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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치 고갯마루 돌장승 슬치 고갯마루 삼거리에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 돌장승이고, 솟대도 돌기둥이다. 석등슬치로 도로 이름과 어울린다.
▲ 슬치 고갯마루 돌장승 슬치 고갯마루 삼거리에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 돌장승이고, 솟대도 돌기둥이다. 석등슬치로 도로 이름과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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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는 수계(水界)를 바꾼다. 작은 고개에서는 개울의 영역이 나뉘고, 큰 고개에서는 강의 영역이 나뉜다. 전북 완주군 상관면 용암리와 임실군 관촌면 슬치리의 접경에서 호남정맥이 산맥의 허리를 낮추어 슬치 고갯길을 열어준다. 호남정맥의 슬치는 북쪽 만경강 유역과 남쪽 섬진강 유역의 수분령(水分嶺)이 된다. 백로(白露) 절기를 지나 풀잎에 이슬이 많이 맺힌 9월 12일 일요일 아침에 호남정맥의 슬치 고개와 전주천 발원지를 찾아갔다.

호남정맥의 슬치를 걸어 넘던 옛 고갯길은 흔적이 없고, 17번 국도가 힘차게 고개를 넘는다. 현대의 교통수단은 속도가 빠르고 수송량이 많지만, 고갯길이 물매가 가파르면 숙명적으로 취약하다. 그래서 순천완주 고속도로(슬치터널: 완주 방향 1189m, 순천 방향 1172m)와 전라선 철도(슬치터널: 6128m)는 호남정맥을 물매가 거의 없이 평탄하게 터널로 통과한다.

호남정맥 슬치의 고갯길을 넘는 17번 국도는 도로 확장이나 선형 개량 공사 때마다 고개를 깎아 물매를 완화하였다. 현재의 슬치 고갯마루 신호등이 있는 곳에서 북쪽 전주 방향으로 140m의 위치가 원래의 슬치 정상이다. 그러나 옛 고갯마루가 현재의 고갯마루보다 2m 정도 낮다. 옛 고갯마루가 상당한 높이가 깎이고 또 깎였다. 옛 고갯마루 지점의 도로변 양쪽에 완주군 상관면과 임실군 관촌면의 행정구역 표지판이 있다.
 
슬치 고갯마루 사진 중앙에 완주군 경계 표지판이 보이는 곳이 원래 고갯마루였다.
▲ 슬치 고갯마루 사진 중앙에 완주군 경계 표지판이 보이는 곳이 원래 고갯마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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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고갯마루가 낮아지고 임실 쪽으로 옮겨진 새로운 고갯마루가 생겨서, 만경강 수계가 140m 길어지고 섬진강 수계가 그만큼 짧아졌다. 수천만 년에 걸쳐 변화될 자연의 지형을 도로 공사는 거침없이 바꾸어버렸다. 호남정맥의 산마루를 잇는 마루금이 이 고개 정상 부근에서 바뀌었으니, 산맥이 바뀌고 지형의 등고선도 달라졌다는 의미다. 그러나 호남정맥이 산맥으로서의 정체성은 여전하고 산맥으로서의 위치에너지도 당당하다.

슬치 고개 부근에서 전주천이 발원한다. 슬치 고개는 삼거리다. 임실군 신덕면 오궁리 방향으로 석등슬치로(745번 도로)를 약 2km 정도 가면 동물이동통로 터널이 나온다. 이곳에서 좌측 협곡으로 들어가면 전주천 발원지가 있는데, 폭은 약 50cm, 깊이는 20cm의 작은 물웅덩이다. 여기에서 만경강 수계의 으뜸 하천인 41.5㎞ 길이의 전주천이 발원한다.
 
실치 동물이동통로 전주천 발원지를 찾아가는 길목의 석등슬치로에 있는 동물이동통로. 임도로도 활용되고 있다.
▲ 실치 동물이동통로 전주천 발원지를 찾아가는 길목의 석등슬치로에 있는 동물이동통로. 임도로도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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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천 발원지를 찾아가는 길목의 동물이동통로는 도로를 교차하며 높이가 20여 미터로 거대한 성벽 같다. 이 동물이동통로는 호남정맥의 마루금이 되며 임도(林道)역할도 한다. 전주천 발원지 방향으로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인적 끊긴 산길은 이슬 함초롬한 잡초가 무성하고 질긴 환삼덩굴이 걸음을 자주 멈추게 한다. 여름 동안 내린 폭우로 산길 곳곳이 함정처럼 패었고 무성한 잡초로 은폐되어 위험하기도 하여 전주천 발원지까지 갈 수 없었다.

전주천은 이 지역의 역사와 문화, 수많은 생명의 원천이 되었다. 전주천은 백성들이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향하여 흐르며 정여립, 치명자산, 동학혁명 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전주천이 발원하여 흐르면 바로 가파른 협곡에 조선 후기에 만마관(萬馬關)이 있었다. 만마관은 험애(險隘)인 슬치 골짜기를 지키는 관문이었다.
 
