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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온 첫 해, 집에서 딴 솔잎을 넣어 송편을 쪘다. 한국과 같은 솔잎인지 모르겠지만, 나름 솔잎향이 났다.
 캐나다 온 첫 해, 집에서 딴 솔잎을 넣어 송편을 쪘다. 한국과 같은 솔잎인지 모르겠지만, 나름 솔잎향이 났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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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은 명절이다. 영어로 하면 홀리데이(holiday) 중 하나이다. 그래서 사실 추석은 이름만 들어도 신이 나야 하고, 맛있는 거 잔뜩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 마땅한 날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으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많은 사람이 명절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머리가 아프기 시작하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어 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람들이 며느리들일 테고, 싱글들과 백수들에게도 반갑지 않은 날이다. 생각해 보면, 명절이 좋았던 시절은 아주 어릴 때뿐이다. 해주는 거 먹고, 뒹굴거리며 티브이 보면 되는 팔자 좋은 어린 시절 말이다.

명절에는 온 가족이 모이고 맛있는 음식이 많은데 왜 스트레스가 될까? 사실 이 이야기는 입 아프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다들 할 말이 많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누구나 아는 사실이니까.

해왔던 거 말고 하고 싶은 것

"추석 때 뭐 하고 싶어?"

남편은 올해도 어김없이 물었다. 캐나다 와서 이 사람과 결혼하고 세 번째 맞이하는 추석이다. 아직도 한국 풍습이 낯선 그이지만 특히나 이런 명절에는 꼭 고향의 정취를 느끼게 해주고 싶어 한다. 

첫해에 남편에게 추석 이야기를 꺼냈을 때였다. 한국의 주요 명절이라고 설명을 했더니 뭐 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나는 자동반사적으로 "송편하고, 갈비하고, 토란국하고..." 음식 이야기가 저절로 나왔다. 그러다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내가 이거 하고 싶은 거 맞아? 지금까지 해 왔던 거 말고, 하고 싶은 거...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돌이켜보면 꽤 어릴 때부터 추석 때는 일을 해야 했다. 우리 집은 종갓집도 아니었고, 큰댁은 너무나 멀어서 명절 방문은 거의 하지 않았다. 당시에 서울-부산이면 온 식구 이동하기에는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대학교수이셨기 때문에 명절에는 제자들이 많이 찾아왔다.

아주 어릴 때는 그들이 사 오는 과자 박스 같은 것에 관심을 갖기도 했지만 커가면서 엄마의 부엌일을 돕는 역할에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되었다. 친구들은 명절이라고 영화도 보러 가고 모여서 놀기도 했지만, 나는 어머니에게 혼자 일하시라 할 수 없어서 늘 부엌에서 있었던 기억이 난다. 하긴 내가 아무리 해봐야 어머니만 했겠는가.

그리고 첫 결혼 후에는 뭐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 비슷한 며느리 생활이었다. 시어머니 돌아가실 때까지 시댁 가는 것이 추석 때 하는 일이었고, 그 이후에는 집에서 상을 차렸다. 아이까지 유학을 나간 이후에는 정말 먹는 사람도 없다고 많이 간소화하였으나 그래도 차례는 지내야 하므로 역시 추석은 음식이었다. 그리고 사실 그 외에 딱히 생각나는 것도 없었다.

내가 딱 말문이 막히자 남편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무엇이든 좋으니까 당신 하고 싶은 거 하자고 했었다. 내가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니까 역정을 내면서, 자기가 추측하게 하지 말고 하고 싶은 것을 말하라고 했다. 그는 모른다. 한국 주부들에게 있어서 '명절에 아무것도 안 하기'가 얼마나 큰 선물인지 알 수가 없겠지. 

결국 첫해에는 그러다가 영주권이 나오는 바람에 국경 넘어 나들이 여행을 했다. 떡 쪄서 들고 미국으로 넘어가서, 딸과 중간 지점인 시애틀에서 만나 추석을 함께 보냈다. 그리고 작년엔 코로나 사태 때문에 딸도 못 오고, 우리도 못 가고 가슴 아픈 기간이었기에 전혀 명절 기분을 내지 않고 넘어갔다. 

추석에 떠오르는 사람들
 
딸을 만나러 가기 위해 쪘던 송편. 분홍색 비트송편이 주황색이 되었다
 딸을 만나러 가기 위해 쪘던 송편. 분홍색 비트송편이 주황색이 되었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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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뭘 할까? 한편으로 명절 음식을 좀 하고 싶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뭘 얼마나 먹겠다고 이걸 하나 싶기도 하고 그런 기분이었다. 딸은 역시 못 오겠지만, 결국 국경이 풀려서 봄에 다녀갔고, 크리스마스 때면 올 테니 작년처럼 우울한 기분도 아니고...

내가 대답을 못 하고 있으니, 남편이 다시 덧붙였다. 무엇을 하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자고. 누구를 초대하고 싶으면 집에 불러도 좋다고 하는데, 갑자기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이 명절에 혼자 지낼 그 아가씨가 생각났다. 나한테 토마토 모종을 얻어갔던 늦깎이 유학생. 명절 때면 한국 생각도 날 테고, 여긴 가족도 없으니 불러다가 저녁을 함께 먹으면 좋겠다 싶었다. 혼자 추석을 지낼 딸을 생각하며, 남의 딸을 챙기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다면 음식을 할 이유가 생기는 게 아닌가? 떡도 좀 해서 가져가라 싸줘도 좋겠다 싶어지니 갑자기 마음이 바빠졌다. 그런데 남편은 출근할 테니 떡을 혼자 해야 한다. 이런 것은 누구랑 같이해야 즐거운 법인데, 딸이 옆에 있어서 두런두런하면 재미나겠지만 그것도 불가능하고.

그러자 내게 영어를 배우는 분들이 생각났다. 결국 그분들도 다 타국 생활을 하는 상황이니 이럴 때에 함께 떡 만들면서 수다를 떨어도 좋겠다 싶었다. 그 중, 간혹 연락하고 지내던 몇 분에게 연락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명절에 떡 하는 것은 며느리들이 싫어하는 일 중 하나인데, 내가 시어머니처럼 불러서 떡 하자고 하면 혹시 난처해하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그런데 고맙게도 다들 반색을 하며 좋아했다. "어머! 정말요! 재미있겠다!" 하며 반기는 게 아닌가. "그러면 나는 콩을 준비할게요." "나는 쌀가루를 사 가지고 갈게요." 하면서 어느새 당번을 정하고, 들떠서 손꼽아 추석을 기다리게 되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참으로 간사하다. 떡 만들기가 의무가 아닌 자발적 선택이 되면서 놀이가 될 수 있다니 말이다. 내가 아이를 홈스쿨링으로 공부 가르칠 때에도 늘 그 점을 염두에 두었는데, 어른들의 삶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 주부로 살면서 음식 몇 가지 하는 게 뭐 그리 대수겠는가! 다만 어떤 마음가짐으로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인 것이지!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선물을 받은 이번 추석에, 나는 또 음식을 할 것이다. 같이 먹을 수 있는 즐거움을 위해서... 이웃들과 깔깔거리며 송편을 빚고, 남편이 따주는 솔잎으로 송편도 찌고, 마당에서 깻잎과 호박을 따서 전도 부치고, 마트에서 사다 놓은 녹두로 전도 부치고 말이다. 나는 깨소를 담당했으니 오늘, 깨부터 볶아야겠다.

덧붙이는 글 | https://brunch.co.kr/@lachoue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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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거주하며, 많이 사랑하고, 때론 많이 무모한 황혼 청춘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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