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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물과 시급(8,720원)문화 상품권
 선물과 시급(8,720원)문화 상품권
ⓒ 김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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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문고에서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가 있었다. 이름도 민망한 이 행사는 1시간 동안 엉덩이를 떼지 않고 책을 읽으면 시급(8720원 도서 상품권)을 주는 대회다. 서점에서 책을 파는 게 아니고 책을 읽었다고 돈을 주는 거다.     

이 이상한 대회를 기획한 걸로 추정되는 배지영 작가가 진행을 맡았다. 대회 시작 전에 선물 증정 시간이 있었는데 행사 처음 온 사람 손 들라고 해서 참치 캔을 주고, 요즘 몸이 부실하다고 느끼는 사람 손 들라고 해서 귀리 한 봉지를 줬다. 나중에는 그냥 선물 받고 싶은 사람 있냐고 물어보고 줬다. 이런 선물 폭격에 사람들은 받아도 되나, 하는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다.     

선물을 안 받은 사람이 없나 하고 두리번거리는 작가님을 보고 (시키지도 않는데 보조로 나선) 내가 "이분들 안 받았어요"라며 내 뒤에 앉아있던 20대 여성분들을 가리켰다. 이 분위기가 좀체 적응이 안 된 두 분은 "아닙니다, 수첩 받았어요"라고 했지만, 작가님은 "그걸로는 약하지요"라면서 참치 캔과 반찬통을 안겨줬다.     

'아무 이유나 갖다 붙여서 선물 주기'는 '엉덩이로 책 읽기'와 어딘가 비슷했다. 뭔가를 해야 보상을 받는 세상에서 한 곳만은 조건 없는 선의를 베푸는 곳이 있다는 게 낯설지만 마음을 푸근하게 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다. 나는 신호가 바뀌는 10초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건널목을 막 지나가려고 하고 있었다. 그때 박스를 산더미처럼 쌓아 올린 리어카가 보도의 턱을 올라서다가 지나가던 학생과 부딪칠 뻔한 상황이 벌어졌다. 아저씨가 앞으로 쏠리는 무게를 간신히 지탱한 덕분에 사고는 피할 수 있었지만, 중학생으로 보이는 세 명의 학생은 무슨 일이 일어난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앞을 보고 다녀야지."

아저씨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와중에 리어카는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뒤로 넘어가려고 해서 내가 얼른 뒤로 가서 박스를 받쳤다. 

"밀까요?"

내가 큰소리로 물었다.

"네."

그때 어디선가 한 여성이 와서 내 옆에 섰다. 둘이서 밀자 리어카는 금세 반동을 받아 턱을 넘었고 그렇게 50미터쯤 갔다.      

"그만해도 돼요. 고마워요."

"안녕히 가세요."


아저씨한테 인사하고 옆을 보니 그 여성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뭉클한 감정은 남아있었다. 내 옆의 사람의 존재를 느낀 순간 속에서 울컥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걸 나는 분명하게 느꼈다. 묵직한 그 느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소설 <불편한 편의점>에는 매일 밤 편의점 야외테이블에서 "참참참(참깨라면, 참치김밥, 참이슬)"세트로 하루의 고단함을 달래는 40대 가장이 나온다. 편의점 직원인 독고는 그 손님이 오면 야외 테이블 앞에 열풍기를 틀어준다. 얼마 전까지 노숙자였기 때문에 추위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일까. 편의점 사장인 염 여사가 자기를 도와준 것처럼 타인의 작은 온기가 얼마나 몸을 덥혀주는지 알아서 일까.  
    
교사로 퇴직한 염 여사는 자기는 연금으로 생활하고, 편의점은 직원들의 급여만 잘 나오면 된다고 생각하고 운영한다. 노숙자 독고에게 편의점 도시락을 매일 주고, 직원으로 채용한 것도 장사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에 말도 어눌하게 하고 몸이 불편해 보였던 독고가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점차 건강을 되찾아간다. 함께 일하는 직원과 손님들에게 도움을 주기 시작한다.

현재 내 여건에서도 가능성이 숨어있다는 걸 소설에서 보여줬다. 공시생 시현이 바코드 리더기 사용법을 유튜브에 올려 편의점 점장으로 스카우트 제의를 받는 일 같은 거다. 쉽게 찾아오는 기회는 아니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남에게 도움이 되는 게 있는지 찾아보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가치 있는 존재라고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시현에게 유튜브를 해보라는 아이디어는 독고가 준 것이었다. 염 여사가 했던 하나의 선의가 가지를 쳐서 큰 나무를 이루는 것 같았다. 힘든 상황에 처해있더라도 타인의 작은 도움이 있으면 빠져올 수 있다는 걸 말하는 것 같았다. 살짝만 밀어주면 술술 굴러가는 바퀴처럼. 

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있는지 살펴보는 일은 소중하다. 언젠가 내가 무거운 짐을 끌고 있을 때 누군가 밀어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으면 쉽게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 이유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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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을 봐서 요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학원밥 18년에 폐업한 뒤로 매일 나물을 무치고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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