전주천 발원지 산기슭 슬치 가까운 호남정맥의 산기슭에서 만경강의 지류인 전주천이 발원한다.
▲ 전주천 발원지 산기슭 슬치 가까운 호남정맥의 산기슭에서 만경강의 지류인 전주천이 발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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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천이 흘러내리는 완주군 상관면 죽림리에는 울창한 편백 숲이 있다. 죽림(竹林) 지명은 죽림칠현(竹林七賢)이 연상된다. 죽림의 편백 숲은 지명 같은 대나무 숲은 아닐지라도, 현대 도시 생활의 일상사에 지친 몸과 마음을 휴식하며 재충전하기에 충분한 명소다.

전주천을 마을 앞 냇가로 바라보는 완주군 상관면 월암마을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사상가인 정여립의 생가터다. 조선 시대에 평등한 세상을 꿈꾼 그는 진안의 죽도(竹島)를 중심으로 신분의 차별을 철폐한 모임인 대동계(大同契)를 펼쳤다. 그의 천하공물론(天下公物論)은 시대를 앞서가는 혁명적 사상으로 봉건사회를 극복하는 공화정의 가능성까지 열고 있었다.

1589년 기축옥사로 정여립을 비롯하여 수많은 인재와 백성들이 함께 희생되었다. 정여립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상관면 월암마을 집터는 역적이 나온 집터라며 파헤친 후 숯불로 지져 그 맥을 끊었다. 마을 앞을 흐르는 전주천 물갈래를 끌어들여 그의 생가터를 깊은 늪으로 만들고 냇물이 휘돌아 가게 하였다고 한다.

전주천이 전주 시내로 흘러들면서, 승암산(중바위산) 아래를 지난다. 승암산은 치명자산으로 더 많이 불리고 있다. 이 치명자산에는 호남에 처음 천주교의 복음을 전하고 선교사 영입과 서양 선진 문화 수용을 하다가, 1801년(순조 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 유항검과 가족 7분이 모셔져 있다. 이분들은 당시에 전주 남문 밖(현 전동성당 위치), 전주 감옥, 숲정이 등에서 순교하였다.

전주천이 전주 남부시장에 이르면, 전주 천변에 초록바위가 있다. 이 초록바위는 1886년 병인박해 이후 많은 천주교인의 순교지로서 평등과 박애를 지향하는 성스러운 유적지다. 이곳은 또한 동학혁명의 지도자 김개남의 처형지다. 1894년 12월 초에 전라감사가 김개남을 서울로 압송하는 도중에 이곳에서 처형한다. 심문도 거치지 않은 이와 같은 갑작스러운 처형은 그의 탈출에 대한 염려와 그에게 원한을 품은 양반들의 처형 요구가 작용했다고 하는데 김개남의 큰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전주천이 다가산으로 접근하면서 용머리고개 아래를 지난다. 1894년 갑오년 4월에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지향하는 동학농민군이 이 고개를 넘어 전주성 서문을 부수고 전주성을 점령하였다. 다음날 관군이 용머리고개에 도착하였으며, 성안의 농민군과 용머리고개와 완산칠봉 일대에 진을 친 관군 사이에 전주천을 사이에 두고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졌다.

전주천 남부시장은 예로부터 장삼이사 평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여름에는 새벽 밭에서 채소 다발을 장만하여 부인네들이 머리에 이고 나왔다. 겨울에는 장정들이 땔감인 장작을 지게에 지고 손발이 꽁꽁 얼어서 도착했다. 장터의 국밥집은 큰 솥단지에 설설 끓는 뜨끈한 정이 새벽을 한나절처럼 헤치고 온 부인네와 장정들의 허기와 고단함을 달래주었다. 콩나물국에 식은 밥을 덜어 넣으면 꽁꽁 언 몸이 뜨거운 국물에 풀어져 녹았다.

전주천은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향하여 흐르고 있다. 한옥마을 경기전 전동성당이 전주천을 마주하고 남부시장과 공존한다. 전주비빔밥 국밥이 전주 한정식이 평등하게 전주 음식을 대표한다. 막걸리 한 주전자를 주문하면 열 몇 가지의 안주가 더불어 나오는 푸진 인심이 전주천의 물결처럼 흐른다.

전주천은 전주에 생명과 활력을 공급한다. 흥과 멋, 신명, 전주의 멋과 맛이, 전주천 생명의 물길을 따라 출렁이고 있다. 힘차게 뻗어가는 호남정맥의 슬치 골짜기에서 발원한 전주천은 항상 새롭고 신명 나는 세상을 꿈꾸며 오늘도 만마관이 위치하였던 험애(險隘)를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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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임실군 문화관광해설사] 향토의 역사 문화 자연에서 사실을 확인하여 새롭게 인식하고 의미와 가치를 찾아서 우리 지역의 가까운 고갯길을 걸으며 기사를 엮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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