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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사무소에서 바라본 백운산
  면사무소에서 바라본 백운산
ⓒ 노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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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치국이 그노마 때문인 기라."
"우째 동네에 뭔 일만 터지뿟다 카믄, 다 굴러온 놈들 때문인동 모르겄네."


"동네에 한지 공장이 네 개나 생기뿌이까네, 근본도 알 수 없는 것들이 마을에 꼬이가꼬. 이장, 인자 우짤 끼고?"
"우짜기는요, 하던 대로 해뿌야지! 다들 할 끼재?"


20대에서 50대까지 다양한 나이대의 사내들이 일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비록 마음에 거리낌이 있다고 해도, 이장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이장은 면사무소까지 거의 반 시간을 걸어 다니며 출생신고·혼인신고·사망신고 같은 잡다한 일을 처리해주는 행정사(行政士)이자, 신생아들의 이름까지 한자로 멋들어지게 지어주는 작명가(作名家)였으니···.

"이장, 내는 요번에는 빠질란다. 그래도 치국이 그놈이 내가 댕기는 한지 공장 사장인데. 쫌 글타 아이가. 미안허네, 내 다음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됐고, 그라믄 형님은 마 빠지뿌고. 빠질 사람 또 있으믄 지금 얘기하라꼬. 없으믄 삽 하나씩 들고 출발하입시다."


이장을 선두로 동네 장정들 삼십여 명이 삽과 낫을 들고 대오를 갖춰 백운산을 향해 시근덕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힘 좋은 사내들의 날랜 걸음으로도 한 시간 반가량 걸리는 거리였다. 성난 군중은 백운산에서 혈(穴)이 좋다고 소문난 자리에 도착했다.

조선 시대 후기에 홍문관 대제학 자리에 올랐다가 낙향해서 이곳에 묻혔다는 한 인물의 큼직한 묘역 위쪽에 뭔가 이상한 흔적이 있었다. 뿌리를 아직 내리지 못한 떼(잔디) 사이사이로 시뻘건 흙이 보였다.

"이장, 내가 여라 안 캤나. 맞재?"
"글네요, 형님. 자! 겁낼 꺼 없다, 기냥 마 파디비뿌라!"


장정들이 달려들어 흙을 파내기 시작하자, 반 시간도 안 돼서 뭔가가 나타났다. 급하게 옮기느라 그랬는지 관도 없이, 유골은 아마포 같은 천조각에 싸여 있었다. 사내들은 잠시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한 뒤, 거무튀튀한 유골을 땅바닥에다 흩뿌려 놓았다.

"이장, 인자 비가 오겄재? 모내기해야 되는데 비가 안 오믄, 이래 하는 수밖에 없다꼬."
"비가 오겄지요, 형님. 옛날부터 모내기 때 비 안 오믄 누가 암매장 해가꼬 묫자리 쓴 거 때문이라 안 캤습니까. 인자 곧 비가 올 끼고, 치국이 그노마도 알아서 뭐 수습하겠지요."


여자 이장 놓고 설왕설래

마을회관에 모인 주민들이 내게 이장을 하라고 권했을 때, 이장에 관해 첫 번째로 떠오른 이미지가 이거였다. 돌아가신 아빠에게 전해 들은 이 이야기는 아마도 60년대 중반쯤의 일이었는데, 그 당시 이장은 이런 일까지 도맡아 해야 했다.

이것은 아마도 기우제를 빙자한 처벌인 듯하다. 불법적인 암매장에 대해 동네 차원의 징벌을 가하기 위한 구실로 모내기 가뭄을 갖다 붙인 게 아닌가 싶다. 이렇듯 그 옛날 이장은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해 면사무소에서도 묵인하는, 암묵적이고 은밀한 '생활-사법권'을 가지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이장의 명령을 받은 중학생이 도둑질한 어른의 종아리에다 회초리를 날리기도 했다. 그리고 미수에 그친 중범죄에 대해선 멍석말이로 다스리곤 했는데, 죄인의 가족에게까지 매를 손에 쥐여 주던 인물이 이장이었다. 내 머릿속에 있는 이장의 이미지는 이런 것들이라, 누군가가 내게 이장을 해보라고 말하는 순간 등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우리 이사장이 이장을 해뿌야 안 되겄나. 마을기업하고 협동조합이 잘 될라 카믄 이사장이 이장을 해뿌야지."
"그렇기는 헌데, 이사장이 여자라가꼬, 그게 쫌."

