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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제침략자를 놀라게 해서 그들을 섬나라로 철수시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곧 무력적인 응징이다."

1920년 8월, 광복군총영의 국내 침투공작 당시 문일민·장덕진·박태열 등과 함께 평양 지역 거사를 맡아 활약했던 유일한 여성대원 안경신(1888~?). 거사 당시 임산부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훗날 더 화제가 된 인물이기도 하다.

거사 성공 후 무사히 중국으로 탈출에 성공한 다른 대원들과 달리 국내에 남아 몸을 숨기고 있던 그녀는 이듬해 일경에 체포되고 말았다.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1927년 12월 14일 가출옥했다. 이후 그녀에 대한 기록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우리를 더욱 안타깝게 했던 것은 지금까지 그녀의 사진이 한 장도 남아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흐릿한 초상화 한 장만이 유일하게 전하는 까닭에, 스케치 그림을 통해서만 그녀의 모습을 상상해볼 따름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석사논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안경신에 관한 기사들을 수집하던 중, 우연히 가출옥 직후 <조선일보> 기자와의 인터뷰 기사를 발견했다. 기사에 딸린 큼지막한 사진 한 장. 사진 속에는 머리에 두건을 두른 한 여인이 있었다. 독립운동가 안경신의 사진은 그렇게 94년 만에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1927년 12월 17일 <조선일보>에 실린 독립운동가 안경신의 모습
 1927년 12월 17일 <조선일보>에 실린 독립운동가 안경신의 모습
ⓒ 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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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미상의 사진 속 여인, 그녀는 누구였을까

그야말로 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이었지만, 상상만 하던 안경신의 모습을 실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으니 그 흥분을 어떻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 풀리지 않는 수수께기 하나가 남아있었다. 언제부턴가 인터넷에서 안경신의 사진이라며 떠돌고 있는 출처미상의 사진 두 장이었다. 누리꾼들 사이에서, 심지어 일부 언론에서조차 안경신의 사진이라며 종종 인용하고 있는 사진들이었지만 출처를 알 수 없어 안경신의 사진이라 단정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이에 대해 여성독립운동가 연구가들은 "해당 사진 속 인물이 안경신이라는 근거는 없다"는 입장이다.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 저자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이윤옥 소장은 "해당 사진 속 인물이 안경신이라는 근거를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심옥주 소장 역시 "해당 사진은 독립운동가 안경신이 아니다"라며 "(<조선일보> 사진이 발굴되기 전까지) 그동안 유일한 사진은 신문에 게재된 초상화가 전부였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대체 사진 속 여인의 정체는 누구일까? 취재 결과 왼쪽 증명사진의 주인공은 <원불교대사전>에 실린 안경신(安敬信: 1885~1975)이라는 인물로 밝혀졌다. 공교롭게도 해당 인물은 독립운동가 안경신과 이름이 같은 데다(심지어 한자까지도) 활동했던 시기도 겹친다.
 
일부 매체에서 독립운동가 안경신의 사진으로 인용된 사진들. 왼쪽 사진의 주인공은 원불교인이었던 동명이인 안경신(安敬信:1885~1975)의 사진으로 밝혀졌다. 오른쪽 사진은 정확한 출처가 여전히 미상이나 항상 왼쪽 사진과 나란히 인용되고 있는 사진으로, 사진 속 여인이 닮은 점으로 보아 동일인물로 추정된다.
 일부 매체에서 독립운동가 안경신의 사진으로 인용된 사진들. 왼쪽 사진의 주인공은 원불교인이었던 동명이인 안경신(安敬信:1885~1975)의 사진으로 밝혀졌다. 오른쪽 사진은 정확한 출처가 여전히 미상이나 항상 왼쪽 사진과 나란히 인용되고 있는 사진으로, 사진 속 여인이 닮은 점으로 보아 동일인물로 추정된다.
ⓒ 원불교 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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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원불교대사전>에 따르면 원불교인 안경신은 평생 종교활동에만 전념했던 종교인이었다. 그녀가 독립운동에 참여했다는 기록은 없으며, 심지어 후손이 없어 훈장도 전달되지 못하고 있는 독립운동가 안경신과 달리 후손들도 존재하고 있었다. (그녀의 아들은 원불교 최고지도자인 종법사를 역임한 대산 김대거이다)

원불교 측에 해당 사진에 대한 감정을 의뢰한 결과 교단 측에서도 "(왼쪽 사진은) 대산종사의 모친이 맞다"면서도 독립운동가는 아니라고 밝혔다.
 
