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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일회용품을 쓰면 가벼운 죄책감이 들었다. 연례 행사처럼 세계 곳곳의 산불과 홍수 뉴스를 접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처럼 탄소를 마구 배출해대다가는 인류 문명은 존속 가능하지 않다. 이건 나의 의견이 아니라 과학계의 정설에 가깝다.

한창 관련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고, 책을 읽을 무렵에는 '원시인' 생활이라도 불사할 듯 의지가 불타올랐다. 그레타 툰베리가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고, 트럼프 대통령 시절 미국이 파리 기후협약에서 탈퇴하는 등 극적인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깜빡한 에코백... 느슨해졌나

그때만 해도 텀블러를 챙겨 카페에 가거나 다회용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면 꽤 뿌듯했다. 실행 횟수가 적어도, 어쩌다 사정이 허락할 때만 실천해도 멋지다는 소리를 들었고, 꼭 의식 있는 사람이 된 양 어깨가 올라갔다. 착각이라고 해도 나름의 소소한 심리적 보상이 있었다. 그러나 요사이 나는 느슨해졌다. 

얼마 전에는 편의점에 캔 맥주를 사러 갔다가 식탁에 에코백을 두고 온 걸 알았다. 휴대폰을 충전기에서 뺀다는 게 에코백을 두고 폰만 챙긴 것이다. 열성 환경맨이었다면 계산을 포기하고 집에 가는 선택을 했겠지만, 그냥 어정쩡한 자세로 비닐봉지를 받아들었다. 부주의를 탓하며, 다음에는 꼭 잊지 말고 가방을 챙겨야겠다고 다짐하는데 어쩐지 뒷맛이 개운하지 않았다. 

어느새 이렇게 긴장이 풀려버린 걸까. 그런데도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자기 합리화에 가까운 생각이 자꾸 들었다. 어떻게 사람이 매 순간 완벽해? 살다 보면 적당히 타협하는 거지, 같은 달콤한 말들이 떠올랐다. 원론적으로는 동의할 수 있지만,  하나 둘, 양보하다 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지는 말이기도 하다. 

사실 최근 내가 의기소침해진 배경에는 역설적이게도 높아진 환경의식 탓도 있다. 텀블러에 커피를 담아가는 모습이 흔하다. 대기 오염이 싫어서 디젤 차량을 선택하지 않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으며, 고기 맛과 매우 흡사한 대체육 시장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게 커졌다. 

SNS에 가면 한층 놀라운 소식을 접할 수 있다. 어떤 이는 매일 플라스틱 배출 기록을 남긴다. 휴지 사용량을 줄이려 손수건을 빨아 쓰고, 개인용 스테인리스 빨대를 휴대하여 일회용 빨대를 완벽히 대체한다. 주말마다 철새 도래지를 방문해 쓰레기를 줍고, 속초 영랑호 개발을 반대하는 메시지를 꾸준히 전파하는 사람도 있다. 

긍정적인 변화이지만 이런 게시물을 볼 때마다 위축되는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이렇게나 훌륭한 분들이 많은데, 과연 나 정도의 사람이 평범한 수준의 실천을 하고 기록으로 남길 만한 자격이 있는가 하고. 마치 헬스장에서 몸 관리가 잘된 사람을 보면 분발하기는커녕 운동을 놓고 싶어지는 이상한 심리와 비슷하다. 

이럴 때는 어떤 계기를 만들어서 부정적인 감정의 수렁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사람이 100을 한다고 해서 나의 10이 쓸모없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나에게는 슬럼프를 이겨내는 단순한 방법이 있다. 사람이 많은 곳에 가서 쓰레기를 줍는 것이다. 자주 다니는 동네 산책 코스 말고, 새로운 장소에서 실행하면 효과가 배가된다. 

동해 묵호항에서 쓰레기 줍기를
 
묵호항에서 쓰레기 줍기
 묵호항에서 쓰레기 줍기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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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은 동해시 묵호항을 찾았다. 최근 항구와 면한 도째비골 근처에 해랑전망대와 스카이밸리가 생겼다. 지역 명소로 소개되어 주말이면 사람들로 북적인다. 우리가 거주하는 동해시 내에 있지만 스카이밸리와 해랑전망대를 방문한 건 처음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 동기 부여를 하기 위해서 낯선 장소를 찾았다.