"아이고, 중평댁이야! 뭔 개소리를 그래 사람 소리매로 해샀노. 지금 박 이장이 남자라가꼬 뭐를 그래 잘 해뿌더노? 술이야 뭐 넙죽넙죽 잘 받아 처묵기는 하지."
"이보소, 박 영감아! 내가 지금 박 이장이 일을 잘 한다꼬 말한 게 아이자나. 영감탱이가 말귀를 몬 알아듣꼬. 내 말은 이사장이 여자라가꼬 이장 한다 카믄 반대가 쫌 안 있겄나, 이 말 아이가. 그라고 말이 나왔으이 말이지, 우리 이사장도 인정사정없이 술 받아 처묵는 거 보믄 만만찮타꼬."


이장 선출이나 교체에 관한 문제는 '썸'을 타는 사이인 중평댁과 박 영감마저도 싸우게 할 정도로 동네에서는 핫한 이슈였다. 이런 갑론을박이 마을회관에서 벌어진 건 마을기업 컨설팅 때문이었다. 마을기업에 선정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료 컨설팅을 받게 되었는데, 동네를 방문한 컨설턴트가 마을기업이나 협동조합의 임원진 중에 이장이 있으면 일하기가 훨씬 수월하다고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던진 것이 화근이었다.

"우리 이사장이 어데를 봐서 여자라 카노. 술 잘 먹지, 삽질 잘하지, 예초기도 잘 돌리지, 욕 잘하지, 힘도 씨지, 몬 하는 거 빼고는 다 잘한다 아이가. 껍데기만 여자매로 생깄지 이사장은 사나새끼나 똑같다꼬."

소평댁이 나를 칭찬하려는 것이 분명한데도 어쩐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마을회관의 방구석자리에서 남편이 혼자 킥킥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사내나 다름없다는 게 저렇게 좋을까? 하긴 남편이 내 여동생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처제, 내가 언니 처음 봤을 때 보이시한 매력에 빠졌거든. 근데 결혼하고 보니까 이건 '보이시'가 아니라 그냥 '보이'더라고. 보이도 그냥 보이가 아니야. 이건 뭐 상남자 아니 '상보이'더라고. 언니하고 사는 게 군대 동기랑 둘이서 내무반 생활하는 거나 똑같다고. 이게 뭐냐고, 내가 완전 속은 거라고."

이장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고 마을회관에 모인 주민들에게 내 의견을 단호하게 밝혔다. 일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많은 이들이 내 의지를 꺾으려 했고, 남편은 재미난 구경이라도 하는 듯 계속 킥킥거리기만 했다. 

"우리 이사장이 마을 노인회 총무를 한 지 벌써 4년 정도 되지 않았나요? 이제 이장으로 슬슬 승진해야 할 때도 된 것 같은데, 안 그렇습니까?"
"노인회 총무가 승진을 하믄 노인회장을 해뿌야지, 무신 이장은. 그라고 새마을 지도자에서 이장으로 승진하는 기라꼬. 이사장은 새마을 지도자 안 했뿟자나."


나를 이장으로 만들고 싶은 작업반장의 말에 반기를 든 건 무산댁이었다. 무산댁은 마을회관에 모인 사람들의 얼굴을 한번 쭉 훑어본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 동네에 여자가 이장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따꼬, 여자가 무신 이장. 그라고 다들 이사장 아부지 잘 기억해 보라꼬. 그 양반이 이장을 몇 년 해묵었더라? 한 10년 넘게 안 해묵었나? 이쪽 집구석은 뭔 자리 하나 줘뿌믄, 고 자리가 삭아 없어질 때꺼정 억수로 붙들고 있는다꼬."
"허허, 형수, 뭔 말을 그렇게 하오. 그 형님이 좀 장기 집권을 하긴 했지만, 일 하나는 정말로 열심히 잘했잖소. 동네일을 자기 일처럼 그렇게. 그리고 연좌제도 아니고 그게 무슨 말이오. 누가 형수한테, 옛날에 형수가 곡식 훔치다가 회초리를 맞았으니까 형수 아들 기철이도 곧 뭐 훔치다가 매 맞겠네, 하면 좋겠소? 그때 형수가 사람들 앞에서 회초리 맞을 적에 이장이 아마 우리 이사장 부친이었지, 아닌가?"


