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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냥 조용히 입 꾹 다물고 살면 아무런 탈이 없거든요. 우리는 눈으로 드러나는 사람들이 아니니까요. 눈이라는 게 참 한계가 명확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바이러스는 아주 작고 작아서 맨눈으로는 볼 수 없잖아요. 집마다 현미경이 있는 게 아니니까, 그런 건 상급 종합병원이나 어디 연구소에 가야 볼 수가 있는 거니까.

나는 입을 꾹 다물고 그저 소리만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게 조심하면 되겠구나. 그럼 뭐 별일 없겠지. 다물어야 할 입도 내 입이니까,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으니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면 아무도 내게 바이러스가 있는지 모르잖아요.

그런데 그걸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좋지 않은 일이 찾아왔어요. 사실 제가 직접 말한 것도 아니었어요. 의사들은 내가 '그걸' 가지고 있는지 알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저는 의사를 믿기로 했어요.

흰 가운과 유명한 대학교 졸업장, 동문회에서 전달해 준 상패, 인체 모형 같은 것들이 놓인 진료실을 보니 좀 믿음이 가는 것 같기도 하고. (의사에게 믿음을 안 가져봤자 저만 손해지요.) 그래서 '아직 괜찮아요'라는 말을 덜컥 믿어버렸죠. 그래도 그땐 참 마음이 편했는데.

보통 일은 아닌 '엉엉'

아는 사람이 소개해준 병원에 가지 말 걸 그랬나 봐요. 샤워를 할 때나 밤에 잠이 안 올 때, 항문 주변에 몽글몽글 만져지는 살덩어리들은 참고 견디며 가지고 살기에는 정말 신경 쓰였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말을 듣고 다른 병원에 한 번 가보기로 했어요.

평소 가던 병원처럼 으리으리한 곳은 아니었죠. 의사는 누워있는 제 항문을 이리저리 보고 손가락을 넣어서 살펴봤어요. 그리고 밖에서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진료실 안으로 들어간 제게 의사는 말했어요. "이게 이렇게 될 때까지 뭐 했어요?" 나는 할 말이 없었어요. 그냥 정말로 아무 생각이 안 들어서 할 말을 찾지 못했죠.

의사는 그냥 놔두면 위험해질 수 있으니 최대한 빠르게 수술 날짜를 잡아준다고 했어요. 병원을 나오고 나서야 내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확신이 들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잘 없는 골목으로 재빨리 들어가서 '엉엉'하고 울었답니다. 다 큰 어른이 벌건 대낮에 골목에서 '엉엉'하고 운다는 건 보통 일은 아닌 거죠.

그냥 다른 병원 가라고 하지. 참고 기다렸더라면 그 의사는 언제쯤 수술을 해줬을까요? 가끔은 가보지 않은 미래가 궁금해져요. 언젠가는 결국 '엉엉'하고 울었을 것 같지만요.

저는 어릴 때는 많이 울던 어린이였어요. '왜 형은 자전거 사줬는데 나는 안 사줘?', '왜 형은 용돈이 더 많아야 해?', '왜 맛있는 건 형 먼저 줘?', '왜 형이 시키면 나는 해야 돼?' 같은 게 중요한 이유였죠. 이유는 항상 간단했어요. 형은 형이니까요.

그러다 점차 나이를 먹으면서 그런 일들은 점점 무덤덤해져 갔고, 울어봤자 득 될 것도 없으니까 점점 울지 않게 됐어요. 그러니까 저는 울 때가 지난 '의젓한' 어른이 된 거죠. 야호! 이젠 '어른이 되려면 참는 법부터 배워라', '운다고 해결되는 건 없어' 같은 말을 쓸 수 있게 되었잖아요. 그래서 저는 그 사실이 너무 기뻤답니다.

또 그렇게 잘 참고 살았던 덕분일까요? 처음 해본 사회생활에서 종종 칭찬을 듣기도 했어요. '쟤는 군말이 없어서 좋다', '시키면 불평 없이 그냥 한다' 같은 거요. 저는 불평을 쏟아내는 사람들이 이상했어요. 세상에 무슨 불만이 그렇게 많담? 제가 자주 가던 종로와 강남에는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사연들은 충분히 이해가 갔어요. 부당한 대우들. 저런다고 해결되는 게 있을까. 108일째 시위를 하는 사람도 있었지요. '그쯤 되면 소용없는 일이 아닐까요. 세상엔 작은 사람들도 있고, 작은 톱니는 작은 톱니의 일을 하는 게 아닐까요'라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참고 기다리면 좋은 세상이 올 거예요'라고도 작게 덧붙여서요.