<원불교대사전> 693쪽에 수록된 원불교인 안경신에 대한 기록
 <원불교대사전> 693쪽에 수록된 원불교인 안경신에 대한 기록
ⓒ 원불교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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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오른쪽 사진에 대해서는 여전히 정체가 불분명한 상태다. 얼핏 보면 왼쪽 증명사진과 동일인물로 보이지만 원불교 측은 "교단이 가지고 있는 사진 중에 해당 사진은 없어 동일인물이라 확인해주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전했다. 원불교역사박물관 측 역시 "(원불교인) 안경신 선생 친손녀의 증언에 따르면 동일인물처럼 보이지만 다른 사람"이라는 입장을 대신 전달해왔다.

이에 따라 두 사진 속 인물이 동일인물인지 여부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해당 사진 역시 독립운동가 안경신이라는 근거가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고 있으며, 결정적으로 이번에 발굴된 <조선일보> 사진과 대조해보면 역시 동일인물이라 보기 힘든 상황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학계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상황에서 해당 사진을 독립운동가 안경신으로 소개하는 것은 자칫 역사왜곡으로 번질 우려가 있다.

'진짜' 안경신의 얼굴 기억해야

아직까지 국가보훈처나 학계에서 문제의 사진들을 독립운동가 안경신의 사진으로 공식 인용한 사례는 없는 듯하다.

그러나 취재 과정에서 일부 언론이나 누리꾼들에 의해 해당 사진들이 안경신 선생의 실제 사진인 양 상당히 퍼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심지어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다룬 일부 서적에서도 인용이 되고 있었고, 여성독립운동 관련 기념사업회에서조차 해당 사진을 토대로 초상화를 만들어 순회전시회를 하고 있었다.     
한 여성독립운동 관련 서적에서 안경신으로 소개된 문제의 사진. 출판사 측은 "편집 과정 중 착오가 있었다"며 "현재로서는 해당 사진의 원출처가 불명확하다"고 해명해왔다.
 한 여성독립운동 관련 서적에서 안경신으로 소개된 문제의 사진. 출판사 측은 "편집 과정 중 착오가 있었다"며 "현재로서는 해당 사진의 원출처가 불명확하다"고 해명해왔다.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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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검증 없이 퍼나른 사진을, 역시 재검증 없이 퍼뜨린 결과라 생각된다. 해당 사진들이 독립운동가 안경신이라는 확실한 근거도 없는 상태에서 실제 사진인 양 유포되고 있는 현실이 심히 유감스럽다.

그래도 고무적인 것은 지난 16일 <오마이뉴스>의 보도 직후 국가보훈처가 독립유공자 공훈록 상의 초상화를 새로 발굴된 사진으로 교체했다는 사실이다. 94년 만에 비로소 안경신의 진짜 얼굴을 찾은 셈이다. (관련 기사: 94년 만에 발견된 '평남도청에 폭탄 투척' 안경신 선생 사진  http://omn.kr/1vb0w ) 이제는 온전한 모습으로 그녀를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국립서울현충원 무후선열제단에 모셔진 안경신의 위패. 94년 만에 발굴된 사진을 위패 앞에 봉정했다.
 국립서울현충원 무후선열제단에 모셔진 안경신의 위패. 94년 만에 발굴된 사진을 위패 앞에 봉정했다.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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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선열을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고자 하는 역사학도 / 聖文神武를 꿈꾸는 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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