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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권위가 여론조사 기관에 의뢰해 조사·발표한 '온라인 혐오표현 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절반 이상이 '코로나19 이후 혐오와 차별이 증가했다'고 답했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시작된 지 1년 8개월여, 오마이뉴스는 '일상의 혐오'를 통해 불과 몇 년 사이 우리 삶에 깊숙히 파고든 '혐오'의 맨얼굴을 시민기자들의 경험담을 통해 마주하고자 합니다. 다른 시민기자들의 글도 적극 환영합니다.[편집자말]
일본 출신의 재한이주여성 Y씨는 최근 대학생 딸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가 일본인인 것이 부끄러워서 남자친구에게도 엄마의 존재를 알리기 싫다"는 것. 며칠 뒤 딸은 자신의 발언을 사과하면서 이렇게 부연했다.

"중학교 때 친구들이 나를 '쪽바리'라고 놀렸던 게 트라우마로 남았어."

1965년 한일기본조약으로 한일관계가 복원된 이래 한일 양국간의 관계가 순탄치만은 않았던 건 사실이다. 일본의 과거사 사죄와 미래지향적 한일관계의 로드맵을 담았던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은 괄목할만한 성취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굴곡과 후퇴 속에서 서서히 빛을 바래갔다. 2021년 9월 현 시점의 냉랭한 한일관계 위에서, 김대중-오부치 공동 선언의 종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양국 정부의 험악한 관계 속에서, 현안에 대한 합리적 비판을 넘어 상대 국민 집단 전체를 향한 혐오와 증오가 팽배하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일본 관련 포털 뉴스 댓글창에는 일본 민족에 대한 욕설과 저주가 난무한다. 지진이나 태풍과 같은 재난 관련 보도에서도 '혐일 여론'은 여지없이 모습을 드러낸다.

일본인들이 생명과 터전을 잃는 비극적인 상황에서 이들은 일본이 고난을 겪고 있는 현실을 '축하'하며 피해자들을 '조롱'한다.

과거 인종 증오가 아직도
  
영미권에서는 전쟁 당시 일본인을 잽, 도조, 옐로우 몽키 등의 멸칭으로 불렀다. 특히 '옐로우 몽키'라는 호칭은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세계관에서 나온 말이었다.
▲ 일본인을 원숭이로 묘사하는 2차대전 당시 포스터 영미권에서는 전쟁 당시 일본인을 잽, 도조, 옐로우 몽키 등의 멸칭으로 불렀다. 특히 "옐로우 몽키"라는 호칭은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세계관에서 나온 말이었다.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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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일 여론이 인종 증오의 양상을 보이는 것은 특히 우려스러운 일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미권에서 일본인을 부르는 멸칭 중 하나였던 '옐로우 몽키(yellow monkey)'가 21세기 한국에서 재활용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제국 일본의 전쟁 책임과 일본군에 의한 영미권 포로들의 학대 범죄를 나열해놓고서 판단해도, 일본인을 '원숭이'로 폄하했던 영미권의 프로파간다는 명백히 인종 증오를 함의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당시 일본과 함께 영미권의 적이었던 독일과 관련한 프로파간다는 어떨까. 나치 사상이나 독일군의 범죄 자체에 대한 비난은 담겨 있을지언정 도이치 민족 자체에 대한 폄하는 찾아볼 수 없다. 똑같은 백인, 특히 미국 이민사회의 주류를 구성하는 독일인은 인종적으로 깎아내리려야 깎아내릴 수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일본인을 원숭이로 묘사하는 영미권의 프로파간다는, 아시아인을 서양인보다 열등한 존재로 내려다봤던 기존의 인종차별 관념이 그대로 답습된 결과였다. 그러나 일본인에 대한 혐오에 매몰된 일부 누리꾼들은 이러한 배경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스스럼없이 일본인을 '원숭이'로 부르며 인류의 범주에서 제외해 버린다.

