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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어딘가 남과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서른에야 ADHD라는 병을 처음 알았고, 서른여덟에 성인 ADHD 확진을 받았습니다. 실체를 모르는 병에 대해 고민하는 동안 사람들 각자가 품고 사는 보이지 않는 아픔을 살피게 되었습니다. 많은 아르바이트와 직장을 거친 후 자신에게 맞는 생활을 찾은 지금, 저의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보이지 않는 장애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분들의 삶을 대변할 수는 없지만,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고 손을 흔들어 봅니다.[기자말]
떠오르는 장면 하나. 일개 대학원 석사과정생이던 나는 박사과정생 선배와 강사 선생님들이 계신 연구실에 음식을 나누어 드렸다. 문을 닫기 전 농담이랍시고, 선배를 향해 신나게 외쳤다. "고수레~!" 한순간 선배의 얼굴이 험상궂게 달아오르고 그보다 무시무시한 정적이 지나갔다. 등을 지고 있던 한 강사 선생님이 선배 쪽으로 돌아앉으며 말씀하셨다. "참아." 

'알 만한 애가 왜 저러지?' 나에게 실망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대학 때까지는 엉뚱하고 멍하고 눈치 없는 것이 그저 성격인 줄 알았다. 

하지만 사회생활이 시작되고, 점차 더 복잡한 상황에 놓이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친구와 대화할 때는 물론 상사와 독대한 자리, 알바 첫날 설명을 들을 때, 삼십 명 앞에서 강의할 때에도 머릿속에 안개가 낀 듯 집중할 수 없었는데, 마치 초자연적 힘의 지배를 받는 듯한 기분이었다. 매 순간 뇌를 풀가동하느라 과부하가 걸렸고, 상황을 모면하느라 스릴이 넘쳤다. 생각은 물음표를 무한반복하기 시작했다.

'뭔가 있어. 뭔가 있는데... 대체 그게 뭐냐고...'

정체 모를 나의 한계에 나만의 이름을 붙였다. '유리상자'. 발라드라도 불러줄 것 같은 예쁜 이름이지만 애칭이 아니다. 어느 날 숨이 막혀 주변을 더듬어보니 단단한 유리벽 안에서 살고 있었다. 나의 ADHD(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충동성 장애)는 딱 그런 느낌이었다.

밖이 훤히 비치는데도 진짜 세상에 접촉할 수 없는 괴리감과 이물감, 혼신의 힘을 써도 제자리에 머무는 무력감, 이 안에는 나밖에 없다는 외로움. 만일 신이 나타나 딱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노라 한다면 고민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당장 여기서 꺼내줘요.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런 데 넣었어??"

ADHD를 ADHD라 부르지 못하고

ADHD는 부주의와 과잉행동, 충동성을 특징으로 하는 신경발달학적 질환이다. 아동기에 시작되어 흔히 청소년기와 성인기까지 지속된다. 병증을 속속들이 꿰뚫고 있는 지금은 안다. 대학원 선배를 일시에 귀신이나 야생동물, 곤충으로 만든 발언은 '자기만의 맥락'과 '충동성'의 콤비플레이가 낳은, 그야말로 ADHD다운 실언이었다는 것을.

불과 30년 전만 해도 ADHD라는 병명은 없었다. 병 자체가 현대에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니고, 특성을 기록한 문헌은 많았지만 병의 이름이 없었던 것이다. 성인 ADHD는 미국의 정신과 의사 에드워드 할로웰이 1995년 출간한 책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통해 비로소 널리 알려졌고, 우리나라에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에 들어서다.

나에게 정보가 닿은 것은 8년 전, 서른 즈음이었다. 그러니 20대의 내가 아무리 머릿속에 연구소를 차리고 눈물과 글쓰기로 그 정체를 탐구해 봐야 성과가 나올 리 없었다. 

인터넷에서 처음으로 'ADHD'라는 병의 증상을 읽은 순간, 그리고 '에이앱'(성인 ADHD 환자 커뮤니티)을 알게 된 순간 나는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를 왜 외쳤는지 단박에 이해했다. 정말 내 괴로움에 이름이 있었다니! 소리를 꽥 지르는 대신 입을 틀어막았다. 아무리 해도 그림이 나오지 않던 모든 퍼즐 조각이 한 번에 맞춰졌다.

'나 같은 사람들이 또 있다는 거지. 어쩌면 앞으론 안 힘들게 살 수 있을지도 몰라.' 안도감, 반가움, 희망감에 천장까지 폴짝 뛰고 싶었다. 인생에서 가장 중대한 순간이었다.
 
한창 힘들 때는 단 한 줄의 정보가 간절했는데, 몇 년 전부터 성인 ADHD에 대한 기사, 출판물 등이 많아져 감개무량하다. 올해는 성인 ADHD 환자들의 에세이가 출간되었고, ADHD 진단에서의 젠더 편향 문제를 다루는 등 논의의 폭도 넓어졌다.
▲ 성인 ADHD 관련 서적들 한창 힘들 때는 단 한 줄의 정보가 간절했는데, 몇 년 전부터 성인 ADHD에 대한 기사, 출판물 등이 많아져 감개무량하다. 올해는 성인 ADHD 환자들의 에세이가 출간되었고, ADHD 진단에서의 젠더 편향 문제를 다루는 등 논의의 폭도 넓어졌다.
ⓒ 김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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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안다는 것의 의미

'ADHD'라는 단어를 쓸 때 주변 사람들은 종종 걱정했다. 확진받기 전에는 내가 스스로를 비정상의 범주에 넣는 것에 거부 반응을 보였고, 확진 후에는 그 명칭에 얽매여 자신의 가능성을 제한할까 봐 염려했던 것 같다.

