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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는 몰랐다. 나팔꽃들의 엄청난 생존력을
▲ 청초한 나팔꽃 이때는 몰랐다. 나팔꽃들의 엄청난 생존력을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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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생활의 반은 잡초와의 전쟁이다. 잡초들은 머리카락 같아서 뽑아내도 곧 다시 자라났다. 한 종류의 풀이 사라지고 나면 다른 종의 풀이 더 극성을 부렸다. 시골살이 20년 내공의 나는 잡초와 적당히 타협하며 살고 있다. 그래서 어느 계절의 화단은 여러 종류의 꽃들이 중구난방으로 피어 있다가도 다른 계절에는 폐허처럼 풀밭이 되어 있기도 한다.

지난 계절의 어느 날, 화단에서 완벽한 하트 모양의 풀이 자라더니 나팔꽃 한 송이를 피어 올렸다. 우리나라 야생화 색깔로는 흔치 않은 청보랏빛에 주먹 만한 나팔의 크기에 나는 홀딱 빠져 버렸다. 아침 햇살 속에 기상 나팔을 불어줄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나팔꽃을 보는 순간을 즐겼다. 가냘프고 청초한 모습으로 한 두 송이만 피어나곤 하는 모습에 보호 본능도 발동했다.

그때는 보이지 않았다. 오전에 잠시 피었다가 지는 나팔꽃은 오후가 되면 작은 쓰레기 봉지를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꼴이 되는 것도, 엄청난 번식력으로 화단을 잠식해버린다는 것도. 그때는 몰랐다. 나팔꽃과의 전쟁의 서막이 그렇게 시작된다는 것도.

살아 있는 모든 것마다 오랜 세월 유전자 속에 축적 되어온 다양한 생존 방법이 있겠다. 나팔꽃이 살아남는 방법은 동정심과 보호 본능을 자극해 1차적인 제거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었다. 그 다음 단계는 아침의 영광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도 남을 고혹적인 색감으로 유혹하기였다. 그 유혹에 홀딱 넘어간 1인들 중에 하나가 나였다.

나팔꽃에 비유한 시와 노랫말에는 꽃의 속성인 안타깝고 짧은 사랑만을 담고 있다. 완벽한 하트 모양의 잎들이 서로 얽히고설켜서 무서운 속도로 뻗어나가기 시작하면 삼각, 사각을 뛰어넘어 그물망으로 얽힌 '바람둥이들의 말로 같은 경지'를 보여준다는 것까지는 모른다. 멜로로 시작한 영화가 서스펜스 스릴러로 치닫는 나팔꽃의 생존력은 못 보았다는 거다.

바쁜 날들이 며칠이 지나가고 화단에 나가보니 나팔꽃들의 위세가 장난이 아니었다. 예쁘다고 봐줬더니 온 화단을 덮어버리는 것도 모자라, 감을 수 있는 모든 것들에 매달려 배배 꼬이는 꽈배기 줄기로 정원수들까지 접수하고 있었다. 내가 심었던 야생화들이 나팔꽃에 덮여 남아난 것이 없었다. 이 정도면 만행이었다.

양귀비였던가, 서시가 그랬던가, 황제 가까이에 있는 여자들 중에 저보다 예쁜 것들은 모두 죽여 버렸다는 미인의 핏빛 서사를 나팔꽃에서 보았다면 누가 믿을까? 잘못 들인 나팔꽃은 덩굴 괴물이 되어 게임 캐릭터로 탄생할 지경이었다. 적당한 선을 지키지 못하고 잡초의 습성을 드러내고 있는 요망한 나팔꽃들을 처단할 시기를 결정해야 했다.
 
얽히고 설킨 삼각, 사각 로맨스를 넘어 그물망으로 얽힌 나팔꽃들은 다른 꽃들을 잠식하는 서스펜스 스릴러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넝쿨장미가 이 나팔꽃 넝쿨 속에서 희생양이 되었다.
▲ 나팔꽃 정원 얽히고 설킨 삼각, 사각 로맨스를 넘어 그물망으로 얽힌 나팔꽃들은 다른 꽃들을 잠식하는 서스펜스 스릴러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넝쿨장미가 이 나팔꽃 넝쿨 속에서 희생양이 되었다.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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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약해질까봐 무딘 감성의 끝판왕인 아들 녀석을 불렀다. 군대에서 배운 예초기 실력으로 벌초 아르바이트까지 했던 경력을 엄마의 화단에도 써먹어 달라고 부탁했다.

