안식처이기도 하다. 세상에서 온 마음으로 유일하게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다. 

추석이 되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더도 말고 덜고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그만큼 추석 한가위는 계절적으로 춥지도 덥지도 않고 딱 알맞은 기후라서 사람이 활동하기가 매우 좋다. 각종 과일과 오곡이 무르익어 먹을 것도 풍성한 추석은 마음이 넉넉해지는 계절이다. 

올해 추석날, 큰집 제사는 못 갔지만 조상들과 시아버지 시어머니 산소에 갔다. 과일과 막내사위가 부친 전과, 시아버님 좋아하신 막걸리, 시어머님 좋아하신 환타, 떡을 준비해서 가지고. 작년에는 남편과 둘이서 성묘를 다녀오면서 마음이 허전하고 쓸쓸했었다. 설마 올 추석까지 코로나가 물러가지 않으리란 생각은 못했다.
   
딸네 가족과 산소 올라가는 길
▲ 딸과 손자와 함께 딸네 가족과 산소 올라가는 길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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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추석은 셋째 딸네 가족과 함께 했다. 마음이 가득해진다. 언제일지는 몰라도 우리 부부도 이곳에 와 누워 있을 거라 생각하면 마음이 이상해진다. 삶과 죽음의 건너편이 이곳 선산에 있다. 가족 모두에게 특별한 공간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마음이 허전해져 자식들을 만나면 든든하고 좋다.
 
추석 명절이지만 큰집 제사는 못하고 산소에 간다.
▲ 산소 올라가는 길 큰집이 보인다. 빨간 지붕이 큰집 추석 명절이지만 큰집 제사는 못하고 산소에 간다.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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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조카가 올라와 성묘를 하고 큰집으로 같이 내려왔다. 여전히 형님은 몸이 안 좋아서 잠깐 얼굴만 보고 다시 침대에 가서 누우신다. 우리는 차 한잔하고 일어나 나왔다. 예전에는 명절 큰집에 온 손님을 그냥 보내는 일이 없었다. 같이 밥을 먹고 정을 나누던 때는 옛말이 되었다. 예전 큰집이 아니다. 항상 큰집에서는 명절이 되면 가족들이 모여 북적북적했었다. 돌아서 나오는데 이상하다. 

이제는 큰집 형님이 아프다. 더 이상 사람들에게 밥을 해 줄 수 없다.

코로나가 오면서 사람들 마음도 달라졌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걸 불편해하고, 집안의 주인인 형님이 몸이 안 좋아 음식을 마음대로 못하면서 가족이라고 점심 한 끼도 마음 놓고 못 챙기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프다. 이제는 변해야겠구나. 큰집에 와서 제사하고 같이 밥 먹고 하는 일은 이제 끝난 것 같다. 

만약에 코로나가 끝나는 날이 와도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해 본다. 명절은 각자 본인들 집에서 보내고 성묘만 같이 하는 것으로 해야 할 것 같다. 제사 방법도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제삿날은 간단히 제물을 준비해서 산소에서 제사를 하는 걸로, 시댁일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 남자들이 의논해서 할 일이다.

제사란 돌아가신 분을 기억하고 후손들이 추모하면 되는 것이다. 큰집 형님이 많이 아프시고 이제는 큰집 제사 방법을 바꾸도록 가족회의라도 해야 할 듯하다. 명절에 여자들도 노동에서도 해방되어야 한다. 서로 만나 즐거운 만남이 되었으면 좋겠 다. 

형님은 결혼해서 지금까지 수 많은 세월을 제사 지내고 집안을 이끌어 오시고 이제는 몸이 아프니 억울 할 것만 같다. 나이 들면서 아픈 형님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아프고 안타깝다.

딸네 가족과 우리 부부는 서둘러 일어났다. 점심 식사로 조카며느리가 힘들면 안 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카페 같은 식당이 있었다. 그곳에서 맛있는 팥죽과 비빔밥을 간단히 먹고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추석날이지만 사람이 많다. 예전에는 추석날 밖에서 밥 먹는 사람들이 없었다. 이제는 집안에서 많은 사람과 함께 식사는 불편할 듯하다.

코로나가 없어지는 날이 와도 이제는 제사 방법이 바꾸어 지기를 희망해 본다. 요즈음 사는 게 모두 바쁘고 힘든다. 제사는 우리처럼 나이 든 세대에서 끝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단해 본다. 살아 있는 사람, 그들의 삶이 더 중요해진 시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의 브런치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태그:#추석, #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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