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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에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독립운동단체(제6차 교육과정 국정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의 표현)" 광복회의 활동을 체계적으로 소개한 최초의 서적 <광복회, 독립전쟁을 이끌다> 표지
 "1910년대에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독립운동단체(제6차 교육과정 국정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의 표현)" 광복회의 활동을 체계적으로 소개한 최초의 서적 <광복회, 독립전쟁을 이끌다> 표지
ⓒ 대구경북연구원, 독립운동정신게승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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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차 교육과정(1996년)의 <국정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는 "1910년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독립운동단체는 광복회였다"라고 소개했다. 2019년 10월 1일 대통령은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대구는 광복회가 창립된 자랑스러운 역사를 간직한 지역입니다"라고 말했다.  

광복회는 1910년대 무장 항일 투쟁을 주도한 비밀 결사였다. 1920년대는 김원봉과 이종암 등의 의열단, 1930년대는 윤봉길과 이봉창 등의 한인애국단이 그 역할을 계승하였다. 그만큼 광복회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서 큰 역할을 수행한 단체였다. 하지만 아직도 일반 국민들 중에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많은 실정이다.

1910년대 최고의 무장 항일 결사 '광복회'

1910년대는 망국의 충격과 일제의 혹독한 무단 통치 등에 짓눌려 제대로 무장 독립운동을 펼치지 못하던 시기였다. 이때 박상진 총사령, 우재룡 지휘장, 권영만 지휘장, 채기중 경상도 지부장, 김한종 충청도 지부장, 이병찬 전라도 지부장, 이석대 초대 만주 사령관, 김좌진 2대 만주 사령관 등이 중심이 되어 전국 조직의 광복회를 대구에서 결성했다.

1910년대 최대 규모의 항일 결사가 대구에서 결성된 것은 지리적, 경제적 이점을 활용하기 위한 조치였다. 대구는 1601년 경상도 전역을 통할하는 경상감영이 설치된 이래 일제 강점기에도 여전히 한강 이남 최대 요지였다. 영남대로, 낙동강, 서문시장이 재화와 사람을 운집시켜 준 대구는 일찍이 국채보상운동을 선도한 경험도 가지고 있는 지역이었다.

'광복회'가 대구에서 결성된 까닭

박상진 등은 1912년 대구 약전골목에 상덕태상회를 차려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는 본부로 삼았다. 그 후 3년에 걸쳐 전국 각도와 만주의 지사들을 규합해 조직화했고, 드디어 1915년 8월 25일 대구 달성공원에서 200여 지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대회를 개최했다.

대구, 영주, 삼척, 광주, 예산, 연기, 인천, 단둥, 장춘 등지에 활동 거점을 마련한 광복회는 1915년 겨울부터 본격 활동에 들어갔다. 광복회가 가장 역점을 둔 사업은 군자금 모금이었다. 독립군으로 활동하려는 청년을 모집해 만주의 군사학교에 입학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 일제와 독립전쟁을 전개하는 것이 광복회의 목표였기 때문이다.

군자금을 모집하고 친일파를 처단하다

광복회는 경주 효현교에서 일제의 세금 마차를 탈취하고, 영월과 청양의 중석광을 공격하는 한편 한국인 부호들을 대상으로 군자금을 모으는 활동을 계속했다. 그 과정에서 비협조적이거나 오히려 일제에 밀고하는 등 노골적으로 반민족 행위를 일삼는 친일파들을 처단하기도 했다. 경상도 관찰사를 지낸 칠곡의 장승원, 충남 아산 도고면장 박용하가 그 대표적 인물이었다.

1918년 10월 16일자 매일신보 보도는 광복회 활동이 당시 우리 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를 단적으로 증언해준다. 기사에는 "광복회, 반도의 인심을 뒤흔들어"라는 뜻의 제목이 붙어 있다. 조선헌병대사령부가 조선총독에게 보고하기 위해 만든 <대정 8년 조선 (충청도 지역) 소요 상황>에도 "충청도 3 ‧ 1운동의 배경은 광복회의 활동"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반도의 인심을 뒤흔든" 광복회, 서훈자 116명
 
2018년 8월 25일 광복회 결성을 기념하는 행사가 최초로 대구 달성공원에서 열렸다. 제6차 교육과정 국정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는 "광복회는 1910년대에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독립운동 단체였다"라고 평가했지만, 창립 103주년이 되도록 결성 기념행사가 열리지 못했다.
 2018년 8월 25일 광복회 결성을 기념하는 행사가 최초로 대구 달성공원에서 열렸다. 제6차 교육과정 국정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는 "광복회는 1910년대에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독립운동 단체였다"라고 평가했지만, 창립 103주년이 되도록 결성 기념행사가 열리지 못했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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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을 되찾은 이후 대한민국정부가 독립유공자로 인정한 지사들의 면면도 광복회의 활발한 활동을 알게 해준다. 당시 비밀결사였음에도 일제가 파악한 광복회원이 62명에 이르렀고, 현재까지 서훈을 받은 지사도 116명에 이르고 있다.
  
광복회의 모든 것을 집대성해서 알기 쉽게 설명한 저술이 처음으로 발간되었다. <광복회, 독립 전쟁을 이끌다>라는 제목의 이 책은 대구경북연구원(원장 오창균)과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상임대표 우대현)가 2021년 8월 31일에 함께 펴냈다.

책의 구성과 집필진은 아래와 같다.

제 1편 '지금 우리에게 광복회는 어떤 의미인가'
정인열 :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 홍보위원장
이재필 : 대구경북연구원 연구위원

제 2편 '비밀단체의 시대, 광복회를 조직하다'
이성우 : 충남대 충청문화연구소 연구원
김일수 : 경운대 교양학부 교수

제 3편 '끝나지 않은 항일 투쟁'
이동언 : 선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김희주 : 한국국제대학교 교수

제 4편 '광복회의 유적, 그리고 기억'
김태훈 :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 교육위원장
김성실 ‧ 안성조 : 대구경북연구원 대구경북학연구소
박지극 : 시인,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 자문위원장


대구경북연구원과 책을 공동으로 펴낸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 우대현 상임대표는 "국정 교과서 기술에 이어 대통령 기념사에서도 언급될 만큼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1910년대를 대표하는 비밀 무장 독립운동단체로서, 1915년 대구에서 결성된 광복회가 일반에게 아직도 널리 알려지지 않아 매우 안타깝습니다. 이 책을 계기로 광복회가 국민들께 역사적 사실로 한 발 더 다가가기를 기대합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덧붙이는 글 | 대구경북연구원,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 공편, <광복회, 독립전쟁을 이끌다>(2021년 8월 31일), 크라운판, 234쪽, 비매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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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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