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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녀’는 누구의 이름인가요? 일의 세계에서, 학교에서, 병원에서, 거리와 광장에서 우리는 다양한 삶을 오늘도 살아냅니다. 우리가 부딪친 차별의 현실을 지우고 우리의 페미니즘을 시끄러운 예민함 정도로 치부하는 사회를 향해 우리는 말합니다. 당신이 아는 ‘이대녀’는 없다.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라! 차별금지법 제정, 더는 미뤄서는 안 됩니다. [편집자말]
총학생회장에 출마하며 '레즈비언'이라고 커밍아웃했다. 당선된 후 이곳저곳에서 주로 커밍아웃을 하게 된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풀었지만, 오늘은 나의 20대와 대학 생활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당선 후 내게 주어진 1년이라는 임기 동안 가장 이루고 싶었던 공약은 '인권가이드라인'이었다. 대학 내에서 우리는 학업뿐만 아니라 다양한 관계를 맺고 생활을 일구어나간다. '인권가이드라인'은 이런 맥락에서 대학 내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인권 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구성원들이 지켜야 하는 규칙들을 가이드라인의 형태로 만든 것이다.

성희롱 성폭력 문제를 예방하고,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구성원들이 혐오 발언이나 범죄에 노출되지 않고, 차별받지 않으며 온전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말이다.

'인권가이드라인'을 공약을 내세우게 된 배경엔, 대학에서 경험한 여러 사건들이 녹아있었다. 대학에 갓 입학했던 해, 내가 속해있던 한 공동체 행사에서 학생들 간의 성희롱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다. 술에 취해 잠들어있던 여학생들을 남학생들이 돌아가며 추행한 사건이었고 피해자도 가해자도 여럿이었다.

나는 개인 사정으로 문제의 행사에 참여하지 못했는데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피해자 학생들에게 문제를 공론화할 것을 제안했다. 결론적으로 해당 사건은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다. 가해 학생 중 징계의 의무를 끝까지 이행한 학생은 몇 되지 않았고, 군대에 가거나 대학을 옮기는 등의 방식으로 책임을 회피했기 때문이다.

'괜히 나서서 문제를 일으켰나' 하는 후회와 피해 학생들에 대한 미안함, 죄책감이 몰려왔다. '이 감정을 왜 내가 느껴야 하나' 하는 의문과 함께.

시간이 흘러도 해당 사건은 마음의 무거운 짐으로 남아 있었다. 그 짐이 동시에 대학에서 발생한 인권 침해 사건에 지속해서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게 된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입학 이래 학생회 활동을 이어온 나는 단과대학 학생회장이 되었고, 임기가 끝나갈 그해 겨울 무렵 대학 내 교수·학생 성희롱·성폭력 사건이 터졌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사건이 터졌다기보다 묵혀왔던 그간의 피해 사실들이 비로소 공론화된 것이었다. 자연대 K교수에 이어 경영대 P교수, 모두 자신들이 가르치던 학생들을 성희롱·성폭력 한 사실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교수·학생 성희롱 성폭력 문제 대응을 위한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 단위가 대학원 학생회와 함께 꾸려졌고, 나는 공동행동에 학부 학생회 대표로 함께 활동하게 되었다. 공동행동과 피해 학생들의 공론화와 활동을 통해 두 교수 모두 파면되었다. '파면'이라는 결과 자체로 보면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이대녀'라는 프레임이 불편하다

대학에서 교수·학생 성희롱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이를 신고하고 자세한 사건을 조사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징계가 내려진다. 해당 사건의 피해 학생들은 실명 신고 시 본인들이 특정되는 것이 두려워 익명 신고를 원했지만, 당시 익명 신고가 쉬이 받아들여지지 못했고, 피해 학생들을 대신해 조사위원회와 징계위원회에 학생 대표가 참여해 의견을 내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학생들이 무슨 전문성이 있느냐'는 답변만 돌아올 뿐이었다.

그 뒤로도 인문대 A교수, 사회대 H교수 등 이제 무슨 알파벳이 남아 있고, 이번엔 어떤 알파벳을 붙어야 하나 싶을 정도로 계속해서 성희롱·성폭력 사건들이 공론화되었다.

이를 지켜보며 인권 의제에 대한 학생 사회의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학생회 산하에 '학생·소수자 인권위원회'를 만들기도 하였고, 매번 교수·학생 성희롱·성폭력 사건, 학내 인권 침해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공동체에 피해와 와해가 생산되는 것이 안타까워 이를 예방할 수 있는 '인권가이드라인'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결론적으로 '인권가이드라인'(대학 구성원 전체에게 적용될 예정으로 대학 본부 차원에서 '인권 헌장' 제정을 논의 중)은 아직 제정되지 못했다. 학생 사회 내에서는 '전체학생대표자회의'를 통해 만장일치를 이뤘지만, 서울대 기독교수협의회 등의 반대로 구성원 간 의견 수렴이 좀 더 필요하다며 지체되고 있다. (관련 기사 : http://www.snujn.com/news/53265)

이 밖에도 나의 20대는 세월호 사건, 박근혜 정권 퇴진 촛불 집회 등 다양한 사건과 경험들로 메꿔져 있다.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내가 느꼈던 것은 "소수자의 목소리는 밖으로 내지 않으면 들리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였다.

더불어 성소수자로 살면서 해왔던 그간의 고민들, 예컨대 '커밍아웃을 했던 것, 성소수자 인권 활동을 하며 보냈던 시간들을 과연 이력서에 쓸 수 있을까?', '파트너와 함께 살 집을 마련하는데 자력이 아니고서야 가능할까, 우리가 지원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있을까?' 등 돌이켜보면, 나의 권리를 보장받고 마주한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더욱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이룰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직접 차별 사건을 경험하지 않아도, 나의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선택지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래서 누군가에겐 당연한 선택들을 나는 포기해야 한다면 그것 또한 명백히 차별이니까.

그래서 나는 '이대녀'라는 프레임이 불편하다. 각기 다른 맥락으로 그 프레임이 불편하겠지만 내게 '이대녀'는 '사회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불편함을 표현하고, 페미니즘을 지지하고, 시끄러운 20대 여성들'이라는 인상을 준다. 내가 겪어온 20대의 경험과 시간들은 '문제의 상황에 당연한 목소리를 내었다고, 잘 해왔다고 하는데, 누군가 그러한 목소리를 '이대녀'라는 납작하고 단순한 프레임 안에 넣어버리기 때문이다.

아마 나처럼 수많은 여성들의 삶에 다양한 경험과 단면들이 존재할 것이다. 당신이 아는 이대녀는 없으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개개인의 권리가 존중받고 보장되며, 점점 더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다. 앞으로 올 누군가의 20대는 내가 경험한 20대보다 더 평등한 사회이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보미님은 제58대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이다. 서울대학교 사회학·아동가족학 학부를 졸업하고 서울대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를 발족, 인권가이드라인 제정에 기여했다. 성소수자 인권을 중심으로 다양성의 가치를 확산시키고자 모인 청년 인권 단체 '다움'(다양성을 향한 지속 가능한 움직임)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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