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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글쓰기 그룹 '대체왜하니?'는 초4에서 중3까지 10대 사춘기 아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엄마 시민기자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편집자말]
화창한 토요일. 아이가 하루종일 침대에서 뒹굴거린다. 핸드폰을 봤다가 닌텐도를 했다가. 날씨도 좋은데 집에만 있는 아이가 못마땅해질 무렵, 아이의 친한 친구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우리 딸이 심심하다고 놀이터에서 놀 수 있냐는데, OO이 지금 시간 돼?'

반가운 카톡이다. 난 침대와 한 몸이 된 딸에게 달려가 얼른 이 소식을 전했다. 예상 외로 아이 반응이 심드렁하다.

"난 더워서 나가기 싫은데? 줌(zoom)에서 만나자고 전해 줘."
"줌? 수업할 때 들어가는 그 줌 말이야? 온라인 수업도 아닌데 웬 줌이야?"
"줌에서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놀이터 안 가고 줌으로 논다고?
 
말로 하는 놀이는 거의 다 줌에서 할 수 있겠다 싶다.
 말로 하는 놀이는 거의 다 줌에서 할 수 있겠다 싶다.
ⓒ elements.env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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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줌(zoom)이란 화상 회의 서비스다. 회의가 있을 때만 사용한다. 회의 장소까지 이동하지 않아도 되고 직접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엄청난 장점이 있지만 아직 익숙하지 않다.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지는 대면 회의와 달리 오디오가 겹치는 일도, 반대로 오디오가 비는 일도 잦다.

나 같은 소심형은 말할 타이밍을 고르고 고르다 그냥 말을 삼키기 일쑤다. 그리고 다른 큰 단점은 내 눈에도 내 얼굴이 보인다는 거다. 안 그러려고 해도 회의하며 나도 모르게 내 모습을 점검한다. '앗, 앞머리가 이상하군', '화장을 좀 할 걸 그랬나' 힐끔힐끔 내 모습을 체크하다 보면 대면 회의를 할 때보다 피로가 2배는 더 쌓인다. 그런데 이 피곤한 줌으로 놀다니. 게다가 만나서 놀 수 있는데 줌이라니!

"줌으로 어떻게, 뭘 하면서 놀아?"
"줌으로는 음, 빙고를 하면서 놀 수 있지."


아이는 줌으로 할 수 있는 놀이를 말하기 시작했다.

"'시장에 가면'도 '끝말잇기'도 할 수 있어. '아이엠그라운드'도 수수께끼도 할 수 있지."

아이의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말로 하는 놀이는 거의 다 줌에서 할 수 있겠다 싶다. 아이는 계속 말한다. 사람이 많을 경우에는 마피아 게임도 한다고 했다.

"뭐? 마피아 게임도? 아, 그럴 수 있겠네."

난 우선 놀란 후, 그다음 고개를 끄덕인다. 얼마 전에는 손가락 접기도 했는데 재밌었다고 했다. 손가락 접기가 뭐냐고 물으니 아이는 나보고 오른손을 다 펴라고 한 후, 바로 게임을 시작한다.

"결혼한 사람 접어."

아이는 눈짓으로 나에게 손가락을 어서 접으라는 표현을 한다. 오호, 예전에 가끔 하던 '손병호 게임'을 아이들은 손가락 접기라고 하는구나. 난 손가락을 접었다. 그다음은 내 차례.

"초등학교 다니는 사람 접어."

아이는 손가락을 접고 바로 "아이 있는 사람 접어"라고 말한다. 번갈아 가며 손가락을 접다보니 게임이 끝났다.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남편을 불러 같이 하며 설거지 당번을 정했다.

그다음 날. 카페에서 외주 작업을 하고 있는데 학원 끝난 아이가 카페로 왔다. 내가 노트북으로 작업하는 걸 보자, 아이는 어제 일이 생각났는지 또 줌 이야기를 한다.

"친구들과 줌에서 화면 공유하고 노는 것도 재미있어."

줌에서 회의 자료만 공유했던 나는 또 궁금증이 도진다. 아이는 내 노트북에서 줌 앱을 켜서 설명한다.

"우선 화면 공유를 누르고 엄마 얼굴이 보이는 화면을 클릭해. 그다음 인터넷에서 아이들과 보고 싶은 유튜브를 찾아서 같이 보는 거야. 그러면 유튜브를 보면서 수다 떨 수 있어서 좋아."
 
아이와 함께 릴레이로 그린 그림.
 아이와 함께 릴레이로 그린 그림.
ⓒ 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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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유튜브 화면을 끄고 또 다른 설명을 하려는 듯 줌 화면으로 돌아온다.

"화면 공유를 누르고 주석으로 들어가 화이트보드를 클릭해. 그럼 모든 아이의 화면에 화이트보드가 떠. 여기에 같이 그림을 그릴 수 있어. 릴레이로 그림 그리는 것도 재미있어."

말 나온 김에 아이와 함께 릴레이로 그림을 그렸다. 마지막에 완성된 건 생각지도 못한 만두. 아이가 그림의 제목까지 지었다. 오, 재미있다, 재미있어.

4학년 아이에게 배우는 줌 활용법

난 아이에게 줌으로 회의를 하면 내 얼굴을 자꾸 확인하게 되어 스트레스란 말도 했다. 아이는 화면 아래, 비디오 중지 옆의 화살표를 클릭하더니 비디오 필터로 들어간다. 얼굴을 가릴 수 있는 스티커들이 있다.

"엄마, 이런 걸로 얼굴을 가려."

아이가 클릭한 선글라스·가면·모자·수염 스티커들이 내 얼굴을 가려준다.

"이런 걸로 얼굴을 가릴 거면 아예 내 얼굴이 안 보이게 비디오 중지를 누르겠다."

아이에게는 핀잔을 주었지만 얼굴을 저렇게 가리고 회의할 생각을 하니 웃음이 절로 났다. 기기를 사용해서 노는 건 별로 좋지 않고 밖에서 뛰어노는 것만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것도 편견인 것 같다.

아이가 친구들과 줌에서 하는 게임을 보니 친구들과 만나서는 하지 않을 게임들이다. 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 중 누가 만나서 '시장에 가면'이나 '끝말잇기' 놀이를 하겠는가. 누가 '릴레이 그림 그리기' 놀이를 하겠는가. 줌이라는 도구를 사용하긴 하지만, 그 내용은 정서적 교류가 활발히 일어나는 아날로그 게임이었다.

며칠 뒤 아이는 줌으로 친구들과 파자마 파티를 하겠다고 말했다. 저녁에 잠옷을 입고 줌에 접속해서 좋아하는 간식을 먹으며 수다를 떨고, 화면 공유로 유튜브를 함께 보다가 비슷한 시간에 잠을 잘 거란다. 그러고는 아침에 일어나 정한 시간에 줌에 접속해 간단한 게임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엄마, 해도 돼?"
"아니, 프로그램까지 다 정해놓고 무슨 허락은 허락이야."
"해도 된다는 말이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이는 '아싸!'를 외치며 신나 했다. 과연, 줌으로 어떤 것까지 할 수 있을지 못내 궁금해진다.

초4에서 중3까지 10대 사춘기 아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엄마 시민기자들의 콘텐츠
태그:#줌, #줌놀이, #초등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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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 갈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기를 바라며 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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