주말에 오기로 한 아들 녀석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나팔꽃들은 청초하고 매혹적인 청보라빛으로 나를 유혹한다. 나는 잠시 나팔꽃의 딜레마에 빠진다. 치명적인 청보랏빛을 두 눈 질끈 감고 봐주기에는 나팔꽃의 죄목이 너무 많았다. 그 중에서 내가 애써 가꾼 화단을 완벽한 하트모양으로 덮어버려 나의 꽃들을 몰살시킨 죄가 가장 컸다. 그 대가는 치러야했다.

군대에서 예초기 다루는 법과 더불어 길이 10센티가 넘는 식물들은 모두 잡초로 인식하도록 훈련된 아들 녀석은 땅 위 식물들에게 무자비했다. 꽃 따위에도 무관심한 아들 녀석의 예초기는 거침이 없었다. 녀석의 눈은 땅 위의 10센티만 인지했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아들 녀석의 예초기는 동정심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녀석의 예초기가 스치는 곳마다 핏물이 뚝뚝 맺히듯 나팔꽃의 모가지들이 뭉개져버렸다.

나팔꽃들이 점령했던 화단의 속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지피 식물로 심었던 송엽국은 씨가 말랐고 메리골드는 흡사 좀비에게 물린 몰골로 쓰러져 있었다. 지난 한 달간 아침마다 나를 감성부자로 만들어주었던 나팔꽃들과 결별의 수순을 그렇게 밟았다.

그러나 결별은 나 혼자만의 것이었다. 나팔꽃들이 생존력이 높았던 이유가 덩굴을 걷어내자 온전히 드러났다. 꽃이 일찍 지면서 씨가 바로 생기고 땅에 떨어져 계속 발아가 되고 있었던 거였다. 그야말로 씨까지 말리는 작전을 쓰지 않고는 나팔꽃을 당한 재간이 없었다.

말이 앞서는 아들 녀석의 예초기 실력에서 살아남은 나팔꽃들도 적지 않았다. 오히려 줄기를 솎아준 셈이 되어버려 더 강도 높은 반항에 더 시달리게 되었다. 아침이면 나 보란 듯이 한층 채도를 높인 치명적인 청보랏빛 나팔을 불어대다가 오후에는 터진 풍선들로 변신하는 나팔꽃들에게 쓴웃음이 나왔다. 사람은 풀을 이기지 못한다고 한 말은 사실이었다.

화단에 서서 팔짱을 끼고 남겨진 나팔꽃들의 양다리 로맨스를 구경하다가 문득 '아빠가 매어놓은 새끼줄 따라 나팔꽃도...'라는 노랫말이 방언처럼 터져 나왔다. 새끼줄이었다. 나팔꽃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나팔꽃들의 정글 로맨스를 정리해줄 해법을 새끼줄에서 찾을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

기억을 더듬어 보니 어릴 적 우리 아빠도 화분을 창문 아래에 놓고 방범창살에 나일론 줄을 묶어서 덩굴손을 유인해 나팔꽃을 가꾸곤 했었다. 너무 긴 세월이 흘렀다. 동요를 잊고 '립스틱 짙게 바르고 나팔꽃보다...' 하는 가요가 감성을 지배했던 젊은 날을 보낸 탓이었다. 올해는 늦었다. 이제서 유인줄을 묶어주기에 나팔꽃 줄기들은 너덜너덜해졌고 처음과 끝이 어디인지 찾아낼 상황도 아니었다.

"엄마, 예초기가 덜 지나간 데는 제초제를 주면 지저분한 나팔꽃들을 해결할 수 있어. 내가 다음 주말에 해줄게."

감성이라곤 1도 없는 아들 녀석은 이렇게 말했다. 이 정도면 아들의 감성 사전에는 나팔꽃이 예초기와 제초제로 검색되는 키워드에 걸려 있는 것이 분명했다.

"덩굴손을 유인하는 줄을 매면 나팔꽃들이 예쁘게 자란대."
"엄마, 그깟 나팔꽃들 싹 없애 버리고 깨끗하게 사셔요. 엄마의 화단은 너무 지저분해."


역시 녀석은 길이 10센티가 넘는 식물은 잡초로만 인식하는 잡초제거 로봇 감성뿐이었다. 나의 화단이 지저분하다는 것도 부인하지는 않겠다. 아직 화단에 남아서 보랏빛 웃음을 흘리고 있는 나팔꽃들에게 나는 지금도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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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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