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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낀40대'는 40대가 된 X세대 시민기자 글쓰기 그룹입니다.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흔들리고, 애쓰며 사는 지금 40대의 고민을 씁니다. 이번 주제는 '40대의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나의 온라인 첫 문장

'남편은 아직 퇴근 전이다. 이 시간까지...'

내가 블로그에 올린 첫 문장이다. 시간은 2011년 6월 23일 새벽 2시 48분. 그때 나는 30대 후반이었고, 첫째는 10개월이었다. 나는 아기를 재우고 난 뒤,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만의 시간이 너무 필요했던 나는 내일 아침에 다크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온다고 해도 온전한 그 시간을 즐기고 싶었다. 내친김에 블로그를 오픈하고 첫 글을 올렸다. 물론, 나 이외에는 아무도 읽지 않았다. 이웃수 0명, 읽는 사람도 0명. 개인기록을 시작한 첫 발걸음이었다.

이후의 글은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모유수유나 복직 후의 두려움, 아기에 대한 걱정이 주된 내용이었다. 이후 둘째 임신으로 다시 휴직과 복직을 반복하면서 워킹맘의 직장생활과 육아이야기가 내 블로그의 주된 내용이었다. 이 즈음, 온라인 활동을 활발히 하기 시작했고, 블로그 기록을 꾸준히 늘려가면서 이웃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블로그에 사적인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블로그에 사적인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 anete_lusina,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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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온라인 활동을 하다 보니 오프라인 관계보다 온라인 관계가 더 많아지기도 했다. 오프라인 관계 속에서는 '언니' 혹은 이름으로 불리는 일이 다반사지만, 온라인 속에서는 '이틀'이라는 닉네임이 더 익숙하다.

혹, 온라인에서 시작해 오프라인 만남으로 이어져도 '이틀' 뒤에 '언니'가 붙는다. 나라는 사람은 현실세계에서 경기도에 살고 있는 40대 중반의 아줌마지만, 온라인 속의 나는 이틀이라는 닉네임으로 하루를 이틀처럼 사는 이야기를 기록하는 사람이다.

나는 왜 온라인 공간에 글을 썼을까?

내가 온라인 기록에 열심이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건대 나는 관계에 목말랐던 것 같다. 늦은 결혼과 출산으로 친구들의 아이는 초등학생이거나 중학생이어서 공통관심사를 나눌 수 없었다.

육아의 고충을 이야기하면, 그때가 가장 빛날 때라고, 즐기라는 조언만 돌아올 뿐이었다. 휴직을 하니 직장 동료들과 대화는 뚝 끊겼다. 간간히 연락을 주고받긴 했지만, 그건 안부 차원이었지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긴 힘들었다.

성인이 된 후의 관계란, 시간과 공간을 절대적으로 함께 한 뒤에, 서로의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것이었다. 사람과의 관계는 신뢰를 쌓을 시간이 필요했고, 오랜 시간 함께하지 않으면 다시 만나도 어색하기 일쑤였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도 아기 맡길 곳을 먼저 찾아야 했다. 아기와 같이 외출을 하면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도 모르게 허둥지둥 먹다가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아기가 어지럽힌 주변 청소는 덤이었다. 남편과 외식을 하면 서로 교대로 밥을 먹었다. 한 명은 아기를 안고 있다가 다른 한 명이 다 먹으면 교대했다. 대화를 하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온라인으로 외출하고 대화하기 시작했다. 아기가 잠들고 있는 새벽 혹은 밤에 컴퓨터 앞에 앉았다. 세상 돌아가는 이슈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의견을 쓰고, 읽었던 책에 대해 감상을 쓰고, 친구에게 터놓듯 직장고민과 육아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런 공간에 누군가 댓글을 달아주기 시작했다.

'사실은 나도 아이한테 화내고 죄책감 느껴요.'
'저도 이 책 재미있게 읽었어요.'
'저만 그런 줄 알았는데, 글 읽고 위로 받았어요.'


소통을 하며 노트에 쓰는 일기와는 다른 재미를 발견했다. 온라인에서는 나처럼 관계에 목말라하는 엄마들이 넘쳐났다. 아이들의 나이대가 비슷해, 고민도 비슷했으며, 육아의 고충을 나누고, 자신의 성장을 고민하는 사람들이었다. 온라인에서 시간과 공간을 나누는 경험은 내게 특별했다. 아이들 나이대가 비슷하거나 같은 워킹맘이라서 동지애를 느끼며 가까워졌다.

