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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목을 앞두고 암소를 사기 위해 경매시장에 모여 소를 둘러보고 있는 사람들.
 대목을 앞두고 암소를 사기 위해 경매시장에 모여 소를 둘러보고 있는 사람들.
ⓒ <무한정보> 김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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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 실은 트럭들이 제법 선선해진 새벽공기를 헤치고 줄지어 들어선다. 본격적인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 '백로'인 지난 7일, 충남 예산군 신양면 예산축협 큰소 경매시장은 추석 대목을 맞아 분주했다. 명절을 앞두고 시세가 좋다보니 팔려는 사람이 많아 이달 들어서만 두 번째 장이 열렸다. 

소가 '푸릉'하고 콧김을 내뿜는 소리, 이웃동네에 사는 친숙한 얼굴을 만나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소리에 경매시장이 활기를 띤다. 

소를 사러 온 사람들은 장에 나온 암소 80마리(비육암소 55·번식우 25)를 신중하게 살핀다. 수소 못지않게 덩치가 큰 것들은 "소 좋다"는 감탄사도 나온다.

경매가 시작되자 농가들의 시선은 낙찰가격이 실시간으로 뜨는 전광판으로 일제히 쏠린다. 그 눈빛에 기대감이 스친다. 

숫자에서 눈을 떼지 않던 죽천2리 강환국(73) 어르신은 "명절 때 고기를 많이 먹으니까 그전에 팔라구 왔어유. 새끼 한 배(한 번) 낳은 건데 그담부터 임신이 안 돼 갖구 왔지. 소 멕인 지는 40년이 다 됐어. 우리 아버지가 한 50년 키우던 걸 내가 서른 살 때부터 대를 이어서 하는 거야. 나도 소 판 돈으로 밥 먹고 학교 댕기고, 우리 애들도 그렇게 키웠지. 오늘 판 거는 송아지 새로 사 넣을 거유"라며 소 옆구리를 슬슬 쓰다듬는다.

다른 소들보다 한 뼘이 더 큰 강 어르신의 암소, 1㎏당 가격이 평균보다 1000원 정도 높은 1만2180원에 낙찰됐다. 

"그래도 (무게를) 달아봐야 알지"라며 요즘말로 '포커페이스'를 유지한다. 차분한 그의 성품을 닮았는지 경매가 끝난 뒤 얌전히 계근대에 올라선 소 무게는 무려 741㎏. 통상 비육암소는 600㎏대를 기록하니 훌륭한 성적이다. 그제야 미소를 띠는 어르신은 '등급도 잘 나올 것 같다'는 축협 직원의 말에 흐뭇함을 감추지 못한다.
 
 추석을 맞아 애지중지 키운 암소를 경매시장에 내놓은 김기복 어르신이 환하게 웃고 있다.
 추석을 맞아 애지중지 키운 암소를 경매시장에 내놓은 김기복 어르신이 환하게 웃고 있다.
ⓒ <무한정보> 김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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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다섯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게 정정한 삽교2리 김기복 어르신도 암소 한 마리를 내놨다. 열흘 남짓 남은 추석을 준비하고 농장에 있는 다른 소들에게 먹일 사료값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그는 "송아지사료가 비싼 거는 한 포대에 1만원이 넘으니께 사료값이 여간 드는 게 아니여유. 볏짚도 줘야하고…. 좋은 거 멕이며 애지중지 키우다 보낼라구 하면 마음이 좀 서운하쥬. 그래도 통장에 돈이 딱 들어오면 기분 좋아유. 큰 부자는 못 돼도 빚 없고, 먹고 살 만큼 사니까 더 바랄 게 없슈. 농촌에서는 지금두 소 팔아 자식들 시집장가 보내고 하지. 우리 아들딸들도 다 출가해 잘 살유"라며 환하게 웃는다.

소 팔아 자식들 대학 등록금 내고 결혼밑천 마련하던 시절, 봄이면 단단한 어깨에 멍에를 이고 논밭을 갈던 소는 오랜 세월 우리 삶을 지탱해준 고마운 한 식구다. 

코로나19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터널을 지나는 요즘이지만, 서로에게 기대 숱한 고난을 헤쳐 온 지난날과 같이 소처럼 우직하게 이겨낸다면 내년 추석에는 정다운 얼굴들을 마음 놓고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예산군에서 발행되는 <무한정보>에서 취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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