그러나 정신질환의 병명을 알고 증상과 치료법을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ADHD라는 이름을 10년만 일찍 접했더라면 내 몸은 지금보다 훨씬 덜 손상되었을 것이다. 진로를 택할 때 나에게 어려운 과업과 비교적 쉬운 과업을 구분했을 것이고, 구멍 난 순발력과 주의력을 메우기 위해 일 중독이 되기보다 약물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언젠가는 나아지리라 기대하며 소진한 것들을 생각하면 무척 아쉽다.

병명을 아는 것 자체가 마음을 보호하는 길이기도 하다. 고통은 너무도 주관적이고, 정신과에 가서 그것을 수치화하기 전까지는 고통받는 자신을 끝없이 평가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자아는 바람 빠지는 행사 풍선처럼 서서히 쪼그라든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 일상인 ADHD 환자는 주변 반응을 살피며 부정적 자아상을 굳히기 쉽다.

나 역시 그랬다. 똑같은 실수와 어이없는 실언을 반복하고 중요한 일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내가 이타심이 없어서, 생각이 짧아서, 노력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했다. 매일 그날의 나를 분석하고 채찍질한 뒤 새로운 다짐을 했다. 하지만 나아지는 것이 없어 자존감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환자라는 걸 알았다면 적어도 "너는 왜 발전을 모르냐?"라며 자신의 정수리로 두더지잡기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병이 나는 아니다, 하지만 병은 나를 알게 한다

돌아보면 병을 모를 때 가장 절실했던 것은 안정적이고 일관된 '자아정체감'이었다. 나는 껍데기 없는 갑각류만큼이나 상처에 취약했는데, '왜 내 생각과 행동은 남들과 다를까'라며 나의 존재에 끝없이 혼란을 느꼈기 때문이다.

에세이집 <나는 오늘 나에게 ADHD라는 이름을 주었다>에서 임상심리학자이자 ADHD 환자인 신지수 작가는 이렇게 표현했다. '부정적인 자기상보다 불명확한 정체감이 더 문제다'. ADHD 여성은 자신에 관한 정보의 변동성이 많다 보니 사고가 일관적이지 못하거나 모순됨으로써 자아정체성 형성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나는 병명을 찾음으로써 오히려 병증과 나를 동일시하지 않게 됐다. 나의 특성 중 ADHD 증상의 영향을 받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럼에도 증상에 가리지 않는 나의 개성과 가치관, 재능이 무엇인지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힘들어하면서도 잘 버텨온 자신을 대견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됐다. 이런 마음자세는 물론 질환과 관계없이 필요하지만, 일상이 증상에 무너지지 않게 쫓기는 도중에 정신력만으로 갖추기는 어려운 자세였다.
 
밖이 훤히 비치는데도 진짜 세상에 접촉할 수 없는 괴리감과 이물감, 혼신의 힘을 써도 제자리에 머무는 무력감, 이 안에는 나밖에 없다는 외로움. 그간 내가 느낀 감정이었다.
 밖이 훤히 비치는데도 진짜 세상에 접촉할 수 없는 괴리감과 이물감, 혼신의 힘을 써도 제자리에 머무는 무력감, 이 안에는 나밖에 없다는 외로움. 그간 내가 느낀 감정이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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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경우는 ADHD라는 이름이 긴긴 터널 속 한 줄기 빛이었지만, 반대로 정신질환자라는 사실 때문에 우울로 빠져드는 경우도 있다. 조심스레 이런 생각을 내밀어 본다. 우리는 불편이 지속되는 와중에도 여기까지 살아냈다. 병은 평온한 일상을 지속적으로 방해하기 때문에 병으로 구분되고, 병명은 '현 상태를 정확히 인지하는 수단'이다. 중요한 것은 비정상과 정상을 깨끗이 구분짓거나 모든 불편에 라벨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일상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거 되게 아프잖아요

얼마 전 한 영화를 보고 묘한 방식으로 슬퍼졌다. 영화 속 상황을 이해할 수 없어 머릿속으로 '뭐지?'를 연발하며 보았는데, 이야기는 갈수록 어리둥절하게 꼬여 가더니 가장 꼬여 있을 때 끝이 나고 말았다. 나는 분명 영화를 이해 못 했다. 그런데도 인물의 감정에 이입해 깊은 슬픔을 느꼈다. 한 가지는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영화는 조현병 환자의 머릿속에서 일어난 일을 이야기로 만든 것이었다. 

"나도 그거 알거든요.. 그거.. 되게 아프잖아요."

마지막 장면에서 남자의 말에 여자가 서러운 울음을 터뜨릴 때, 내 마음에 오래도록 얽혀온 감정들이 진동했다. 저마다의 세계를 똑같이 겪고 이해할 수는 없어도 누군가 그렇게 말해준다면 어떤 아픔들은 녹아서 흩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몸의 고통처럼 마음의 고통 역시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실재한다. 그리고 아픔은 저마다 그럴 만한 원인이 있다. 설령 당장 마땅한 이름을 찾을 수 없더라도 말이다. '나만 그런 것 같은' 우리 모두에게 외로움은 어쩌면 기본값일 것이다. 그래도 바란다. 쉽게 열리지 않는 유리상자 안에 당신과 외로움 둘만 놓여 있는 것이 아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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