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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단씨는 지난 6일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이 날은 나씨의 입대일이었다.
 나단씨는 지난 6일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이 날은 나씨의 입대일이었다.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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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민인 남성은 '대한민국 헌법'과 이 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병역의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는 병역법 3조 1항에 따라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남성은 군 복무를 필해야 한다. 

이 같은 법 규정에도 종교적 신념 혹은 양심의 자유를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젊은이들은 있어 왔다. 하지만 이들의 앞길은 순탄치 않다. 일단 형사재판을 받아야 한다. '의무 복무를 마친 사람은 그럼 비양심적이냐?'는 식의 홀대도 감수해야 한다.

사법부가 이따금씩 이들의 '신념'을 인정해 주곤 한다. 그러나 오랜 시간 송사를 준비해야 하고 강도 높은 검증절차를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도 마치 송곳처럼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를 선언하는 젊은이들은 꾸준히 나온다. 

지난 6일 병역거부를 선언한 나단씨도 그중 한 명이다. 나단씨는 이날 오전 서울지방병무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대한민국의 지난 역사는 제가 대한민국을 사랑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는 현재의 대한민국 역시 마찬가지"라며 "사랑하지 않는 존재를 목숨 바쳐 구할 의무가 제게는 없다"며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공교롭게도 나씨가 병역거부를 선언한 날은 그의 입대일이었다. 나씨는 현역병 입영 대신 대체복무를 하고자 2020년 10월 대체역심사위원회에 편입을 신청했다. 이에 대해 대체역심사위는 2021년 7월 나씨의 신청을 기각했다. "신청인의 신념이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대체역심사위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나씨는 기각 결정이 불합리하다고 보고 행정소송을 낼 방침이다. 기자는 심경과 저간의 사정을 듣고자 인터뷰를 요청했고, 나씨는 인터뷰에 응했다. 인터뷰는 지난 9일 여의도 인근에서 이뤄졌다. 

사회주의자

- 먼저 대체복무 심사에서 탈락한 심경부터 묻고 싶다. 
"군 현역병 복무가 어렵다고 선언하고, 대체역심사위에 이를 충분히 설명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납득이 가지 않았다. 기각 결정 후 한 주 지나 입영통지서가 왔다. 군 복무를 희망하지 않는데 억지로 군에 입대시키는 게 무슨 의미일까? 

현재 약 천 명가량이 대체복무 심사를 받았음에도 대기 중이다. 심사를 통과하면 교도소에 근무해야 하는데, 벌주기에 갇혀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현역병 입영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국가가) 허락한 방법이니 이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대체역심사위에선 교도소 복무도 국가폭력에 가담하는 것 아니냐? 교도소 복무가 군대보다 자유롭거나 평등하지 않을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국가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대체역심사위는 기각을 결정하면서 "신청인이 교정시설 복무는 국가폭력에 직접 가담하는 것이 아니며 사회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고 진술했으나 이 같은 진술만으로는 국가 폭력기구라는 점에서 동일한 군대는 거부하고 교정시설은 받아들이는 모순에 대해 충분히 설명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적시했다. 

- 누군가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를 선언하면 '남들 다 가는 군대'란 식의 냉소가 뒤따른다. 
"'남들 다가는 군대'라고 하지만 시선을 달리하면 '다 가기 싫어하는 군대'이지 않나? 입대하기 싫지만 가야 하니 병역거부를 선택한 이들에게 모난 말을 뱉는 것 같다. 안보위협이 불거질 때마다 군복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이들도 있고, 나라를 지키는 직업군인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가기 싫지만 끌려가다시피 한다. 이런 현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간혹 두려운 마음에 입대를 기피하는 사례도 있는데, 두려움도 수용되어야 한다. 두려움의 감정을 무시하는 건 아닌가?"

- 병역거부 기자회견 중에 "국가는 오직 지배계급을 위한 통치수단에 불과하다. 그러니 한 번도 지배계급이었던 적이 없는 저는 이 나라를 사랑할 수도, 지킬 수도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본인을 사회주의자라 칭했다. 
"먼저 지난 일들부터 설명하고자 한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접한 계기는 2012년 평화주의란 신념으로 병역을 거부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서였다. 평화주의자들은 '폭력의 맥락을 봐야 한다', '무조건 맞서 싸운다고 해서 평화가 아니고, 가만히 당한다고 비폭력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평화주의를 공부하면서 '국가폭력이 작용하는 방향이 일정하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 폭력은 자본의 이익을 향해 움직인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방향을 거스르려면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고 칭해야 했다."

