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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차별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차별금지법은 우리 모두를 위한 법입니다. 기획 '차별금지법과 나'에서는 시민기자들이 주변에서 보고 직접 경험한 차별에 대해 이야기하며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촉구합니다. 많은 시민기자들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편집자말]
9월 7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동구 고양꽃전시관에 임시설치된 얀센백신거점접종센터에서 만 30세 내외국인이 접종하기 위해 대기 하고 있다.
 9월 7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동구 고양꽃전시관에 임시설치된 얀센백신거점접종센터에서 만 30세 내외국인이 접종하기 위해 대기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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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백신 접종 증명서가 없으면 일할 수 없다고 사장이 통보했을 때 마르따(가명)는 난감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백신 부작용에 대한 뉴스를 접하면서 맞을까 말까를 고민하던 차였다. 그 일로 마르따는 오랜만에 이주노동자쉼터를 찾았다. 쉼터 사람들과 서로 알고 지낸 지 벌써 이십여 년인 그는 지금 식당에서 일하고 있다.

선글라스를 머리에 얹고 밝은 표정으로 쉼터에 들어선 마르따는 백신접종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물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결혼하라는 어른들 잔소리가 듣기 싫어 서른 즈음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가사노동자로 일하기도 했었고, 영어강사를 할 수 있다는 말에 관광취업비자로 한국에 왔던 그의 용기를 떠올려 보면 의외였다. 어찌 됐든 마르따는 한 번만 맞으면 접종완료가 되는 얀센을 맞았다.

함께 예방접종센터에 갔다 오며 오늘은 쉬어야 한다고 하자, 마르따는 저녁에라도 일해야 한다고 했다. 일터로 빨리 돌아가려는 눈치를 모른 척하고 입에 맞는지 모르는 들깨칼국수를 사주며 천천히 가도 된다고 타일렀다.

"예방접종 후 비정상반응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오늘은 무조건 쉬는 거라고요. 사장님께는 백신 맞으러 온 사람이 너무 많아서 오래 기다렸는데 보건소에서 백신 맞고 안정 취하라고 해서 일 못한다고 해요."

한국인은 나를 이름으로 불렀다

마르따가 처음 한국에 왔던 때는 한일월드컵으로 대한민국이 들썩이던 해였다. 농구 말고도 그렇게 많은 사람을 열광하게 하는 스포츠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는 그에게 대한민국은 녹록지 않았다. 

사우디에서 귀국 후 어학원 강사를 하던 마르따에게 한국으로 갈 것을 권했던 사람은 영어학원 취업을 약속했다. 어학원에서 만났던 한국 학생들도 그의 한국행을 적극 찬성했다. 그러나 정작 마르따가 한국에 오자 초청인은 주한미군 가사도우미를 권했다. 

필리핀은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기 때문에 영어강사 비자를 발급받을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사우디에서 비슷한 일을 했던 경험이 있지만, 마르따가 바라던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스스로 일자리를 찾을 수도 없었다.

한 달 뒤 귀국을 결심했을 때 학원 강사 자리가 나왔다. 그렇다고 취업비자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체류 자격은 있지만 취업 자격은 없는 어정쩡한 상태에서 시작한 일을 이십 년 가까이 할 줄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그동안 조카가 한국인과 결혼하여 아이 둘을 낳고 이혼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았고, 그의 체류자격도 몇 번 바뀌었다.

처음 일했던 학원에서 일 년쯤 지났을 때 친하게 지내던 선생님이 창업하며 같이 일하자고 했고 작년 초 코로나로 문을 닫기 전까지 그곳에서만 학생들을 가르쳤다. 매해 선생님들이 바뀌었던 걸 생각해 보면 그는 터줏대감이었다. 같은 나이 또래인 학원장은 마르따를 친구처럼 대했고 이름으로 불렀다.

학생들은 대체로 수줍음이 많긴 했지만 예의 바르고 착했다. 동료 선생님들은 갓 대학을 졸업했거나 대학 재학 중인 경우가 많았다. 학생들과 선생님들도 마르따를 부를 때 이름으로 불렀다. 처음에는 그게 당연할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호칭에 의문이 생겼다. 

한 번은 아르바이트로 온 대학생이나 새로 온 선생님이나 한국 사람은 다 선생님으로 부르는데 자신만 이름으로 불리는 게 이상하다고 원장 선생님께 말했던 적도 있었다. 그때 영어권에서는 여자 선생님에게 맘(ma'am)이라고 부르는 걸 알지 않느냐며 호칭 변경을 요청했었다.

