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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초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진행되었던 유해발굴 현장의 모습. 드러난 유해의 두개골 옆으로 M1 탄피와 탄두가 놓여 있고, 그 뒤편으로 누군가 놓은 국화 한 다발이 놓여 있다.
 2015년 초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진행되었던 유해발굴 현장의 모습. 드러난 유해의 두개골 옆으로 M1 탄피와 탄두가 놓여 있고, 그 뒤편으로 누군가 놓은 국화 한 다발이 놓여 있다.
ⓒ 임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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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욱, 꽃다발이 아래로 떨어졌다. 깊이가 2미터쯤 되어 보이는 구덩이 어느 한 곳을 겨냥해 던졌지만, 생각보다 비켜 떨어졌고 꽃받침에서 나온 꽃잎 몇 개가 밥알처럼 흩어졌다. 우산을 받쳐 든 사람들이 구덩이 주변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그들은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고 있었으나 신발은 모두 진흙이 묻어 있었다. 국화를 가져온 게 정말 다행이었다....
- 류이경 단편소설 <붉은 나무의 언어> 중에서
 
한국전쟁 당시 7천여 명의 민간인이 군경에 의해 집단 학살되어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 불리는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지난 2015년 초 일주일여간 유해발굴이 진행된 적이 있다. 그때 유해 발굴 마지막 날, 탄피와 탄두 옆에 드러난 두개골 뒤로 국화 한 다발이 누군가에 의해 놓여졌다. 사람들은 구덩이 속 유해와 그 옆에 놓인 국화를 함께 사진으로 담았다. 기자도 그 모습을 사진으로 담은 적이 있다. 그때는 그 국화를 누가 준비했는지 알지 못했다.

단편소설 <붉은 나무의 언어> 첫머리를 읽자마자 그 사람이 류이경 작가(본명 박경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류이경 작가는 2015년 산내 골령골 유해 발굴 장면을 목격하고는 시를 한 편 쓰게 되었다 한다. 하지만 짧은 시로는 그날 자신이 느꼈던 감정과 생각을 다 표출해 낼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2017년에 시로 담았던 내용을 다시 단편소설로 완성해 이번에 소설전문 월간지 한국소설(2021년 9월호)을 통해 발표했다.

그는 무슨 이유로 그날 국화를 준비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산내 골령골 사건을 다루는 소설을 쓰게 되었을까? 궁금해졌다. 다음은 류이경 작가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자신이 쓴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류이경 작가
 자신이 쓴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류이경 작가
ⓒ 임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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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유해 옆에 놓인 꽃다발을 준비한 이유는? 그리고 이 소설을 쓰게 된 이유는?

"제가 꽃집을 하다 보니 생일을 맞아 꽃다발을 받는 사람들도 있고, 부고 소식을 통해서 장례식장으로 보내는 꽃들을 자주 보게 돼요. 억울하게 죽임당한 후 정말 오랜만에 발굴을 통해 세상에 드러난 유해에 예를 갖추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꽃이라도 드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번 단편소설의 맨 뒷부분에 나온 시는 유해 발굴장을 다녀와서 쓴 시였어요. 이번 작품은 그때 너무 벅찬 감정을 소설로 쓰자고 해서 나온 작품이에요. 2015년에 시를 쓰고 이후에 소설을 쓴 것이지요. 그 아픔을 담아내기 위해서는 짧은 시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일반 독자들이 저의 감정과 그 사건을 좀 더 이해하기에는 소설이 더 좋겠다고 생각했죠."

- 유해발굴을 주된 모티브로 삼은 이유는?

"희생자들은 우리보다 먼저 살았던 사람들이잖아요. 넓게 본다면 우리 조상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유해발굴 현장에서 나무 뿌리와 유해가 같이 얽혀 있는 모습을 보고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보통 조상을 우리의 '뿌리'라고도 말하는데, 유해와 얽혀 있는 뿌리는 보니 '뿌리'라는 공통점이 느껴졌어요. 유해를 통해 우리의 뿌리를 보는 것 같았죠. 우리가 알아야 할 뿌리를 '유해발굴'을 통해 소설에 담고 싶었어요."

- 소설을 쓰면서 어려웠던 점은? 

"많은 아픔을 가지고 있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아픔을 알아주는 사람이 너무 없어요. 기득권층이 그 아픔을 너무 눌렀기 때문이죠. 아프면서도 소리 한번 내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부각시키고, 과거의 잘못들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묻혀버린 이야기를 알리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런 내용으로 소설을 쓰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너도 빨갱이지?"라고 말할 수도 있을까요. 대전 산내골령골 민간인 학살 사건을 비롯해 전국에 많은 사건들이 있는데, 저는 이런 일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스스로 양심고백 같은 걸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피해자가 있으면 분명 가해자가 있으니까요. 소설의 맨 마지막에 어떤 사람이 주인공을 만나자고 연락이 왔을 때, 잠시 고민하고 주저했지만 용기를 내어 만나겠다고 마무리를 했어요. 기득권층이 사건을 벌여놓고도 모른 척하는 일들이 많아요. 저는 힘없는 사람들 편에서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인데, 글을 써서 그 사람들의 아픔을 대변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저는 그게 문학하는 사람들의 자세라고 생각해요."
 
류이경 작가는 꽃집을 운영하고 있다. 작가가 꽃집 앞에서 단편소설 <붉은 나무의 언어>가 수록된 월간 한국소설(2021년 9월호)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류이경 작가는 꽃집을 운영하고 있다. 작가가 꽃집 앞에서 단편소설 <붉은 나무의 언어>가 수록된 월간 한국소설(2021년 9월호)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 임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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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을 발표하고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소설을 오래 쓰신 원로 한 분이 전화를 주셨어요. 보통 소설에서는 가정사, 로맨스 등의 주제가 많은데 우리 민족의 아픈 이야기와 담론을 끌어내주어 좋았다는 말씀을 해주셨죠.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희생당한 7천여 명의 사람들이 빨갱이이고 처벌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어요.. 가슴 아픈 사람이 많다는 것이 좀 더 알려지게 될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과 특히 젊은이들도 알면 좋겠어요."

- 이후 계획은?

"이번에 쓴 단편소설이 저에게는 10번째 작품이에요. 지금까지 썼던 소설들을 묶어서 내년쯤에 소설집으로 낼 계획이에요.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국가공권력이나 기득권층 등 힘 있는 자들로 인한 약자의 아픔을 표현하고 싶어요."

꽃집을 운영하면서 글을 쓰고 있는 류이경 작가는 한국소설가협회 회원으로서 2018년 단편소설 <너를 기억해>로 등단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통일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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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평화통일교육연구소장(북한학 박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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