나단씨는 대체역심사위에 낸 진술서에서 이렇게 적었다. "정부수립 직후, 국가는 국민 대다수가 염원하던 민족의 화합은 내버려 둔 채, 친일 잔존 세력과 지주, 그리고 자본가와 손잡고 평등한 세상을 꿈꾸던 제주도민을 몰살시키려 했습니다. 서슬 퍼런 군사독재정권 내내 이어진 폭압 속에서 노동자, 농민은 숨죽일 수밖에 없었고, 민중의 강제적인 침묵은 곧 자본의 폭발적인 성장, 즉 거대한 착취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노동자에게는 폭력적인 상황이 자본가들에게는 그토록 평화적이었던 것입니다. 비단 군사독재정권뿐 아니라, 이후 들어선 소위 민주정권도 마찬가지입니다."

- 가족 중 반대하는 이는 없었나? 
"어머니가 현직 목회자다. 처음 양심적 병역거부를 결심했을 때 어머니는 여호와의증인이나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는 것 아니냐며 반대했다. 하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달라졌다. 어머니는 진보 성향의 장로교단에 속해 있는데, 주변에 진보 활동하는 목사님들이 여럿 계시다. 이분들은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더구나 최근 군 입대 후 적응하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군인의 이야기를 언론 보도로 접했다. 이런 이유로 어머니께선 자식을 억지로 군에 입대시키려 하지는 않는다."

'양심' 보겠다며 사상검증? 

- 양심 혹은 신념을 '검증'하는 절차는 무척 강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 위치추적을 당한 병역거부자도 존재한다. 대체복무 심사 과정에서 혹시 사상검증 같은 일들은 당하지 않았나? 
"심사위는 '얼마나 폭력에 거부감을 갖나?'를 '양심'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보는 것 같다. 내 경우 심사위원 중 한 명이 역사적 사건, 구체적으로 제주4.3과 이라크 파병에 대해 물었다. 

이에 대해 'A가 B의 뺨을 때렸는데 B가 참는다고 해서 평화라 생각하지 않고, 저항한다고 해서 비폭력이라 여기지 않는다'는 취지로 답했다. 이러자 해당 위원은 '뺨따귀론'이라고 멋대로 이름을 붙이더니 다소 비아냥섞인 어조로 제주4.3은 노동당 폭도들을 정당하게 진압한 것 아니냐? 그렇다면 '뺨따귀론'에 부합하는 것 아니냐?는 식의 질문을 던졌다.

난 '제주4.3이 사고 형성에 일정 수준 영향을 미쳤다'고 진술하면 끝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해당 위원은 남로당 폭동에만 초점을 맞춰 '제주4.3이 내 생각과는 다른 성격의 사건인데, 어떻게 그런 영향을 끼칠 수 있냐'고 되물은 것이다. 이 위원은 또 이라크 파병에 대해서도 물었다. 한미동맹, 그리고 체제 안정을 위해 이라크에 파병했다고 진술했다. 이러자 해당 위원은 '이라크에 평화유지군을 보낸 게 이라크 국민에게 폭력적인 행위였냐?'고 되물었다. 이 점은 사상검증이고 인권침해라고 본다. 국가인권위에도 진정을 내기로 했다."

- 혹시 군 부조리를 그린 드라마 <D.P.> 보았는가? 양심적 병역거부자로서 어떤 심경이었나?
"몇몇 대사, 특히 '군대 오지 않았으면 탈영할 일도 없었을 것'이란 대사가 와닿았다. 무엇보다 작은 사회 안에서 청춘을 격리시킨 다음 권력놀이를 시키고, 그 속에서 누구나 피해자와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을 잘 그려냈다고 본다. 군대에서 가혹행위를 일삼던 황장수가 전역 후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권력적인 상황에 노출된 장면도 좋았다. 드라마를 보면서 병역거부에 대한 신념도 더욱 굳혔다."

- 행정소송을 내기로 했다고 들었다. 만약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행정 절차상 기각 결정에 이의가 있다면 결정이 있음을 안 날부터 90일 이내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 일단 행정심판을 준비할 것이다. 이와는 별개로 입영대상자가 입영하지 않았을 경우 병무청이 경찰에 고발한다. 이어 검찰이 기소해 형사재판을 받아야 한다. 소송 절차와 무관하게 현역병 입영은 거부할 것이다. 대체복무로든 죄수로든 감옥행은 불가피하겠지만 말이다."

태그:#양심적 병역거부, #병역법, #행정소송, #D.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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