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9.16 09:30최종 업데이트 21.09.16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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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방송된 < KBS 환경스페셜 >의 한 장면 ⓒ KBS


지난 9일 KBS2 <환경스페셜>은 농장농물에 대해 다룬 다큐 '우린 왜 행복하면 안 되지?'를 방송했다. 어두컴컴한 농장으로 동물권 활동가들이 들어서고 스톨(stall) 안에 간신히 몸을 누인 엄마 돼지가 보인다. 아기 돼지들은 옆으로 누운 엄마 돼지의 젖을 정신없이 빨고 있다. 고개를 돌리니 핏기가 없는 누런 돼지들이 죽은 채 물건처럼 쌓여 있다. 흡사 '생지옥' 같다.

스톨은 일정 기간 동안 임신한 돼지를 가두어 사육하는 가로 약 0.7m, 세로 약 2.2m 정도의 틀이다. 이 공간은 돼지가 간신히 누울 수 있을 정도로, 자유롭게 몸을 돌리거나 움직일 수 없는 환경이다. 개정된 축산법 시행령에 따르면, 2020년 1월 1일부터 임신돈의 경우 스톨이 아닌 군사(무리 기르기)공간에서 사육해야 한다. 하지만 스톨 사육방식을 원천 금지한 것은 아니다. 6주까지는 스톨 사육이 허용되며 기존에 허가를 받아 스톨을 사용하던 돼지 사육업자의 경우, 10년간 유예를 둬 그동안 군사공간 등의 기준을 갖추도록 했다.


다큐멘터리는 공장식 축산 농장의 스톨을 비롯해 새끼 돼지 꼬리와 이빨 자르기, 밀집 사육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행복해 보이는 동물복지농장 돼지, 그러나

이후 다큐멘터리 카메라는 동물복지농장을 비춘다. 초반부 공장식 농장에서 목격한 충격적인 장면 때문인지, 동물복지농장의 돼지는 행복해 보인다.

동물복지농장은 사는 동안만이라도 고통의 양을 줄이고 동물 본연의 욕구를 조금이나마 채우며 살아갈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그럼에도 논쟁의 소지가 많은 대안이다.

첫째, 동물복지제도 기준은 너무나도 허술하다. 자유 방목, 단미 금지 등 그럴듯한 단어들이 조항에 포함되어 있지만, 이를 조금만 유심히 들여다보면 실효성은 없고 선언적인 조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축사와 방목장을 오가는 것은 '자유 방목'이라 할 수 없고, 사육사가 '꼬리 물기로 인해 피해가 발생한다'고 판단하면 꼬리를 자를 수도 있다는 기준을 둔 곳에서의 '단미 금지'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또 돼지 입장에서가 아닌 사람 입장에서 정한 소음 기준이나 암모니아 농도 기준은 돼지들에게 전혀 해롭지 않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관련기사 : 동물복지라는 말의 함정 http://omn.kr/1qtps).

둘째, 허례허식의 동물복지제도가 잘 운영되고 관리된다 하더라도, 결국 고기가 되기 위해 죽임 당한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이는 동물복지 농장 홍보는 활발한 반면 동물복지 도축장 홍보는 꺼려하는 이유와 맞닿아 있다. 다큐멘터리에서도 사육 환경에 대해서만 나온다. 하지만 동물복지를 절차적으로 엄밀하게 검증해 인증하려면 크게 세 가지 과정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육, 운송, 도축 과정이다.

사육환경에 한해서만 동물복지제도를 평가해본다고 하더라도, 성과는 미미한 편이다. 2018년 기준 전체 농장 대비 동물복지인증 농장 비율은 산란계 17.9%, 육계 6.1%, 양돈 0.3%, 젖소 0.2%다. 산란계를 제외한 축종에서는 매우 낮은 수치다. 특히 사육환경만 충족하면 동물복지 인증 마크를 획득할 수 있다는 점(2021년 9월 기준)은, 진정한 동물복지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운송과 도축 부문의 성과는 더욱 변변치 못하다. 동물복지 인증 운송차량은 포유류(소, 돼지) 20대, 가금류(닭) 91대로 총 111대(0.5%)에 불과하고, 동물복지 인증 도축장은 포유류 3개소, 가금류 2개소로 총 5개소(3.6%)에 불과하다.
 

통계 기준: 전국 가축운반 차량 대수(‘19.5.20.), 도축장 개수(’21.3.12.), 동물복지인증 운송차량, 도축장 개수(‘18.12.31.) ⓒ 자료: 농림축산검역본부, 제작: 이현우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동물복지제도는 경제성 측면에서 비현실적이다. 동물복지 인증 사육환경을 조성하려면 일단 사육환경의 밀도를 낮춰야 하고 사육기간도 길어지기 때문에 축산물 가격이 당연히 오를 수밖에 없다.

반면 소비자들은 여전히 값싼 고기를 찾는다. <환경스페셜>에 출연한 강혜진 동물복지 연구원이 "정부가 나서서 축산 동물 사육환경의 현실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하고, 소비자는 1.5배의 비용을 더 지불하더라도 동물복지 축산물을 구입하는 게 옳지 않나 싶어요"라고 말한 것처럼 동물복지제도의 성패는 소비자의 주머니 사정과 소비 의지에 달려 있다.

죽을 운명의 농장동물 앞에서 행복을 논하다

어쩌면 동물복지는 인간들 마음 한편에 자리 잡은 불편한 돌덩이를 꺼내주는 면죄부 같은 단어가 아닐까. '농장동물'의 농장은 빼고 '동물복지'의 복지도 빼고서 '동물'답게 살도록 할 수는 없을까. 

현재 동물복지제도 논의는 축산업계-전문가-정부 차원에서만 이뤄진다. 일반 시민은 소비자로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주체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주목할 건, 당사자인 농장동물의 목소리는 없다는 점이다. 전문가 집단이 동물의 입장을 최대한 대변한다고 하지만 '죽음'을 전제로 동물의 입장을 얼마나 대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누군가는 동물이 대수냐며 '먹고 먹히는 건 자연의 섭리'라고 냉소하며 채널을 돌렸을 것이다. 누군가는 1.5배 비싸더라도 동물복지 축산물을 먹어야겠다고 결심하는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동물복지는 허울뿐이라며 육식 문화를 강하게 비판할 것이다.  

동물의 권리와 복지가 지상파를 통해 담론장에 들어섰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진보했다고 할 수 있겠다. 필자는 동물복지농장을 운영하는 농장주, 동물복지 축산물을 구입하겠다는 소비자를 응원하고 지지하면서도 동물복지제도를 바라볼 때면 혼란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결국 도살될 농장동물들을 바라보며 동물의 행복을 논하는 상황이 괴롭기 때문이다.

'동물복지'는 동물이 어떻게 우리 사회에서 탈동물화(de-animalized)되고 상품화되었는지 드러내는 상징적인 단어다. 동물복지제도는 거쳐가는 다리여야만 한다. 과정이지, 결론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고기가 되기 위해 태어나는 동물을 두고 복지를 논한다는 것, 이 얼마나 기괴한 일인가. 우리는 어쩌다 공장식 축산농장 그리고 동물복지농장 외에는 상상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걸까.
 

지난 9일 방송된 < KBS 환경스페셜 >의 한 장면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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