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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9일, 대한민국 20대 대통령 선거일입니다. 맛집도 리뷰를 보고 찾는 시대, 21세기에 태어나 처음으로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하는 이들을 위해 '오마이뉴스 대선주자 리뷰' 약칭 '오대리'가 출동합니다. 슬기로운 투표권 행사에 도움이 되길 기대합니다.[편집자말]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황교안 전 국무총리. 바탕은 국민의힘 전용 색상이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황교안 전 국무총리. 바탕은 국민의힘 전용 색상이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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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서울 용산 출생. 1·4후퇴 때 월남한 황해도 출신 부모 밑에서 2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고 노회찬 의원과 함께 경기고를 다녔으며, 서울대 법대를 가기 위해 재수까지 했지만 실패하고, 성균관대 법대에 77학번으로 들어갔다. 덕분에 이후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인 '성시경'(성균관대, 고시, 경기고)으로 꼽혔다.

담마진으로 군대 면제를 받은 뒤, 25세에 사법시험을 패스하여 김진태와 함께 대표적인 공안검사로 이름을 날렸다. 별명도 무려 'Mr.국가보안법'. 이후 실제로 공안 수사의 교과서인 <국가보안법 해설>(1998)을 쓰기도 했다.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 임수경 방북 사건, 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사건 등 대중의 뇌리에 깊이 박힌 굵직굵직한 공안사건들을 주로 담당했고, 이런 이력은 이후 법무부장관 시절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에도 영향을 끼쳤다. 법무부 장관으로서 직접 통합진보당 위헌정당해산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했고, 변론에 나서기도 했다. 

2011년 연수원 동기인 한상대 검찰총장이 임명되자, 검찰의 전통에 따라 검사 생활을 그만두고 변호사 생활을 하던 중, 2013년 박근혜 정부의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당시 정국을 뜨겁게 달구던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과 관련 윤석열 수사팀장에게 압력을 가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2015년 '성완종 리스트'로 이완구 국무총리가 최단 재임 총리로 사임하자 제 44대 국무총리로 임명되었다. '최순실 사건'이 터진 뒤에는 대통령 탄핵 소추 의결서가 청와대에 전달된 2016년 12월 9일부터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2017년 5월 10일까지 대통령 권한대행을 지냈다.

2019년 1월 자유한국당에 입당, 2월 말에 당대표로 선출되었다. 소위 '태극기부대'와의 밀월을 통해 1년이란 시간 동안 장외집회의 동력을 유지하며 강경투쟁을 벌였지만 , 그 결과는 2020년 4월 총선 대패로 나타났다. 그 책임을 지고 모든 당직에서 사퇴했지만 이것이 정계은퇴는 아니었다. 2021년 2월 총선 참패에 대한 회고록을 출판하더니 7월 제20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 풍부한 국정경험과 점잖은 이미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019년 9월 16일 오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를 촉구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019년 9월 16일 오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를 촉구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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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장관과 국무총리, 거기에다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소위 '그랜드 슬램'을 이루었던 만큼 지지자들은 그의 국정경험을 커다란 자산으로 생각한다.

실제로 그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던 2016년 겨울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그 유래가 없던 불안정한 시기로 그 누구도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청와대가 계엄령 검토를 지시했던 것으로 알려진 그 시기에 큰 사고 없이 정권이 이양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황교안의 대통령 권한대행의 위기관리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또한 점잖은 외모와 중저음의 신뢰감 가는 목소리는 그가 가지고 있는 장점 중 하나이다. 그는 자유한국당 대표 시절 삭발 투쟁과 단식 투쟁 등을 이끌며 거의 붕괴되어 있던 보수야당의 존재감을 확인시켜 주었는데, 그의 무모하게 보이는 도전들이 국민의 시선을 끌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그가 가지고 있는 모범생의 이미지와도 관련이 있다. 외모와 전혀 안 어울리는 일을 벌이니 사람들의 시선이 갈 수밖에.

[-] 과도한 의전과 기독교 근본주의
 
황교안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가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 대성전 1층 베다니홀에 마련된 고 조용기 원로목사의 빈소에서 조민제 국민일보 회장(왼쪽)과 인사하고 있다.
 황교안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가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 대성전 1층 베다니홀에 마련된 고 조용기 원로목사의 빈소에서 조민제 국민일보 회장(왼쪽)과 인사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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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한 '그랜드 슬램'은 그에게 풍부한 국정경험을 안겨줌과 동시에, '오점'을 남기는 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권위주의 의식에 기인한, 그를 향한 과도한 의전은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국무총리 시절 구로노인종합복지관에 방문해서는 시설 내 엘리베이터를 총리전용으로 만들고 노인들의 이용을 막아 입방아에 올랐고 2016년에는 서울역 플랫폼까지 관용차를 타고 들어가 논란이 일었다. 또한 그해 겨울에는 그의 의전 차량이 오송역 시내버스 정류장을 점령해 애꿎은 시민들이 퇴근시간에 추위에 벌벌 떠는 일도 있었다.

이와 같은 행태는 대통령 권한대행 때도 그대로 이어졌다. 정세균 국회의장과의 면담을 요청하며 대통령에 준하는 의전을 요구했으며, 2017년에는 명패를 국무총리에서 대통령권한대행 국무총리로 굳이 바꿨다. 또 대통령권한대행이라는 문구를 새겨 시계를 만들기도 했다. 자유한국당 대표 시절에는 2019년 4·3보궐선거 당시 경남FC 축구경기장에 마음대로 들어가 유세를 해서 논란이 일었는데 이 역시 그의 권위주의적 사고를 보여주는 예로 기억된다.

또한 그의 기독교 근본주의적 사고 방식 역시 비판을 받는다. 그는 검사 시절 검찰 내에서도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유명했는데 부임하는 곳마다 예배모임을 만들었고, 사법연수원 시절에는 밤에 야간신학대학의 학업을 병행해 전도사가 되었다.

문제는 그의 종교관이 현실 정치와 만나는 순간이다. 그가 불교계의 행사에 가서 합장을 하지 않고, 선물로 육포를 준 일례는 애교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2007년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랍된 샘물교회 선교단을 옹호하며 선교를 권장했으며, 자신이 담당했던 공안 사건들이나 북한을 기독교 근본주의적 방식으로 바라봤다. 반공을 자신의 소명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통합진보당 해산과 관련하여 하나님이 이겼다고 자랑할 수밖에.

그가 당대표를 하던 시절 제1야당과 보수 기독교 세력이 함께 광화문 광장을 메운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것엔 정치적 목적도 있었지만, 그것을 뒷받침하는 기독교 근본주의적 사고방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쩌면 그는 이번에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대선에 뛰어든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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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지금은 비록 회사에 몸이 묶여 있지만 언제가는 꼭 공부를 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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