'원숭이 프로파간다'의 원산지인 영미권에서조차 '옐로우 몽키'라는 표현이 무척 조심스러워졌음을 상기해 본다면, 한국에서 난무하고 있는 '원숭이' 표현은 매우 우려스러운 수준이다.

혐일이 바다 건너 일본으로 전해졌을 때 벌어지는 일

이와 같이 혐일 여론이 왕성해지면서, 여기에 편승하는 혐오 컨텐츠들 역시 늘어간다. 가령, 일본인과 일본 문화의 열등성을 주제로 영상을 업로드하는 한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는 30만 명을 넘는다. 언론사 방송 콘텐츠에서조차 일본을 '끔찍한 나라'라고 부르거나 일본인의 식문화를 희화화 하는 발언을 내보낸다. 자극적인 혐오 콘텐츠는 조회수 늘리기에 효과를 보이겠지만, 이런 방식으로 재생산되고 소비되는 혐오는 결국 사회의 내부와 바깥에서 더 큰 문제를 잉태하고 만다.

한국 사회 내부에서 소수자로 살아가는 재한일본인들에게 있어 혐일 여론의 존재는 적지 않은 위협으로 다가온다. 특히 인터넷 공간을 넘어 현실세계에서의 물리적 폭력으로 혐오가 발현될 때 공포는 극대화된다. 2019년 9월 4일 중앙일보는 <아파트에 주차된 일 차량 파손…일본인 아내 "한국 살기 무섭다">라는 기사에서 한국에서 일본산 차량들이 잇따라 훼손되고 있는 사례들을 보도했다. 특히 해당 보도에서는 일본인 배우자를 두고 있는 피해 차주의 발언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일본인인 아내가 자기가 잘못한 건 없는데 이렇게 범죄를 당하게 되니까 한국에서 사는 게 무섭다고 트라우마가 생길 거 같다고 그러더라"  
  
2019년 8월 23일, 서울 홍대에서 30대 남성이 일본인 여성에게 헌팅을 시도하다가 실패하자 인종차별적 욕설, 성희롱, 폭행을 가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이 일본에 보도되자 일부 일본 누리꾼들은 혐한성향을 드러내며 강하게 반발하였다.
▲ "한국은 폭행과 강간이 당연한 나라니까" 2019년 8월 23일, 서울 홍대에서 30대 남성이 일본인 여성에게 헌팅을 시도하다가 실패하자 인종차별적 욕설, 성희롱, 폭행을 가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이 일본에 보도되자 일부 일본 누리꾼들은 혐한성향을 드러내며 강하게 반발하였다.
ⓒ 야후 재팬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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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오프라인에서 관측되는 한국 내 혐일 현상이 일본 사회로 전해지는 것 역시 큰 문제다. 한국에서 혐한으로 불리는 이른바 일본 극우 세력들은 한국 내 혐일의 존재를 빌어 스스로의 존재와 활동을 정당화한다. '한국이 일본에 위협이 된다'는 주장은 그들이 제시하는 극단적인 사례로부터 뒷받침된다.

이를 통해 특정 세력이 선동하고자 하는 한국 사회에 대한 적대감은 보다 쉽게 여론의 호응을 얻게 된다. 여론이 기울면 기울수록, 재일코리안의 권익 증진이나 과거사 해결, 한일관계 개선 등을 위해 노력해온 시민단체와 학자들의 운신의 폭은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외교 관계라는 것은 국가 지도자들의 통 큰 결단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양국 시민사회 사이에 신뢰와 우호가 조성돼 있을 때 성과를 볼 수 있다. 결국 정부를 움직이는 것은 시민이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에 대한 불만이 일본 민족집단 전체를 향한 혐오로 어긋나버리는 것은, 결국 한일관계의 현안들을 해결하는 데 있어 장애물만 될 뿐이다.

다양한 계층에 대한 혐오가 일상이 되고 있는 시대, 우리는 그 혐오가 낳을 비극적 결과에 대해 충분히 숙고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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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의 전쟁체험에 관한 연구에 정진하고 있는 오사카 거주 유학생입니다. 한일친선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편견과 혐오 너머로 새로운 지면을 여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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