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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을 바라보는 독문학자 안삼환 선생의 첫 소설 <도동 사람>은 여러모로 독자의 시선을 끌 만하다. 내게도 그랬다. 많은 사람에게 낯설고 딱딱하게만 느껴지는 독문학을 전공한 학자의 살아온 발자취를 담은 자서전적인 소설인데 제목으로 고향 동네 이름을 썼다는 것만으로도 시골 출신인 내게 친근하게 다가왔다. 어쩐지 내 고향 이야기를 들려줄 것 같은 생각으로 급하게 책장을 펼쳤다. 내가 근무하는 직장이 있는 포항시 죽장면이 소설의 첫 구절부터 등장하는데 이 소설에 등장하는 지명을 하나하나 지도에 찾아보면서 읽었다.

영천시 도동이라는 마을에서 시작하는 어린 시절의 추억, 집성촌의 이야기, 벼슬을 마다하고 시골에 묻혀 살면서 후학을 양성하는 어른들의 이야기가 정겹고 재미났다. 요새 유난히 빠져있었던 유튜브도, 골프 중계도 마다하고 끊임없이 600쪽이 넘는 이 소설을 읽어 나갔다. 출근하고 업무용 컴퓨터의 전원을 켜는 것도 잊고 이 소설의 포로가 됐다.

'토마스 만'을 전공한 독문학자의 자서전적인 성장 소설이라고 단언하기엔 <도동 사람>은 그 분량만큼이나 여러 가지 주제와 담론 그리고 서사를 담고 있다.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에서>처럼 술술 책장을 넘기게 되는 재미가 있으면서도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독재 정권, 민주화 운동 그리고 코로나 시국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시대를 고스란히 엮었다.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처럼 학문에 정진하는 한 인간의 개인적인 고뇌를 숭고한 인간미로 승화시키면서도 대학 사회의 문제를 더 세밀하고 파헤쳤다. 그것도 모자라 우리나라 독문학계의 형성과 발전 그리고 독문학자로서의 성과와 반성도 펼쳐진다.

후반부에 독문학자로서의 여정과 성과를 기술하는 분량이 많아지면서 그 주변 인물들의 근황이 전해지지 않아서 답답해진 나머지 그들의 안부가 궁금해질 정도로 일개 독자인 내가 도동 사람을 마치 친척이나 오랜 친구로 여기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다양한 스펙트럼을 다루면서도 이토록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설이 또 있을까 싶다. 소설 서두에 죽음을 앞둔 노학자가 제자인 출판사 사장에게 원고를 넘기는 장면을 마치 추리 소설의 한 장면처럼 묘한 긴장감을 유발하고 중간마다 원고를 읽어 나가는 출판사 사장의 언급을 삽입하는 독특하면서 읽는 재미를 더 하는 장치를 사용했다는 것을 볼 때 이 소설이 작가의 첫 소설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도동 사람>을 읽는 독자들은 이런 충동에 시달리게 될 것 같다. 영천시 도동이라는 동네를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충동, 감히 엄두를 못 냈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를 꼭 읽겠다는 충동, 그리고 안삼환 선생의 작은 딸이 썼다는 창작동화집 <엄마별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읽고 싶다는 충동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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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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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도동 , #안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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