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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드레기는 갓이 한껏 펼쳐진 송이버섯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없는 말이고, <우리말샘>에서는 '갓버섯의 방언(강원)'으로 잘못 풀어놨다.
 퍼드레기는 갓이 한껏 펼쳐진 송이버섯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없는 말이고, <우리말샘>에서는 "갓버섯의 방언(강원)"으로 잘못 풀어놨다.
ⓒ 이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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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앞두고 동해 북평장에 가니 사람이 북적댄다. 장터 안쪽으로 들어가니 송이를 팔러나온 장꾼하고 송이를 사려는 사람하고 흥정이 붙었다. 

빨간 플라스틱 바구니에 갓이 확 펴진 송이가 대여섯 개씩 담겼다. 장꾼은 퍼드레기라서 값도 헐하고 푸짐한 데다 송이 향은 1등품보다 훨씬 진하다면서 말만 잘하면 거저도 준다고 너스레 떤다.

송이와 퍼드레기

구슬버섯, 그물버섯, 달걀버섯, 깔대기버섯, 노루궁뎅이버섯, 석이버섯, 말굽버섯 따위 이름에서 보듯 버섯은 흔히 생김에 따라 이름을 붙인다. 송이버섯은 그와는 달리 솔잎이 덮인 소나무 아래에서 주로 나는 까닭에 솔 송(松) 자에 귀 이(耳)를 붙여 만든 말이다. 그러면 '퍼드레기'는 어떻게 생겨난 말일까?  

<표준국어대사전>에는"해당 단어로 시작하는 검색어가 없습니다"로 해놓고 <우리말샘>에 가서 "'갓버섯'의 방언(강원)"으로 풀어놨다. 

말하자면 강원 지역에서 쓰는 '퍼드레기'는 잘못 알고 쓰는 말이니 '갓버섯'으로 고쳐 쓰라는 소리다. 어이없다. 퍼드레기는 강원도에서만 쓰는 말이 아니다. 송이가 나는 경북 봉화나 울진에서도 널리 쓴다.

더구나 '송이버섯'을 '갓버섯'이라고 하는 풀이는 이해할 수 없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스스로도 '갓버섯'과 '송이버섯'은 다른 것으로 풀이해놨다.

갓버섯 주름버섯과의 버섯. 크고 자루가 긴 우산 모양이다. 갓의 겉면은 갈색이고 자루는 속이 비어 있다. 온몸이 건조한 솜 모양으로 탄성(彈性)이 매우 강하다. 식용하며 늦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산과 들에서 자라는데 전 세계에 분포한다.

송이버섯 송이과의 버섯. 갓은 지름이 8~20cm이고 겉은 엷은 다갈색, 살은 흰색이다. 독특한 향기와 맛을 지닌 대표적인 식용 버섯이다. 주로 솔잎이 쌓인 습지에 나며 한국, 일본, 중국 남부에 분포한다. 송이버섯은 '송이과'에 들지만 갓버섯은 '주름버섯과'에 든다. 갈래가 전혀 다른 버섯이다.

퍼드레기는 퍼드레지다에서 온 말

물론 퍼드레기는 단순히 송이에만 쓰는 말은 아니다. 너무 퍼드러지게 벌어진 푸성귀도 '퍼드레기'라고 한다. 이 말은 지역말 '퍼드레지다'에 이름씨를 만드는 뒷가지 '-기'가 더해진 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퍼드레지다'의 표준말은 '퍼드러지다'다.

① 아무렇게나 쭉 뻗고 앉거나 눕다
② 죽거나 까무러쳐서 보기 흉하게 쭉 늘어지다


'퍼드러지다'에서 '퍼드레지다'로 소리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다만, '퍼드레기'나 '퍼드러진 흙발'에 보듯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온 뜻매김은 조금 아쉬운 데가 있다. 

김유정(1908~1937)이 쓴 <총각과 맹꽁이>이 한 대목을 보자.

"봉당 아래 하얀 귀여운 신이 납죽 놓였다. 덕만이는 유심히 보았다. 돌아앉아서 남이 혹시 보지나 않나 살핀다. 그리고 퍼드러진 시커먼 흙발에다 그 신을 뀌고는 눈을 지그시 감아보았다."

여기서 '퍼드러진 시커먼 흙발'은 넙데데한 흙투성이 발을 가리킨다. 쭉 뻗어 눕거나 죽거나 까무러쳐 늘어진 모양으로는 퍼드러진 흙발이나 송이 퍼드레기를 말하긴 어렵다. '지나칠 만큼 넙데데하게 펼쳐지다'는 뜻은 담지 못했다.

이제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사전은 말의 곳간 아닌가.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만 표준어로 인정해서 모아두는 곳이라면 너무도 보잘것없는 곳간이 되고 만다. 

<표준국어대사전>에 평생 가야 한 번도 쓰지 않을 옛 한자말이나 낯설기 그지없는 들온말을 끌어모으는 정성이라면 시나브로 사라지는 지역 말들도 살피고 알뜰히 모아야 하지 않을까. 더 이상 '해당 단어로 시작하는 검색어가 없'다고 몰라라 하고 "'OO'의 방언(강원)" 식으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우리말샘>에 책임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참고한 책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www.korean.go.kr)
한성우, 말의 주인이 되는 시간, 창비, 2020
최인호, 바른 말글 사전, 한겨레출판, 2007
이상규, 방언의 미학, 살림, 2007
이익섭, 영동 영서의 언어분화, 서울대학교출판부, 1981
박성종, 강원도 영동지역의 방언, 제이앤씨,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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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과 글쓰기 교육, 어린이문학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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