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9.23 13:31최종 업데이트 21.09.23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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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와 화상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3국의 새로운 안보 파트너십인 '오커스'(AUKUS) 발족을 발표하고 있다. 오커스는 이들 세 국가명을 딴 이름이다. ⓒ 연합뉴스

 
놀라운 전개다. 아프가니스탄 철수로 "시대의 종언"을 선언한 지 불과 보름 만에 미국은 미군이 주도할 "새로운 시대" 구상을 드러냈다. 그 중심에는 9월 15일 발표된 오커스 방위협정(AUKUS defence pact)이 있다. 오커스는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 강화를 목표로 미국, 영국, 호주 3국이 맺은 외교안보 협의체로, 이 협정에 따라 호주는 세계에서 7번째로 핵추진 잠수함을 보유하게 된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오커스 출범으로 아프가니스탄에 쏠렸던 전 세계의 시선을 순식간에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집중시켰다.

새롭게 떠오르는 것은 무언가를 밟고 태어난다. 균열은 필연적이다. 균열이 일으키는 어지러움 속에 이해관계는 신속히 재편된다.


인도-태평양 중심의 오커스 등장이 흔드는 것은 무엇일까. 현재 보이는 것은 미국-영국-프랑스-EU 등 덩치 큰 서구 세계의 갈등이다. 오커스가 특정 대상을 적대시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전 세계가 암묵적으로 알고 있는 오커스의 본 목표, 중국을 본격적으로 겨누기 전에 이루어지는 세력 조정 과정이다. 그 결과로 어쩌면 대서양 안보의 중핵이자 미국이 유럽에 지배력을 행사하는 통로인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가 희생될 수도 있다.  

호주가 쏘아올린 공

시간을 지난 6월 영국에서 개최된 G7으로 돌려보자. 당시 회의는 무난하게 진행되었지만 여기저기서 긴장 관계가 감지되었다.("소시지 때문에 불안한 바이든, 한국도 긴장해야", http://omn.kr/1twiu). 영국과 EU 사이에선 브렉시트로 불거진 통상 갈등(소시지 전쟁)이 한창이었다.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와 돈독하고 자신과는 정치 결이 달랐던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손을 잡아줬다. "세계적 영국"을 꿈꿨지만 국제적으로 다소 고립됐던 영국과 갑작스럽게 '신대서양 선언'을 발표한 것. 반면 트럼프에게 쓴 소리를 했고 "돌아온 미국"을 환영했던 EU와는 의외로 불편한 상태다. EU가 미국과 중국의 양자택일 구도에 빨려 들어가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호주 스콧 모리슨(Scott Morrison) 총리는 서구의 미묘한 균열을 치고 들어갔다. 호주는 경제적으로 중국 의존도가 높지만 지향하는 가치는 서구 사회와 유사하다. 2010년대 후반까지 호주는 미-중 사이에서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2016년 국방백서에서는 "중국의 경제적 성장이 기여하는 바를" 환영하면서도 "공유하는 가치에 기반을 둔 미국과의 동맹"을 최우선시 한다며 경제와 국제 정치를 분리시켰다. 대신 자국의 지정학적 가치를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기존의 '아시아-태평양(Asia-Pacific)'으로 규정하던 자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2017년 외교백서에는 '인도-태평양(Indo-Pacific)'으로 확장시킨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 ⓒ EPA/연합뉴스


2015년 잠수함 건조 계획을 발표한 호주는 국제 입찰을 실시, 2016년 프랑스 국영기업인 나발그룹(Naval Group)을 최종 선정했다. 하지만, 계획은 지연되었고 계약 당시 500억 달러로 예상되었던 비용이 2020년 800억 달러, 2021년에는 900억 달러로 올랐다.

프랑스와의 계약이 난항에 부딪치면서 호주는 '플랜 B'를 마련한다. 알려진 바로는 2021년 3월 즈음 모리슨 총리가 영국 존슨 총리에게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미국에게 맡길 수 있는지를 타진했고 영국은 미국에 다리를 놓아 주었다. G7 의장국 권한으로 초대된 모리슨 총리는 G7에서 바이든-존슨과 3자 회담을 갖고 핵추진 잠수함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G7 직후 모리슨 총리는 파리로 간다. 잠수함 계획을 둘러싼 문제에 대해 마크롱 대통령과 논의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태에서 미국은 핵추진 잠수함을 호주에 약속했다. 이미 24억 달러를 프랑스에 지불한 상태였고 프랑스와의 계약 유지는 호주에게 미국과 중국 중 양자택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모리슨 총리는 디젤-전기 잠수함보다 핵추진 잠수함을 선택, 프랑스와의 계약을 파기했다. 이로서 호주는 미국 쪽으로 확실히 입장 정리한다. 대신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 이외에 어떤 국가하고도 공유하지 않았던 미국의 핵기술을 얻는다.

