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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살 김혁래 할아버지와 19살 고등학생 김수인양은 손편지로 특별한 우정을 나눈다. 서로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와 응원은 내일을 살아갈 힘이 된다.
 90살 김혁래 할아버지와 19살 고등학생 김수인양은 손편지로 특별한 우정을 나눈다. 서로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와 응원은 내일을 살아갈 힘이 된다.
ⓒ <무한정보> 김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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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건강하고 공부 열심히 하면 좋은 일만 생기네. 수인이 잘되라고 두 손 모아 빌겠네. 살아있는 동안 수인이 잘 되는 것을 보고 갔으면 하네."

충남 예산군 봉산면에 사는 김혁래(90) 할아버지의 정갈한 글씨가 편지지 아래쪽 여백까지 빼곡하게 들어찼다.

지난 1년여 동안 편지를 주고받아온 수인(19)양은 처음 할아버지에게 답장을 받았을 때 무척 놀랐다. '홀몸어르신 편지쓰기' 봉사활동에 참여해 안부를 묻는 편지를 보냈지만 답이 올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편지를 보내줘 즐겁고 생기가 돈다. 고맙다'며 건넨 인사에 눈물이 떨어졌다. 열아홉 초년과 아흔살 노년, 71년 세월을 뛰어넘은 특별한 우정은 그렇게 시작해 지금까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수인양은 "답장이 온 게 감동적이었어요. 제 얘기를 들은 친구들도 같이 눈물을 글썽거리더라고요. 맨 처음 편지를 쓸 때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어르신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안 왔는데, 정성스럽게 적으신 편지를 받고 나니 할 말이 많아졌어요"라며 활짝 웃었다.

2주에 한 번씩 보내는 편지에는 최근에 읽었던 책과 맛있게 먹은 음식 이름부터 누군가에게 쉽게 털어놓기 힘든 고민들도 적었다. 오는 11월 수능을 앞두고 있는 그에게 대학입시 준비는 쉽지 않았고 어떤 길을 가야할지 고민을 거듭했다. 90년을 살며 산전수전을 다 겪은 '인생선배'는 그럴 때마다 '잘 할 수 있을 거야'라며 위로와 응원을 건넸다.

할아버지의 답장엔 젊었을 적 얘기도 빠지지 않는다. 마을이장이었을 당시 박종순 전 군수한테 받은 시계가 아직도 집에서 돌아가고 있다는 얘기, 큰 사고를 당하고도 꿋꿋하게 일어선 이야기… 신장이 안 좋아 주기적으로 병원에 다니면서도 건강을 염려하는 수인 양에게 '큰병없고 괜찮다, 감기도 잘 걸리지 않는다'며 안심시키기도 한다.
 
 혁래 할아버지가 정갈한 글씨로 빼곡하게 쓴 편지에서 진심이 묻어난다.
 혁래 할아버지가 정갈한 글씨로 빼곡하게 쓴 편지에서 진심이 묻어난다.
ⓒ 김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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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편지가 스물 한 번 왔어. 한 번도 안 빼먹고 답장했지. 나한테 이렇게 편지 써줄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 요새는 어디 돌아다니지도 못하잖아. 사람도 못 만나고 어려운데 편지를 받으니까 참 반갑고 좋았어. 얼마나 고맙고 기특한지 몰라. 항상 '부모님한테 효도하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해. 그냥 얘기하듯 쓰다보면 금방 써."

답장을 보내기 위해 편지지와 봉투도 한 묶음씩 사뒀다는 할아버지. 15년 전 아내와 사별했고, 슬하에 둔 8남매는 모두 출가해 다른 지역에 살고 있어 코로나19가 확산하며 만나기가 더 어려워졌다. 답답한 하루하루 속에서 수인양의 편지는 그를 지탱하는 '활력소'가 됐다.

수인양은 어떨까.

"어렸을 때 부모님이 맞벌이로 바쁘셔 할머니가 저를 많이 돌봐주셨어요. 그래서인지 세대차같은 건 느껴지지 않고 편해요. 항상 '수인이를 위해 기도할게'라고 하시는데 그게 참 감사하고 힘이 돼요.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지면 꼭 한 번 뵙고 싶어요. 내년에 고등학교 졸업할 때 '좋아하시는 과일 들고 찾아뵐게요' 했어요."

하루빨리 감염병이 종식돼 만남이 이뤄지길 바라본다.

편지를 통해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건 수인양과 혁래 할아버지뿐만이 아니다. 예산군자원봉사센터가 운영하는 안부편지 쓰기 프로그램 대상 어르신은 101명으로, 지난해 처음 도입했을 때 반응이 좋아 올해 대폭 늘렸다. 고령층 비율이 높은 대흥과 덕산, 봉산, 고덕지역 홀몸어르신과 학생들을 일대일로 연결해 격주로 편지를 보내는 방식이다. 삽교고 학생 80명을 비롯해 예산여중, 예산중, 예산여고, 예화여고 등 예산지역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다.

임자영 삽교고 담당교사는 "아이들이 버스정류장에 있는데 옆에 있던 어르신들이 '어디 다니냐' 묻길래 답했더니 반색을 하며 '삽교고 학생한테 편지를 받고 있는데 너무 좋아 마을회관이고 어디고 다 자랑한다. 고맙다'고 하시더래요. 그 말을 듣고는 더 성의를 담아 쓰게 됐다고 하더라고요"라며 일화를 전했다. 책상에 앉아 정성껏 글씨를 써내려가는 학생들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하다.

자원봉사센터 신승호 사무국장은 "어르신들이 외출을 못하고 거의 집에만 계시다보면 말할 상대가 없잖아요. 코로나19 상황에서 비대면으로 할 수 있는 봉사활동을 고민하다 이 프로그램을 기획했는데 받는 분들과 학생들 모두 좋아해요. 한 친구는 고등학교를 졸업해 대학생이 돼서도 계속 참여하고 있어요. 한글을 배우고 있는 어르신은 저희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학생이 보낸 편지를 또박또박 읽어주기도 하시고요"라며 밝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코로나19 속에서 두 번의 여름이 지났다. 올해 추석도 반가운 친지들과 마주앉아 맛있는 음식을 나누기는 어렵게 됐지만, 정겨운 손편지로 서로를 향한 마음을 전해보자. 건강하게 꼭 다시 만나 마음 놓고 웃자고, 우리 잘 견뎌보자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예산군에서 발행되는 <무한정보>에서 취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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