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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을 알 수 없는 모래수렁 같은 코로나19가 이달로써 1년 9개월째다. 그동안 계절은 다섯 번 바뀌고, 두 번의 명절이 지났다. 첫 발병 이후 국내 확진 환자는 27만2982명, 사망자도 2359명 (12일 0시 기준)을 넘어섰다. 그동안 코로나19는 우리 일상 곳곳을 파괴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힘들지만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은 유독 잔인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매출 급감에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서 한계 상황에 내몰린 지 오래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세 번째 명절을 앞두고 있지만 도무지 흥이 나지 않는다.

지난 8일 한밤중에 터진 자영업자들의 외침은 이 같은 암담한 현실을 반영했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은 이날 밤 11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차량 1000대를 이용해 전국 9개 도시에서 대대적인 시위를 벌였다. 장사를 마치고 휴식을 취해야할 시간에 차량 시위를 벌인 이유는 다름 아니다. 희생만 강요하는 획일적인 정부 지침을 더 이상 따를 수 없다는 절규였다. 시위대들은 "그동안 정부 방침에 순응해 희생을 감내해왔지만 더는 인내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면서 합리적인 방역 정책을 촉구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최근 내놓은 보고서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처한 극단적인 현실을 보여준다. 보고서에 따르면 소상공인들 부실 비율이 급격하게 치솟았다. 신용보증기금이 운영하는 소상공인 2차 금융지원 프로그램을 분석한 자료였다. 소상공인 부실 비율은 지난해 말 0.22%에서 올해 상반기 1.32%로 무려 6배 급증했다. 원리금을 제대로 갚지 못하거나 세금을 체납한 게 주된 부실 사유였다. 부실 금액도 같은 기간 73억 원에서 409억 원으로 늘었다. 지난해 5월부터 이 프로그램이 시작됐으니 짧은 기간에 부실이 급증한 셈이다.

정부는 9일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을 6개월 더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금융지원은 애초 이달 말 종료 예정이었다. 한국은행은 서비스업 소상공인 대상 운전자금 대출 한도를 현재 3조원에서 6조원으로 증액하고 지원 기간도 내년 3월 말까지 늘리기로 했다. 연장만 세 번째다. 그만큼 소상공인업계가 처한 현실은 간단치 않다. 하지만 금융지원 연장만으로는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금리 인하, 세금 감면이 보다 실질적이다. 이와 함께 개별 기업이나 민간 차원에서 진행되는 상생 노력은 우리사회에 많은 것을 돌아보게 한다.

서울 동대문에 위치한 의류 도매 법인 apM은 이달 9월부터 내년 2월까지 임대료와 관리비 20% 인하를 결정하고 최근 상인들에게 통보했다. 앞서 apM은 코로나19 직후인 2020년 2월과 3월, 그리고 올해도 2~5월까지 임대료와 관리비 20%를 인하한 바 있다. apM에 입주한 상가는 1150곳에 달한다. 세 차례에 걸친 임대료와 관리비 인하로 회사가 떠안은 비용은 124억9,700만원에 달한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상인들과 상생한다는 취지였다.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임대료 인하는 상인들에겐 단비와 같았다.

임대료 인하를 주도한 apM 송시용 회장은 "상인이 있어야 나도 apM도 있다. 어려울 때일수록 서로 고통을 나누고 이겨내야 한다. 임대료를 인하하면서 상인들에게 '당신들은 옷만 잘 만들라'고 당부했다. 어렵다는 이유로 대충하면 코로나19가 끝나도 정상 회복하는 게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apM김정현 대표 또한 "적지 않은 손실에도 불구하고 인하를 결정한 건 어떡하든 함께 이겨내 보자는 취지다. 여기에 부응해 정부도 소상공인 대출 금리 인하나 세금 감면 혜택을 고려했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사실 '착한 임대료' 원조는 apM이다. 2016년 메르스 사태 때도 송시용 회장은 외국인 쇼핑객이 감소하자 상가 임대료를 30% 인하했다.

주지하다시피 서울 동대문과 남대문 의류 도매 상가는 한국 패션산업을 주도하는 격전장이다. 이곳에서 만든 옷은 중국과 베트남 등 동남아시지역에서 인기가 있다. 세련된 디자인과 품질, 가격 경쟁력으로 현지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의류패션 산업으로 인한 고용창출도 상당하다. 동대문과 남대문 의류상가가 무너지면 한국 패션산업도 붕괴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이전 만해도 동대문과 남대문 일대는 중국 상인들로 북적였다. 이들은 전체 매출에서 80% 이상을 차지하는 큰 손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동대문과 남대문 의류 상가는 적막하다.

apM에서 16년째 상가를 운영하는 최유희씨(37)는 "코로나19 이후 매출도 이익도 90% 이상 급감했다. IMF나 메르스, 사스 때도 이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다. 상인들 대부분 마이너스통장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소상공인 정책자금 대출도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김신영씨 또한 "항공편이 막히는 바람에 사진 작업(신상품을 사진으로 촬영해 보내면 중국 상인들이 주문하는 방식)으로 그나마 버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임대료와 관리비, 인건비 등 고정 지출 부담은 크다"면서 "apM의 임대료와 관리비 20%인하는 큰 도움이다"고 했다.

사실 '착한 임대료'는 시민운동이 아니다. 개별 기업이나 민간이 참여하는 자발적인 상생경영으로써 강제할 수 없다. 그래서 선의에만 기대는 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어쩌면 '착한 임대료'는 국가 책임을 개별 기업이나 민간에게 전가한 것과 다르지 않다. '착한 임대료'가 의미를 확보하고 다른 부문으로 확산되려면 지지와 함께 실질적인 인센티브가 뒤따라야 한다. 개별 기업의 선의와 희생에만 기댄다면 무책임하다.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준 교훈이 있다면 상생의 가치다. 코로나19는 '네가 건강할 때 나도 안전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웠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서울시립대 초빙교수로 국회에서 부대변인을 역임했습니다. 이 글은 한스경제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동대문 의류 상가 APM, #착한 임대료, #소상공인 부실 비율 급증, #상생 경영, #차량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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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 여행, 한일 근대사, 중남미, 중동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중남미를 여러차례 다녀왔고 관련 서적도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 중심의 편향된 중동 문제에는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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