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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낀40대'는 40대가 된 X세대 시민기자 글쓰기 그룹입니다.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흔들리고, 애쓰며 사는 지금 40대의 고민을 씁니다. 이번 주제는 '40대의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비가 내리지 않는 대부분의 오후, 바깥에서 시간을 보낸다. 아이가 친구들과 놀이에 빠져 있는 동안 여러 종류의 꽃과 나무, 인공연못이 있는 아파트 정원을 천천히 걷는다.

한 계절이 지날 때마다 다양한 꽃들이 피고 지고, 작은 곤충과 동물들도 나타났다 자취를 감춘다. 그대로 낙하한 듯 고이 누운 매미의 사체도 가끔 마주치고, 비 온 뒤 흙 속을 벗어난 지렁이들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말라 죽어가는 모습을 본다.

노랗고 빨갛게 몸단장을 준비하고 있을 나뭇잎들도 조만간 올해 최고의 화려함을 한껏 뽐낸 뒤 무성했던 잎사귀를 떨구게 될 것이다. 이런 풍경을 바라보다 생(生)과 사(死)란 하나의 순환의 고리를 이루는 삶 그 자체가 아닌가 생각한다.

꽤 오랜 시간, 내 삶은 온갖 시작으로 가득했다. 그 모든 시기에도 분명 끝은 있었다. 그러나 그 끝은 생의 순간을 위해 존재하는 끝일 뿐, 수많은 시작으로 이어진 삶은 온통 생명의 에너지가 흘러넘쳤다.

언젠가부터 끝을 알리는 소식이 빈번해지던 어느 날, 내 삶에도 죽음의 에너지가 다가왔다. 시아버지를 시작으로 거의 1년 뒤 내게 또 다른 엄마 같았던 존재, 외할머니가 고통스러운 투병 끝에 돌아가셨다. 반년 뒤쯤 친할머니도 뒤를 따르셨다. 늘 생으로 가득하다고 여겼던 삶 속에도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삶 속에 죽음이 있다.
▲ 죽음으로 향하는 시간 삶 속에 죽음이 있다.
ⓒ Aron Visuals,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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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자라나고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짐에 따라 부모님의 얼굴 주름과 흰머리,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일들이 점점 늘어난다. 이제 부모님 또한 삶의 끝에 조금씩 더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종종 실감한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나도 그 뒤를 따르게 될 것이다.

삶의 한 과정으로 죽음을 받아들이기에 그동안 나는 더 잘 살기 위한 계획들로 꽉 차 너무 바빴다. 삶이 내 의지와 다를 수 있다는 걸 크게 실감한 것이 3년 전 이맘 때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죽음이었다. 어린 시절, 아픈 엄마 대신 나를 돌봐주신 할머니는 내게 각별한 존재였다.

죽음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고령이셨지만 왕성하게 농사일을 이어가시던 분이었다. 또, 소학교 시절에 강제로 배웠던 일본어를 여행지에서 유창하게 쓰는 정정함에 누구도 할머니가 그렇게 갑작스레 죽음으로 다가가실 줄 몰랐다. 90세를 목전에 앞둔 초여름, 할머니 몸에서는 암 덩이가 발견됐고, 연세와 체력 때문에 수술 한번 해 보지 못한 채 마지막 몇 달을 고통과 싸우다 힘겹게 돌아가셨다.

끝까지 자식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극심한 통증을 묵묵하게 견딘 할머니.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의 역사를 고스란히 겪어내며, 1남 6녀의 7남매와 그들의 가족을 평생 먹이고 챙긴 헌신으로 가득했던 삶의 끝이라기엔 가혹한 마지막이었다. 믿지도 않는 세상의 신들을 원망하면서도 그들에게 할머니의 고통이 빨리 끝나기를 간절히 빌었다.

할머니의 마지막을 보며 죽음의 공포와, 고독함, 고통이란 사랑하는 사람들조차 나눠질 수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임에 충격을 받았다. 죽음 앞에서 무력하고 시시각각 생의 고민에 빠지는 나와 가족들의 모습에 혼란스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할머니가 음식을 삼키지 못해 나무토막처럼 변해 약물로 하루하루를 버티실 때, 병실에서 시린 가슴으로 눈물을 흘린 우리는 끼니때가 되면 눈이 부시게 쏟아지는 햇살 아래를 걸어 주린 배를 채우러 식당으로 가 오랜만에 만난 각자의 근황을 묻고 떠들었다.

임종이 머지않았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담당의사의 말을 듣고 고민에 빠졌다. 그때 남편은 상해에서 파견근무 중이었고 나와 아이는 남편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몇 달 전 이미 비행기를 예약해둔 상태였다.

