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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낀40대'는 40대가 된 X세대 시민기자 글쓰기 그룹입니다.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흔들리고, 애쓰며 사는 지금 40대의 고민을 씁니다. 이번 주제는 '40대의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에 흔들린 마음 

급한 자료 제출로 분주한 오후를 보내던 중 회사 업무망에 부고 소식이 떴다. 그냥 지나치려다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 옆자리에서 근무했던 직원의 형님 상이었다. 부고장에 적힌 나이는 겨우 50세였다. 순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가끔 형님과 살갑게 전화 통화하는 것을 들은 적도 있었다. 코로나로 인하여 장례식장에는 가지 못하고, 부의금만 전달했다.  

며칠이 지나서 그 직원에게 연락했다. 땅끝까지 꺼진 목소리에 그저 위로의 말을 전할 뿐이었다. 특별한 지병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전날까지 통화했었는데, 갑자기 심장마비로 그날 밤에 사망했다고 한다. 전화를 끊고 나 역시도 한없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인생무상이 따로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청첩장보다는 부고가 익숙한 나이가 되었다. 안타깝지만, 전능한 시간의 영역이니 막을 수도 미룰 수도 없다. 죽음은 아직도 먼 나라의 이야기 같지만, 천천히 한발 한발 다가오고 있다.          
 
어머니 같은 존재였던 큰 이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어머니 같은 존재였던 큰 이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실감이 나지 않았다.
ⓒ ⓒ ocollet,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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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언제나 근처에 있었다

나에게 어머니 같은 존재였던 큰 이모님이 돌아가신 지도 벌써 2년이 넘었다. 그날 새벽에 아버지께 연락을 받고 이모님이 계셨던 요양 병원으로 향했다. 실감이 나지 않아서였을까. 처음엔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장례식장에서 잠을 자는 듯 평온한 시신을 확인하고 나서야 꾹 눌러 놓았던 눈물이 한없이 쏟아졌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해야만 하는 죽음이었다. 

내가 어릴 때 어머니는 몸이 안 좋았고, 근처에 살았던 큰 이모님이 우리 집에 자주 와서 나를 돌봐주셨다. 오래전에 이혼하셨고, 사촌 누나와 둘이 살았다. 늘 내 편이셨고, 조건 없는 사랑을 주셨다. 사촌 누나가 시집을 간 뒤로는 몇 년간 집에서 함께 지냈다. 내가 결혼 한 뒤로는 본가 근처에서 집을 얻어 혼자 계셨다. 자주 찾아뵈려고는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삶이 바쁘다는 핑계였다.  

어느 날 이모님이 사시던 집에 불이 났고, 연기를 많이 마신 탓에 병원에 입원하셨다. 퇴원 후 사촌 누나도 돌볼 상황이 되지 못하여 결국 요양 병원으로 향했다. 움직이지도 못하고, 음식도 드실 수 없어서 코 줄을 연결하여 영양을 공급했다.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찾아뵈었는데, 갈 때마다 눈에 띄게 쇠약해졌다. 온종일 침대에 누워 그 긴 시간을 보냈다. 언젠가 답답하지 않냐고 여쭤본 적이 있었다. 

"답답하긴. 옛날 생각을 많이 해. 어릴 때 살던 동네도 떠올리고, 너 어렸을 때 생각도 하고. 마음은 편하다. 미련도 없고. 그냥 즐겁게 살아. 즐겁게..." 

푹 꺼진 눈동자로 읊조리는 말들이 왜 이리 가슴에 박혔는지 모르겠다. 이모님을 뵙고 돌아가는 길은 늘 어둡고 무거웠다.  

장례식을 마치고 한동안 우울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길을 가다가도 눈물이 났고, 자주 찾아뵙지 못한 죄책감으로 괴로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감정은 옅어졌지만,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아 부지불식 간에 떠오른다.

비록 이 세상에서는 다시 만날 수 없지만,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남는다. 남겨진 사람은 남겨진 채로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 하나둘 떠나가는 상실감을 어떻게 견디냐가 남은 삶의 과제인 것 같다. 

언제라도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면 이렇게 아등바등 살아야 하나 싶으면서도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적 문제에 자유롭지 못하다. 아내와 아이들을 위하여 돈도 많이 벌고 싶고, 회사에서 승진이나 인정받고 싶은 욕구로 가득 차 있다. 이렇듯 죽음은 시계추처럼 가까워졌다, 멀어졌다를 반복한다. 하긴 인간에게 '망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불안함을 떨쳐내지 못하리라. 

죽음은 곧 삶과 연결되어 있다

며칠 전 부모님 댁을 찾아뵈었다.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머니께서 불쑥 장기 기증 이야기를 꺼내셨다. 이미 장기 기증에 서명했으니, 나중에 꼭 동의하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알겠다는 말이 쉽사리 나오지 못했다.

여전히 나에게는 영원히 계실 것 같은 부모님이 이렇게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에 놀랐고, 더구나 장기 기증을 한다는 것이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 상황이 정말 닥친다면 내가 동의를 할 수 있을까. 분명 사회적으로도 필요한 일이고, 부모님께서도 의미 있는 결정을 하신 것은 맞지만, 그것이 나의 일이라고 생각하니 선뜻 답할 수 없었다. 

죽음에 대한 또 다른 고민이 찾아왔다. 이번에는 죽음 이후에 대한 선택의 문제이다. 언젠가 그 결정을 내려야 할 때는 올 것이다. 부모님의 의사를 존중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지금 나의 혼란스러운 감정도 전하고 싶다.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정확히 알아야 이해도 동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듯 죽음은 살아있는 한 시시각각 찾아와 내 마음을 흔든다. 그럴 때마다 이상하게 지금 나를 돌아보게 된다. 잘 살고는 있는 것인가.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런 고민 속에 깊게 빠져드는 것을 보면, 결국 동전의 양면처럼 죽음은 곧 현재 살아가야 하는 삶과 연결되어 있다.  

나 또한 언젠가 늙고 쇠약해져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삶이 퍽퍽하더라도 그 안에서 어떻게든 의미를 찾아 잘 살도록 노력해야겠다. 결국, 마지막에 남을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 가족, 친구, 지인과 좋은 추억을 많이 쌓으며 가슴 속에 '나'를 남기고 싶다. 바쁘게 돌아가는 하루이지만 틈틈이 뒤도 돌아보고, 옆도 바라보면서 마음의 여유도 챙겨가면서. 

이제는 죽음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망각'에 기대지 말고 조금씩이라도 의식하며 살아야겠다. 마냥 두렵고 피하고만 싶은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내가 더 잘 살아갈 수 있는 의미 있는 존재로서 말이다. 

group낀40대 http://omn.kr/group/forty
40대가 된 X세대입니다.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흔들리고, 애쓰며 사는 지금 40대의 고민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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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상이 제 손을 빌어 찬란하게 변하는 순간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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