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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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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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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침검사(가느다란 바늘로 혹의 세포를 추출, 검사하는 것)를 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지난달, 정기검진을 받았다. MRI검사를 시작으로 다양한 검사가 패키지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6개월마다 건강을 체크해주니 감사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따라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괜찮습니다' 한마디를 기대하며 주사바늘과 기계에 몸을 맡기기 수차례.

'세침검사는 또 뭐지?' 초음파검사를 하다가 예상을 뒤엎는 말에 신경이 곤두섰다. 암투병 4년 차. 이제 안정기에 들만도 하고 더 이상 알아야 할 검사 따윈 없기를 바랐다.

모든 게 허사로 돌아가는 걸까 

조직검사와 비슷한 종류이며, 림프절의 크기가 지난번에 비해 커졌고, 모양이 안 좋아 검사를 해보는 게 좋겠다는 의사의 설명은 간단명료했다. 나는 정신이 아득했다. 조직검사라니. 게다가 수술했던 바로 옆자리 림프절이면, '전이? 재발?' 입에 담고 싶지 않은 용어들이 앞 다투듯 떠올랐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4년 전의 막연함과 사뭇 달랐다. 모르고 부딪혔던 그때와 '암'의 정체를 알아버린 지금이 같을 수는 없었다. 산고를 경험한 산모처럼 불행히도 암에 대한 두려움은 예전보다 더 커져있었다. 그동안 완치를 위해 노력했던 시간이 허사로 끝나는 걸까.

모든 일에 절제라는 양념을 넣어야 했던 날들이 스쳐갔다.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케이크 한 조각 입에 물고 수다를 즐기던 시간들이 사라졌을 때. 장거리 여행이나 지인들의 애경사에도 제외될 때. 관계단절은 물론 새로운 먹거리와 운동, 치료를 위해 나약해지려는 의지를 총동원하며 이전의 삶을 탈바꿈한 지 3년 6개월. 투병이라는 낯선 세계에서 좌충우돌하다 이제사 숨을 쉴 만한 여유가 생기는가 했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외로운 싸움을 다시 시작해야할지 모른다는 상황에 앞이 캄캄했다. 불안감이 커지면서 옆에 있던 딸에게 두서없는 말들을 늘어놓았는데, 첫마디가 '제주에서 한 달 살고 싶다'였다. 만일 결과가 좋지 않으면 쉬면서 글 쓰고 그림 그리며 지내야겠다고 말했다.

그때 알았다.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건강해지면 뭘 하고 싶으세요?"

3년 전, 누군가 물었다. 건강해지고 싶다는 간절함이 전부였던 그때, 나와는 거리가 먼 질문이었다. 이후 가끔씩 자문하긴 했지만 막연했다. 몸이 바닥까지 내려오자 마음도 가라앉아 틈이 없었다. '하면 뭐하나'.

사십 중반에 상담사가 되겠다고 시작한 공부는 석 박사학위를 따는 데까지 십여 년이 걸렸고, 틈틈이 강의도하고 상담일도 하며 경험을 쌓았다. 이 정도면 독립적인 작업실을 꾸려도 될 것 같아 한 걸음 내딛는 순간, 몸에서 작은 포탄이 발견되었다. 유방암이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암과 동행하는 예기치 못한 길에 들어섰다.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 

몸이나 잘 보살피면 그만이지. 모든 게 부질없다는 생각이 깊게 뿌리내리고 있던 어느 날, 지인이 글쓰기를 권했다. 에세이 분야는 육십 평생 단 한 번도 나와 연관 지어 본 적이 없었으므로 하고 싶은 마음보다는 그냥 한번(?)으로 시작했다. 몇 개월 습작하던 중, 에세이 반에 들어 글쓰기를 배우게 되었고, 여차하면 안 해도 된다는 계산도 있었다.

세침검사는 내 삶의 비중을 다시 재단하는 계기로 안내했다. 4년 전 보다 더 힘든 상황으로 돌아가야 한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했을 때,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였다. 벼랑 끝에서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확인했다.

검사결과를 기다리는 6일이 길게 느껴졌다. 초조해서 그런지 몸도 마음도 피곤했다. 그날 담당의사는 진료를 마치고 5시가 넘어서야 전화를 했다.

"괜찮습니다. 6개월 후에 병원에서 봅시다."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자세히 알고 싶지 않았다. 혹시 일말의 다른 말이 들려올까 봐 두렵기도 했다. 일단 6개월은 됐으니까. 그것으로 가슴을 쓸어 내리고 감사했다.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게 된 것만으로 기뻤다. 반복되는 지루한 하루가 평화와 연결되어 있다고 외치고 싶었다.

이제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는 '하고 싶은 일'로 내 곁에 조금 더 깊이 들어왔다. 더 자주 만나고 더 편하게 쓰고 있다. 생각나는 대로 주저리주저리 끄적이고, 펜 하나로 풍경을 그리는 일도 많아졌다.

"별일 없지요?"

'네'라고 답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는 하루다.

덧붙이는 글 | 블로그 및 브런치 게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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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육십부터.. 올해 한살이 된 주부입니다. 글쓰기를 통해 일상이 특별해지는 경험을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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