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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수업 시간에 모둠은 '공동운명체'다. 모둠별 퀴즈는 함께 해결해야 하고, 득점과 감점의 책임도 함께 진다.
 적어도 수업 시간에 모둠은 "공동운명체"다. 모둠별 퀴즈는 함께 해결해야 하고, 득점과 감점의 책임도 함께 진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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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올 게 왔다. 언젠가는 아이들로부터 공정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을 줄 알았다. 수업을 모둠별 퀴즈로 진행하는 데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무작위로 번호를 추출해 문제를 풀기도 하고 때로는 가위바위보를 통해 우선권을 주는 방식이어서다.

수업이 끝난 뒤 몇몇 아이가 찾아와 모둠별 수행평가에서 운이 상당 부분 작용한다며 불만을 표출했다. 한마디로 운이 개입될 수밖에 없어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여태껏 아무 말이 없다가 모둠 감점이 반복되다 보니 애초 모둠 편성부터 가위바위보까지 모든 걸 문제 삼았다.

잠시 수업 방식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일단 학기 초 월드컵 시드 배정 방식으로 모둠을 정한다. 자유롭게 정하도록 하면 안 된다. 그러면 대개 성적이 비슷한 아이들끼리 뭉치기 마련이다. 내신 성적에 목매단 요즘 아이들은 반영 비율이 낮은 수행평가 점수에도 무척 민감하다. 

그렇다고 성적을 기준 삼아 지그재그 방식으로 편성하는 것도 뭣하다. 평균 성적이 모둠별로 비슷하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서먹한 아이들끼리 한 모둠이 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자발적인 선택을 배제하게 되면, 나중 결과에 대해서도 흔쾌히 수긍하지 않는다.

처음엔 모둠 숫자만큼 상위권 아이들을 뽑은 뒤 그들에게 함께할 모둠원을 선정하도록 했다.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겨 이내 번복하고 말았지만, 나름 값진 경험이 됐다. 불가피하게 마지막에 선택된 아이, 곧 누구에게도 선택받지 못하는 아이가 도드라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미처 예상치 못했다.

역발상으로 다른 아이들이 상위권 아이를 선택하게 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마찬가지로 선택받지 못한 아이가 나올 수 있지만, 상위권 아이라면 상대적으로 상처를 덜 받을 거라고 여겼다. 학기 초 사전 공지했을 때도, 이러한 모둠 편성 방식에 아이들 대부분이 동의했다. 

이런 수업을 설계한 이유 세 가지

적어도 수업 시간에 모둠은 '공동운명체'다. 모둠별 퀴즈는 함께 해결해야 하고, 득점과 감점의 책임도 함께 진다. 다만, 무임승차를 막기 위해 개인별로 푸는 퀴즈를 절반 가까이 끼워 넣었다. 개인별 퀴즈가 없다면, 상위권 아이 한 명이 모둠을 '하드 캐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필연적으로 공정성의 문제가 발생한다. 퀴즈가 한정돼 있어서 모둠별 모든 개인에게 똑같은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무작위로 번호를 추출하는 방식이어서 아는 문제인데도 자신에게 기회가 오지 않을 수 있고, 덜컥 모르는 문제가 걸려 틀리기도 한다. 

다른 모둠과 친구가 틀려서 어부지리로 감점을 당하지 않기도 하고, 개인별 문제를 틀려서 같은 모둠원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도 왕왕 있다. 애초 25개 문제 중에 쉬운 걸 뽑는 것부터가 운의 영역이다. 그날의 운이 감점을 결정한다는 아이들의 하소연을 마냥 틀렸다고만은 할 수 없다.

사실 이러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계획을 수립할 때부터 반영 비율을 크게 낮췄다. 모두 100점으로 시작해 2점씩 깎는 방식인 데다 성적에 10%만 반영되기 때문에 학기 내내 도맡아 감점을 당하는 모둠이 아니라면 크게 부담스러울 건 없다. 그걸 알면서도 문제 삼는 건, 운이 성적에 영향을 끼쳐서는 절대 안 된다는 완고한 인식 때문이다.

수년 전 굳이 이런 수업을 설계한 이유가 세 가지 있다. 하나는 친구들끼리 함께 도움을 주고받으며 공부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수업 중 조는 아이들이 없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기존의 일방적인 강의식 수업으로는 책상 위에 쓰러진 아이들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없다는 걸 절감하던 때였다. 