나는 '엉엉'하고 울어본 사람

개인적인 경험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엉엉'하고 우는 건 어떤 큰 힘을 촉발 시킵니다. 예를 들면 잘 참고 있던 저 같은 사람이 '농성'이란 곳에 참여하게 만드는 힘이지요.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2021 평등의 이어달리기 온라인 농성'에 함께 했을 때 첫 5분간은 솔직히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았지만, 거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열 번쯤 '엉엉'했을 사람들이란 생각에 마음이 편안해지더군요.

저는 거기서 물어봤습니다. 이 차별금지법이라는 게 저를 '엉엉'하게 만든 사람들을 혼내 줄 수 있냐고요. 아쉽게도 물리적으로 혼내줄 수 있는 건 아니었어요. 대신 그런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알려줄 수 있다고 했어요. 누군가를 '엉엉'하게 만드는 건 안 되는 일이라고요. 네, 사람은 모를 수도 있지요. 저도 사실 몰랐으니까요.

다들 아직 모르는 거구나, 그래서 다른 사람을 '엉엉'하게 만드는 게 상처를 준다는 걸 모르는 거구나. 그래서 여긴 그걸 알려주는 법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모인 거구나. 이제 알게 되었지요. 으이구, 이 바보 같은 사람들. 그렇게 '엉엉'하고도 화도 안 나나 봐요. 그런 사람들과 같이 있다는 생각에 저는 또 '엉엉'해버릴 것 같았지만 잘 참아냈어요.

그래서 저는 큰 톱니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이렇게 착한 사람들이 요구하는 게 세상에 나쁠 리가 없어요. 이야기를 좀 들어봤는데 법을 제정하려는 의도도, 목적도, 예상되는 결과도 모두가 '엉엉' 하지 않도록 만들뿐이던걸요.

다들 한번씩 '엉엉' 하면서 살게 되는데, 그걸 예방하는 게 목적이에요. 참는 게 이기는 거라지만 참으면 병이 된대요. 저는 병이 있어봐서 아는데 그거 되게 힘들어요. 화재도 범죄도 질병도 예방이 중요하다고 하잖아요? 콘돔도 프렙(PrEP(Pre-exposure prophylaxis, HIV 노출 전 예방법)도 마스크도 예방을 위해서 우리 모두 하길 권장하잖아요. 그런데 왜 '엉엉'에 대해서는 예방하면 안 되는 건가요.

'엉엉'은 사람을 굉장히 마음 아프게 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어요. 또 '엉엉'은 저 같은 성질머리 더럽고 기질이 사나운 사람에게 분노를 동반한 어떤 행동을 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아마 계속 놔두었다가 저 같은 사람들이 더 많이 '엉엉' 하게 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저도 몰라요. (임오군란이나 동학농민운동처럼요!)

그러니까 저는 어쩌면 당신 걱정을 하고 있는 거예요. 사실 경고입니다. 근현대사를 안 배웠던 사람들도 저항과 혁명이란 걸 했는데 여기 농성에 함께한 사람들은 어떻겠어요.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지요. 그걸 아직도 모르시나요, 어쩜. 사람들은 계속해서 '엉엉'을 막기 위해 수많은 제도들을 폐지해왔잖아요.

또 그런 걸 앞서서 한 사람들은 선구자로 기록되어 역사에 남았지요. 만약 우리도 그렇게 된다면, 우리 모두에게 너무 좋은 그런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겠어요? 사실 이미 많이 늦었지요.

어떤 외국인이 한 말이 생각나네요. '울면 너 혼자 울 것이다, 웃어야 세상이 웃어준다' 어쩌구 하는 말이었는데, 완전 바보 같은 말이죠. 누군가 울면 같이 울어줘야 해요. 웃을 때도 같이 웃어줄 수 있어야 하고요.

혼자만 웃고 있으면 이상한 사람이 돼요. 사회 생활의 기본은 분위기 파악이잖아요. 네, 그래서 결국은요, 지금까지 제가 한 말 그냥 다 같이 웃고 싶다는 말이에요. HIV 같은 거 때문에 혼자서 엉엉 울어본 사람이 말이에요.

덧붙이는 글 | 글쓴이 포니는 한국청소년청년감염인커뮤니티 알 운영진이며 HIV/AIDS 감염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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