'게임 체임지'와 '결속력'이 필요한 미국

프랑스와 호주는 모두 미국의 주요 동맹국이다. 그런데 미국은 이들의 잠수함 갈등을 중재하지 않고, 프랑스와의 관계 손상까지 감수하면서 양국의 계약 파기에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그리고 호주에 핵잠수함이라는 이례적 특혜를 줬다.

일방적이고 편파성이 농후한 이 결정은 미국 국방 전략의 일부다. 미 국방부가 공개한 '2018 국방전략 요약'에 따르면, 국방부는 목표를 테러리즘에서 '국가 간 전략 경쟁'으로 전환시켰다. "열강 경쟁"의 시대를 예측하며, 국방부는 중국을 주경쟁자로, 인도-태평양이 경쟁지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승리를 위한 주 전략의 하나로 "동맹의 강화와 새로운 파트너 만들기"를 강조했다.

칼럼니스트 사이먼 티스달(Simon Tisdall)이 지적하듯이, 미국의 동맹은 광범위하나 결속력이 느슨하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냉전의 두 축이 사라지고 세계가 다극화되면서 가속화된 현상으로, 중국에 경제 의존도가 높은 지역이나 군사적 긴장이 낮은 유럽에서 두드러진다. 호주는 전자, 프랑스는 후자의 대표적 예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2020년 9월 UN 총회에서 "세계가 미-중 경쟁 구도에 지배되어서는 안 된다"며 제3의 길, 독자적인 EU의 길을 표방한 바 있다.

중국 견제를 위해 동맹을 재결속시켜야 하는 미국 입장에서 프랑스-호주 잠수함 갈등은 호주를 확실히 미국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호재였다. 그리고 인도양과 태평양을 잇는 호주의 지정학적 위치는 아프가니스탄 철군으로 인해 신속한 게임 체인지가 필요한 바이든의 이익과도 맞아 떨어졌다. 미국은 핵잠수함 카드를 던졌고 호주는 그 카드를 받았다.
 

미·영·호주, 새 안보동맹 '오커스' ⓒ 연합뉴스

 
호주의 선택은 프랑스에겐 여러모로 치명적이다. 천문학적인 액수의 경제적 손실과 외교적 수모가 일차적이다. 그보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위치가 장기적으로 불안정해졌다. 프랑스는 뉴칼레도니아(New Caledonia)와 프렌치 폴리네시아(French Polynesia) 등 인도-태평양 지역에 프랑스령을 가지고 있다. 지정학적 유리함을 바탕으로 프랑스는 이미 이 지역 안보에 관심을 기울이며 호주 및 인도와의 방위조약을 추진, 자국의 입지를 굳힐 예정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잠수함 계약 파기가 발생한 것이다.

프랑스의 반발을 예상한 듯 바이든은 오커스 발표 당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확고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 프랑스를 "핵심 파트너"로 특별히 언급했다. "대서양과 태평양 파트너들의 이해를 가르는 지역적 분리"는 없다며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프랑스와 긴밀히 협력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바이든의 발언은 미국 쪽으로 확실히 붙으라는 무언의 압박인 걸까, 아니면 말 그대로 선의인 걸까. 공은 프랑스로 넘어갔다.

"등 뒤에서 찔린" 프랑스

"등 뒤에서 찔렸다." 프랑스 외무장관 장-이브 르 드리앙(Jean-Yves Le Drian)이 오커스 발표 직후 내놓은 발언이다. 프랑스 정보국이 미국-영국-호주의 움직임을 전혀 포착하지 못했고 20세기부터 동맹 관계인 3국으로부터 사전에 어떤 언질도 듣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알았더라면 잠수함 계약을 뒤늦게나마 제대로 적극적으로 이행했을까. 한 국가의 핵심 방위 산업 계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프랑스도 1차적인 책임이 있다.

프랑스는 현재 계약 실행 부분에 대한 복기보다 외교적 배신감에 집중하고 있다. 프랑스 외무장관은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시, "이것은 동맹국들 사이에서 하는 행동이 아니다" "(바이든의) 일방적이고 급작스럽고 예상할 수 없는 결정에 트럼프가 떠올랐다"고 혹평했다. 실망과 유감을 넘어 "배신"으로 표현 수위를 높이며, 미국과 호주의 대사를 본국으로 불러들였다. 영국의 경우 대사 소환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프-영 국방부장관 회의를 취소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왼쪽)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오른쪽)이 2020년 6월 18일 영국 런던의 홀스 가드 퍼레이드에서 곡예 비행을 관람한 후 걷고 있다. ⓒ 연합뉴스