마침 막내이모도 이모부의 30주년 근속을 맞아 포상으로 유럽 가족여행 일정이 몇 달 전부터 계획되어 있었다. 숙고 끝에 우리는 각자 일정을 소화하고 돌아왔고, 할머니는 우리의 마음이 불편하지 않게 기다려주셨다.

그때 생각했다. 죽음 앞에서 함께 한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죽음이란 결국 당사자에게 국한되는 사건일 뿐이 아닌가? 당시에 가졌던 의문을 최근에서야 정리하게 되었다.

죽음을 앞둔 당사자가 혼자만의 고통과 고독을 짊어지고 떠나려는 순간, 살아있는 자가 그 무게를 덜어주려 애쓰는 것은 비록 무력하더라도 의미 있는 일이었다. 고통만이 이어지던 순간에도 드물게 희미한 미소 같은 것을 보여주셨던 할머니에게 우리와 함께한 순간이 조금은 편안한 죽음이었기를 바랐다.

할머니의 마지막 된장 한 스푼이 알려준 것
 
할머니의 마지막 된장 한스푼으로 끓인 된장국
▲ 된장국 할머니의 마지막 된장 한스푼으로 끓인 된장국
ⓒ 박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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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를 통해 나는 죽음이 완전한 소멸이 아님을 배우기도 했다. 얼마 전 돌아가신 할머니가 만들어 두신 된장의 마지막 한 스푼으로 된장국을 끓였다. 이제 다시는 맛볼 수 없는 추억 속의 맛이 되었지만 늘 된장을 먹는 동안 할머니를 떠올렸다. 할머니가 아낌없이 뿌려두고 가신 사랑과 정성의 깊이를 되새길 수 있다. 몸은 사라졌지만 우리에게 남겨주고 간 위대한 유산은 여전히 살아서 삶 곳곳에서 숨 쉬고 있었다.

죽음을 이야기한 그림책 중 이탈리아의 작가인 안나 마리아 고치가 쓰고 비올레타 로피즈가 그린 <할머니의 팡도르>가 있다. 강으로 둘러싸인 어느 외딴 집, 나이가 든 할머니가 홀로 살고 있다. 할머니는 죽음이 자신을 잊어버린 거라고 중얼거리지만 사실 사신은 근처에 있다가 때가 되어 불쑥 할머니 집으로 들어선다.

마침 할머니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세상 어디에서도 알려진 적 없는 비밀 요리법으로 크리스마스 과자와 팔각형의 별 모양인 빵, 팡도르를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할머니는 여태껏 기다렸는데 며칠 더 못 기다릴 게 뭐냐며 사신의 입에 달콤한 것들을 쏙 집어넣어준다. 달콤하고 향긋한 생의 맛을 보아버린 사신은 자신의 의무를 깜빡 잊어버리고 할머니가 비밀 레시피로 만든 과자들을 완성할 때까지 기다려준다.

처음 할머니가 사신을 따라갈 날을 미루는 것이 무언가를 세상에 남기고 떠나야 한다는 강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거듭 읽어 보면서 할머니는 자신을 위해 팡도르를 완성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자신이 떠난 뒤에도 아이들이 그것을 맛볼 수 있도록, 남겨질 존재의 기쁨을 위해 사신에게 며칠의 말미를 줄 것을 부탁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외할머니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우리 가족은 할머니로 인해 옛 추억을 꺼내 모았고, 매주 시간을 내어 추억을 나누며 함께 하는 일의 기쁨을 확인했다. 형벌과도 같았던 할머니의 고통을 대신 짊어질 수 없었지만 우리는 할머니로 인해 울고 웃으며 서로를 더 가까이하며 사랑할 수 있었다.

할머니는 자신의 삶으로 그 비밀을 전하셨다. 할머니로 인해 가능했던 모든 것들과 받았던 사랑에 감사했다. 할머니가 삶의 곳곳에 숨겨둔 깊은 사랑은 지금도 계절마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우리에게 전해진다. 그것은 할머니의 부재로 사라질 수 없는 것이었다.

여전히 나는 생의 에너지로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지만 곁에서 도사리고 있는 죽음이 언제고 불쑥 찾아들 것을 안다. 무력하더라도 할 수 있는 최선으로 곁을 지키며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로 인해 조금은 '편안한 죽음'을 맞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리고 언젠가 사신이 내 방문을 두드릴 때까지 나만의 팡도르 반죽을 열심히 저어보려고 한다. 삶도 죽음도 선택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것만은 꼭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저의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https://m.blog.naver.com/uj0102
https://brunch.co.kr/@mynameisred


group낀40대 http://omn.kr/group/forty
40대가 된 X세대입니다.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흔들리고, 애쓰며 사는 지금 40대의 고민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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