온라인에서의 인연은 글쓰기로 이어졌다. 한 블로그 이웃이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것을 보고 따라한 것이 시민기자가 된 계기였다. 또 하나, 이게 될까? 하면서 시작한 글쓰기 모임이 벌써 3년째다.

이 모임에서 다양한 시도를 했었다. 같이 에세이 구독서비스를 해보기도 했고, 온라인으로 합평도 했고, 새벽 6시면 줌으로 모여서 소설쓰기도 했다. 화면에서는 자판과 서로의 손등밖에 볼 수 없지만, 같은 시간에 깨어 글을 쓴다는 건 든든한 백을 가진 것 같았다.

사는 곳은 서울, 경기도, 대구, 울산, 부산, 해외까지 다양했지만, 온라인 글쓰기 모임은 한 곳을 향했다. '글쓰기'에 진심인 사람들. 우리는 온라인에서 글쓰기에 도움 되는 강좌나 강연, 좋은 책을 추천하기도 한다. 가끔 고민이나 푸념도 늘어놓는다. 이제 나의 근황은 온라인 친구들이 가장 자주 듣고, 많이 안다.
 
 우리는 매일아침 6~7시, 서울, 경기, 부산, 대구, 해외까지. 1시간 동안 줌으로 접속해 각자의 글을 쓴다.
 우리는 매일아침 6~7시, 서울, 경기, 부산, 대구, 해외까지. 1시간 동안 줌으로 접속해 각자의 글을 쓴다.
ⓒ 이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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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에서 발견한 나와 '결'이 맞는 사람들

누군가 온라인은 홍보를 목적으로 해야 한다고도 했고, 온라인 관계는 가볍게 생각하라고도 했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되는 것이 온라인 관계라고, 냉정하게 생각하라는 말도 들었다. 그것은 맞는 말이기도 했고, 틀린 말이기도 했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인연이 다하면 흘러갔고, 새로운 인연이 다시 나타났다. 노력한다고 해서 멀어지는 인연을 잡을 수도 없었고, 의외의 인연이 도움을 주기도 했다.

고등학교 친구들이 평생 간다는 말도 나에겐 해당하지 않았고, 직장에서 친구를 사귈 수 없다는 말도 나에겐 해당하지 않았다. 직장에서 만난 친구와 퇴사 후에도 안부를 주고받고 있고, 어떤 목적도 없이 10년째 우정을 끈끈하게 다져온 온라인 친구도 있으니까. 다만, 흘러가는 인연에 상처받지 말고, 아쉬워하지 않을 준비는 하는 편이다. 현재 머물고 있는 인연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노하우라면 노하우다.

오랜 동안 온라인에 기록하고, 소통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결이 맞는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그들을 보면서 나를 다시 되돌아보게 되기도 한다. 나의 이런 점이 저 사람과 비슷하구나, 내가 이런 점이 좋아서 저 사람한테 끌리는구나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온라인이라는 망망대해 속에서 나의 좌표를 찾아가는 느낌이랄까.
 
 좋은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쭉 이어졌으면 좋겠다.
 좋은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쭉 이어졌으면 좋겠다.
ⓒ johnschno,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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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의 첫 문장은 지극히 사적이었고, 육아의 힘겨움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것이었다. 악플로 상처받고 고생한 경험도 있지만, 온라인은 나에게 부정적인 것보다 긍정적인 영향을 더 많이 주었다.

만약 그 시절, 나에게 온라인이라는 공간이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아이들이 커가면서 정서적 고립은 좀 덜해졌겠지만, 글벗들을 만나지도 못했을 것이고,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되는 기회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나아가 출간의 기회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내 인생의 작은 기록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기록들이 쌓여 사람과의 인연, 좋아하는 일과의 인연이 만들어지고 있다. 예상하건대, 기록을 멈추지 않는다면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은 당분간 쭉 이어지리라 생각한다. 그랬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혜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longmami) 및 브런치(https://brunch.co.kr/@longmami)에도 실립니다.


group낀40대 http://omn.kr/group/forty
40대가 된 X세대입니다.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흔들리고, 애쓰며 사는 지금 40대의 고민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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