7개월 뒤 대선을 치러야 하는 마크롱 입장에서 영-미-호주 3국에게 '뒤통수를 맞은' 사실은 치명적인 약점이다. 대선에서 맞붙을 것으로 예상되는 극우 마린 르 펜(Marine Le Pen)은 오커스를 "정치적 재앙" "치욕"으로 표현하며 벌써부터 국내 정치에 쟁점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선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마크롱이 택할 수 있는 최대치는 EU 활용이다. 이미 프랑스는 현재 진행 중인 EU-호주 간의 FTA논의를 지연시킬 것을 EU에 요청했다. 호주는 잠수함과 통상은 별개의 문제라며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Ursula von der Leyen) 유럽연합 집행 위원장은 "우리 회원국이 수용하기 어려운 방식의 취급을 받았다.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다"며 프랑스에 힘을 실어 주었다.
  
EU "NATO를 신뢰할 수 있는가?"

유럽연합 집행위원장과 마크롱은 유럽 중심론자로서, 미국 의존도가 높은 NATO에 회의적이다. 2019년 11월, 마크롱은 <이코노미스트>(Economist) 인터뷰에서 NATO가 "뇌사 상태"에 있다며, 유럽 스스로 전략적 지정학적 힘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방안으로 미국으로부터 독립된 EU군 창설을 원했다. 하지만 독일 메르켈 총리가 마크롱의 "뇌사" 발언이 "과도했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고 이후 EU군 창설 논의는 가라앉았다.

EU군 논의는 지난 8월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기점으로 되살아났다. 철군 문제에 있어 미국과 다른 입장을 견지했지만 NATO가 미군 주도 하에 있기 때문에 EU는 유의미한 독자적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미국 의견을 따라야 했다. 이후, EU가 군 작전 영역에서 "전략적 독립성(strategic independence)"을 키워야 한다는 인식이 EU 내부에서 급속도로 늘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 연합뉴스

 
오커스가 발족한 9월 15일, EU 집행위원장은 EU군 창설을 다시 꺼냈다. 내년 프랑스에서 열리는 EU 방위정상회의(EU Defence Summit)를 언급하며 EU가 "한 단계 더 나아갈 시기"가 왔고 EU 각국이 EU의 독자적 군 창설을 위해 "정치적 의지"를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크롱이 집행위원장의 의견에 반대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유럽중심론자인 마크롱에게 EU군 창설은 그의 정치 신념, 미-중 양강 구도에 빠지지 않고 유럽 독자 노선을 구현할 절호의 기회다. EU군이 창설된다면 NATO의 상대적 약화는 불가피하기 때문에 "등 뒤에서 칼맞은" 프랑스 대통령으로서는 미국에게 보복할 유용한 수단이기도 하다. EU군 창설이 당장 여의치 않으면 NATO를 탈퇴하는 선택지도 있다.

"세계적 영국"에 대한 '착수금'

오커스로 조용히 확실하게 실리를 챙긴 쪽은 영국 보리스 존슨이다. 미국과 호주에 다리를 놓아준 공으로 그의 표현대로 "파괴될 수 없는" 관계임을 과시했다. 동시에 대서양에 고립되지 않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존재감을 발휘할 기회를 얻었다. 핵잠수함 프로젝트에 일부 참가함으로써 경제적 이득도 일부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이유로 "기회주의적"이라는 비난을 프랑스로부터 들었지만, 프랑스의 직접적 보복 대상은 아니다.

하지만 외교적 승리라고 자축하기에는 이르다. "세계적 영국"에 대한 "착수금." <가디언>이 전한 백악관발 코멘트로, 영국이 미국에게 지불해야 할 것이 아직 많이 남았다는 뜻이다. 게다가 영국에 절실한 영-미 자유무역협정(FTA)도 타결 시점이 불확실하다. UN 총회에서 바이든을 만난 후 보리스 존슨은 "(바이든이) 튀길 생선이 아주 많다"고 말했다. 영-미 FTA가 미국 현안에서 뒤로 밀리고 있음을  인정하는 발언이다. 결과적으로 영국은 요동치는 국제 질서 속에서 미국을 지지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 

EU를 탈퇴한 상태에서 영국이 제외된 EU군 창설 논의도 반가울 수 없다. 영국 입장에서 최선은 영국이 참가하고 있는 NATO가 계속해서 유럽 안보의 주축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때문에 노동당은 미국-호주와의 동맹 강화를 환영하면서도 영국의 안보 관련 최우선은 대서양이 되어야 하고 EU 및 프랑스와의 관계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구 사회가 충돌하는 가운데 바이든과 마크롱은  9월 22일 전화 통화를 했다. 프랑스로 소환한 대사를 일단 미국으로 복귀시키고 10월 말에 정상끼리 만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달간 벌어질 양국 협상에 따라 NATO의 미래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으로 '새로운' 국제 질서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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