코로나로 모둠끼리 책상을 붙여 문답하며 학습할 순 없지만, 모둠원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각자가 정말 열심히 공부한다. 수업 내내 자기 번호가 뽑힐지도 모르는 긴박함에 아이들은 하나같이 '심장이 쫄깃하다'고 말한다. 이런 와중에 조는 아이가 있을 수 없다. 

무엇보다 수업을 통해 공정성에 대한 획일적이고 삭막한 인식을 교정해주고 싶었다. 실력도, 재능도, 심지어 도덕성까지도 계량화된 점수로 평가해야 공정하다는 아이들의 고정관념을 교사로서 그대로 두고 볼 순 없었다. 시험조차 '주관식'을 불신하고, '객관식'을 신뢰하는 지경이니 더 말해서 무엇 할까.

성적이 노력만의 결과가 아니란 걸 가르쳐주고 싶었다

'노력 70% : 운 30%'

불만을 제기하는 아이들에게 수업의 취지를 '비율'로 설명했다. 일단 예습과 복습 등의 노력이 없다면, 운이 따라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점은 모두가 동의했다. 그런데도 몇몇은 운이 작용하는 여지를 없애야 평가의 공정성과 신뢰성이 확보된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성적이 오로지 자신의 노력만의 결과가 아니라는 걸 은연중에 가르쳐주고 싶었다. '꼴등이 있어야 1등도 존재하는 법'이라거나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해 내 것을 나누자'는 식의 조언은 아이들에게 더는 공감을 얻지 못한다. '공자님 말씀'이라며 조롱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더 중요하다'는 말을 꺼냈다가 한 아이로부터 공산주의적 발상이라며 면박을 당한 적도 있다. 무한경쟁 사회가 가져온 짙은 그늘이다. 그들이 으스대는 실력이라는 것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 아님을 교사로서 어떻게든 증명해야 했다. 

천연덕스럽게 '부모를 잘 만나는 것도 실력'이라고 말하던 정유라의 발언엔 분개하면서도 자신의 실력은 온전히 자신의 노력에 의한 결과물로 여기는 모순을 아이들은 깨닫지 못했다. 정유라의 실력과 자신의 것은 비교 대상이 아니라는 거다. 철저히 아전인수 격인 셈이다. 

부모의 경제력과 자녀의 성적이 정비례하는 통계를 보여주면 대번 수긍할 줄 알았다. 하지만, 몇몇 아이들의 반응은 적잖이 당혹스러웠다. 부모 세대의 빈부격차로 발생한 문제를 자녀에게 책임지라는 건 공정하지 않다고 대꾸했다. 아이들에게 공정이란 개념은 이토록 헐겁다. 

난세에도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

고작 수업과 성적에 국한할 문제가 아니었다. 공동체의 존속을 위해서는 아이들의 공정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야말로 가장 시급한 과제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당장 부모와 국가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예로 들어, 이 땅에 태어난 것 자체가 운이라는 걸 강조했다. 

진도를 나가다 말고, 내전의 공포에 휩싸인 미얀마와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을 수업 주제로 삼은 까닭이다. 두 나라의 현실을 모르는 아이는 아무도 없으니, 그 어떤 설명도 필요 없고 이 질문 하나면 족했다. "만약 너희가 대한민국이 아닌, 그곳에서 태어났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해요. 그 나라의 아이들에 견준다면,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건 크나큰 축복이자 행운이죠."
"그렇다면, 우리의 삶도, 일상도, 지금 1~2점에 애면글면하는 점수도 운이 크게 작용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오롯이 노력의 산물이라고 여기는 자신의 실력에 겸손해야 한다는 말을 받아들일 여유가 아이들에겐 아직 없다. '시험 때 찍는 것도 운이 아닌 실력'이라고 말하는 그들에게 지나친 요구인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한 아이는 "왜 자꾸만 죄의식을 갖도록 만드느냐"며 대들기도 했다. 

그래도 여기서 포기할 순 없다. 아직은 소수일지언정, 미얀마의 친구들을 돕기 위한 모금 활동은 부자나라의 '자선'이 아니라 축복받은 자의 '의무'라고 단언하며 친구들을 설득하는 아이들이 있다. 아무리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세상이라지만, 그들의 선한 영향력이 쉽게 꺾이지는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사족 하나. 코로나가 비대면 플랫폼 기업에는 엄청난 부를, 대면 자영업자들에게는 막대한 피해를 줬다면서, 공동체를 위해 운에 따른 이익을 세금으로 환수해야 마땅하다고 지적한 아이도 있다. 새삼 깨닫지만, 아이들은 나의 스승이며 난세에도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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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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