원장 선생님은 먼저 선생님이나 학생들이 무례한지를 물었다. 마르따는 그런 건 아니라고 했다. 그러자 원장은 "학생들이 영어를 배우면서 외국인에게 좀 더 친근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그런 거니까 이해해요"라고 했다. 

마르따는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자신을 무시해서 이름을 부르는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영어 학원에서 호칭에 차별을 두는 건 학생들에게도 좋지 않다는 걸 말했지만 원장은 학원 원칙상 그렇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학원에서 가르쳤던 학생들을 우연하게 길거리나 마트에서 만날 때마다 학생들은 아는 척하며 마르따 이름을 불렀다. 덕택에 마르따는 동네에서 이름이 제법 알려진 외국인이긴 해도 학부모들로부터도 선생님으로 불린 적은 한 번도 없다. 학부모들 중에는 마르따보다 나이 어린 사람도 많았지만 아이들처럼 이름으로 불렀다. 

"코로나 때문에 다들 어렵잖아요"
 
최근 서울에서 학원 강사가 잇달아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 판정을 받고 있지만, 서울 시내 학원 10곳 중 8곳꼴로 문을 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2020년 3월 30일 저녁 서울 대치동학원가의 모습.
 최근 서울에서 학원 강사가 잇달아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 판정을 받고 있지만, 서울 시내 학원 10곳 중 8곳꼴로 문을 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2020년 3월 30일 저녁 서울 대치동학원가의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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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이십 년을 가르쳐도 선생님 소리 한 번 못 들었다는 마르따는 요즘 또다시 호칭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했다. 필리핀에서 몇 년간 살다 왔다는 한 손님이 자신을 부를 때 아떼라고 한다고 했다. 그 손님과 친구인 사장도 요즘은 마르따를 아떼라고 부른다. 

아떼는 누나 혹은 언니라는 뜻인데 자신보다 훨씬 나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불러서 어색하기도 하지만 마르따는 무엇보다 한국인들이 아떼라는 단어를 누구에게 쓰는지 알고 있기에 그 호칭이 불편하다고 했다.

필리핀 어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만난 한국인들은 대체로 집안일을 하는 어린 필리핀 여자를 아떼라고 불렀다. 한국인들이 자기보다 나이 어린 사람을 아떼라고 부르는 게 이상했지만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었을 때라 그러려니 했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은 이모라고 부르잖아요. 저도 그렇게 불러 주면 좋겠어요. 학원에서 느낀 거지만 이름을 부르는 건 뭔가 구분하는 거 같아요. 당신은 외국 사람. 이런 느낌이에요."
"아떼는 이름이 아니잖아요."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그렇게 부르면 부담스럽죠. 필리핀 공동체 사이에서 저를 아떼라고 부르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제가 가장 나이가 많으니까요. 하지만 한국 사장님이 저를 아떼라고 부를 땐 저를 존중해서 부른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느낌! 알죠? 느낌!"


느낌이라는 말을 강조하며 마르따는 손바닥을 아래로 향하는 시늉을 했다. 대놓고 무시하거나 멸시하려는 의도도 없고, 어떤 면에서는 좋은 뜻으로 한 말이지만 상대방이 느끼기에 거북할 수 있는 상황이 있다는 걸 그는 말하고 있었다. 그에게 그 느낌을 사장에게 말해 보라고 하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식당 사장님과 학원 원장님이 잘 아는 사이에요. 코로나가 끝나면 다시 학원에서 일하고 싶은데, 식당 사장님께 나쁜 인상을 주고 싶진 않아요."

연말까지만 일하고 학원에서 다시 일하고 싶다는 마르따는 이혼하고 귀국한 조카를 도와주고 싶어도 형편이 되지 않아서 안타깝다고 했다. 그에게 이십 년 가깝게 일한 학원에서 받은 퇴직금이 남아 있을 거 아니냐고 물었다. 대답이 간단했다.

"다시 일해야 해서..."

그는 퇴직금을 받지 못했다. 작년에 갑자기 해고되었을 때 퇴직금 요구를 할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다시 일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에 요구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퇴직금을 포기하는 건 억울하지 않느냐고 하자, 마르따는 근로계약서도 없고, 근무 사실을 증명할 급여 지급 내역도 없는데 원장이 주겠냐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마르따는 외국인이라 퇴직금을 준다는 생각을 못 했을 수 있을 거라며 원장을 이해한다는 듯이 말했다.

"친구처럼 지냈는데 퇴직금 달라는 말을 못 하겠어요. 코로나 때문에 다들 어렵잖아요."

일 년 넘게 일하는 선생님이 흔치 않았던 학원에서 이십 년 가까이 묵묵히 일했는데 선생님 소리도 못 듣고, 퇴직금도 못 받은 마르따는 여전히 그 학원에서 일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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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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