이번 쓰레기 줍기의 특이점은 전용 집게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어른용 두 개, 아이용 두 개. 지금까지는 산책길에 쓰레기를 주울 때 일회용 비닐장갑을 썼다. 그러나 손에 땀이 차기도 하고, 모델하우스 사은품으로 받은 비닐장갑이 떨어지기도 해서 큰맘 먹고 집게를 구입했다. 

오늘의 목표량은 10리터 종량제 봉투 두 장이다. 5세, 7세 아이들을 동반한 터라 대용량 봉투를 채우는 건 무리다. 바로 옆에서 푸른 파도가 넘실 거리고 있으니 상쾌한 기분으로 작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곳곳에 쓰레기 수거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시다 버린 음료 컵이 줄줄이 놓여 있었다. 난간은 쓰레기 음료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담배꽁초를 담은 것부터 얼음이 절반도 녹지 않은 최신의 컵까지 다양하다. 환경미화원 분들이 매일 청소를 하는 장소임에도 걸음을 떼기 무섭게 새로운 쓰레기가 등장한다. 말끔한 상태를 견디지 못하는 어떤 사람이 강박적으로 빈 곳을 찾아 오염시키는 장면이 상상될 정도다. 

액체가 찰랑거리는 일회용 컵은 참으로 난감하다. 봉투에 바로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손을 더럽히지 않으려 집게를 샀건만 무소용이다. 집게는 플라스틱 컵 뚜껑을 분리하는데 적당하지 않다. 결국 손을 사용하고 만다. 정체불명의 더러운 액체가 손등에 튀어 오른다. 

이미 시작한 이상 내 힘으로 끝장을 봐야 한다. 처음에는 아드레날린이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며 화가 치민다. 그러나 이런 경험이 누적되다 보면 어느샌가 깨달음에 의한 평안이 찾아온다. 그 깨달음이란 이 세상에는 여전히 환경을 생각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단순한 결론이다. 

깨달음이 왔다고 해서 즐거운 일들만 펼쳐지는 건 아니다. 우리 가족이 집게로 쓰레기를 줍는 동안 바로 옆에 있던 흡연자는 꽁초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유유히 자리를 떴다. 그가 있던 자리와 쓰레기통 사이의 거리는 불과 십 미터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 네 가족이 집게를 쥐고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으면, 기특하게 바라봐 주시는 분들도 있다. 박수를 치며 "좋은 일 하십니다"하고 격려의 말씀을 건네는가 하면, 본인도 길가에 떨어진 포장지를 줍기도 한다. 그러면 나의 작은 실천이 누군가에게 단 한 번이라도 변화의 계기가 될지 모르겠다는 희망이 생긴다. 이건 돈으로 환산하기 힘든 아주 근사한 경험이다. 

삼십분 만에 종량제봉투 '가득'
 
내용물을 비우지 않은 채 버려진 쓰레기
 내용물을 비우지 않은 채 버려진 쓰레기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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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분 만에 종량제 봉투가 가득 찼다. 쓰레기를 줍기만 했다면 더 빨리 끝날 수도 있었지만, 내용물을 비우고 뚜껑과 컵을 분류하느라 시간이 걸렸다. 쓰레기 줍기에 동행한 아이들은 손이 아프다고 했다. 젓가락질도 못하는 다섯 살에게 집게는 다소 무리다. 손이 아플 것이다. 그러나 젓가락질에 익숙해지려면 훈련이 필요하듯, 집게질도 점차 능숙해지지 않을까.

사실 삼십 분짜리 봉사활동은 정말 별 것 아니다. 정기적으로 봉사하시는 분들을 떠올려보면 우리 가족의 행동은 유희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가의 일부를 공동체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사용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우리는 만족감을 느꼈다. 이 충만한 감정은 기타 활동으로 대체하기 어렵다.

주말에 쓰레기를 한 번 줍고 나면 가슴 속에 의지의 태양 같은 것이 생겨난다. 이 힘으로 나는 분리수거를 꼼꼼히 할 수 있고,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며, 더 많이 걸을 수 있다. 이건 어디까지나 우리 가족의 방식이므로 다른 분들은 취향과 제반 여건에 따라 활동을 달리 할 수 있다. 용기내 캠페인, 환경단체 기부 등 그 어떤 방식이라도 좋다. 실천 의욕을 키우고, 동기 부여를 할 수 있다면 그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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