반장의 대꾸에 무산댁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앵돌아졌고, 반장은 말을 이어갔다.

"다들 잘 알다시피, 노인회 총무 이 자리 이거 보통 일이 아니거든요. 우리 이사장이 총무 맡기 전에는 결산할 때마다 늘 싸우고 한 번은 칼부림도 날 뻔했습니다. 기억나시죠? 이사장이 총무 맡기 바로 전 총무가 우리 위원장, 그러니까 이사장 신랑, 저 친구였는데, 결산을 하다가 잘 안 되니까 자기가 열받아서 뛰쳐나갔습니다. 그런데 우리 이사장이 총무를 하고부터는 분란이나 싸움이 없어졌다 이 말입니다. 이것만 봐도 우리 이사장은 이장 재목이다, 이 말입니다."

내 이마에선 식은땀이

1년 동안 우리 마을 노인회에 들어오는 돈은 운영비 130만 원, 난방비 150만 원, 부식비 40만 원으로 총액 320만 원이다. 이 돈으로 마을회관에 필요한 비품도 구입하고, 마을회의 때 간식 같은 것도 준비한다. 예전에는 영수증 처리도 하지 않고 아저씨들이 대강 술값으로 탕진을 하고, 매년 결산 때마다 면사무소에 가서 배 째라고 드러누웠다고 한다.

남편도 1년간 노인회 총무를 했었는데, 처음엔 원칙대로 규정에 맞는 용도에만 돈을 사용했다. 하지만 아저씨들의 등쌀에 떠밀려 술값으로 몇 번 노인회 체크카드를 내준 모양이었다. 그러니 결산 때 곤란에 처할 수밖에. 내가 노인회 총무를 맡고부터 결산 때 싸움이 없어진 건 운영비로 절대 아저씨들의 술값을 계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 이외에 다른 이유는 없다.

"저기, 잠시 해명 좀 해도 되겠습니까? 반장님의 말씀 중에 제 인격과 제 인생 전체를 부정하는 왜곡된 내용이 좀 있어서 바로잡아야겠습니다."

웃음기가 사라진 남편의 얼굴에는 못마땅한 표정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장에 관련해서 대화를 나누는데 쟤는 또 왜 저래?'라는 눈빛으로 다들 남편을 쳐다봤다.
 
남편이 새마을 지도자로 활동할 때 쓴 모자
 남편이 새마을 지도자로 활동할 때 쓴 모자
ⓒ 노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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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장 자리에 관심이 있어서 이런 말씀 드리는 건 아니고요. 일단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제가 1년 동안 새마을 지도자 경험이 있습니다. 뭐 어쨌든 반장님 표현대로 뛰쳐나간 건 맞습니다. 맞고요. 그것까지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데 결산을 하다가 잘 안 돼서 뛰쳐나간 건 절대 아닙니다. 제가 또 회계에는 달인이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으니깐요. 어쨌거나 우리 마을 결산하는 날이 항상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때입니다. 그날 저녁 7시에 모여서 3시간 동안 영수증 퍼즐 맞추기를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탄절 전날 밤에 이게 도대체 뭔가. 이건 너무나 부조리한 상황이다. 카뮈의 소설 '이방인'이 떠오르···."

"자, 됐고. 지금 박 이장이 6년째 이장을 하고 있으니까, 할 만큼 한 것 아닙니까? 이젠 이장을 바꿀 때도 됐습니다."
"그란데 반장! 박 이장이 자리를 내놔뿔라 카것나? 이장해가꼬 일감을 따내는데."
"제가 일단은 한번 추진해보겠습니다."


작업반장의 표정은 결연했고, 남편은 울상이었고, 내 이마에선 식은땀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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