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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간첩단'이라 불리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일명 '자주통일충북동지회 사건'. 해당 사건의 피의자 4명 중 3명이 구속된 지 40일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언론의 관심도 이제는 조용해졌다. 수사를 통해 진전된 사항도 없다. 유일하게 구속을 면한 피의자에게 다시 영장을 청구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이쯤에서 질문을 던져본다. 과연 이들은 국가보안법 제4조 '목적수행'죄에 해당하는 간첩일까? 간첩죄가 적용될 수 있을까? 현재 간첩 혐의를 받고 있는 4명과 그의 변호인은 '간첩죄'에 대해 무죄를 주장한다.

이 사건을 수사중인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관계자는 <충북인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수사중인 사안이라 말할 것이 없다. 우리는 오로지 증거로 말할 뿐이다. 수사결과를 보면 알 것"이라고 했다.

<충북인뉴스>는 충북동지회 사건을 둘러싼 쟁점과 의문을 4회에 걸쳐 연재한다. - 기자 말

   
1995년 부여간첩단 사건으로 생포된 남파간첩 김동식의 기자회견 장면. A목사 사건과 청주 스텔스기 반대운동 간첩단 혐의 사건에서 김동식의 입이 북한 공작원 리광진의 실체를 입증하는 유력한 증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사진 출처 : 대전MBC유튜브 채널 캡처)
 1995년 부여간첩단 사건으로 생포된 남파간첩 김동식의 기자회견 장면. A목사 사건과 청주 스텔스기 반대운동 간첩단 혐의 사건에서 김동식의 입이 북한 공작원 리광진의 실체를 입증하는 유력한 증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사진 출처 : 대전MBC유튜브 채널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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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문화교류국' 공작원 리광진(여권명 김동진, 1960년 9월 21일생)은 1990년대 모자(母子)공작조·부부(夫婦)공작조로 수차 국내 침투한 공로를 인정받아 '영웅칭호'를 받은 인물로, 미상시기 부과장을 거쳐 과장 이상 직급으로 승진하였다." (충북동지회 구속영장청구서)
"2017년 5월 21일 피의자 박○○이 중국 북경에서 조○○(1969년 4월 9일생)이라는 북한 여권명을 사용하는 '문화교류국' 공작원과 접선할 당시 사전 정찰 임무를 수행하였고, 2018.4.28.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피의자 윤태영을 만나 검열하였다." (충북동지회 구속영장청구서)

국정원과 국가수사본부에 따르면 리광진은 영웅칭호를 받은 고위공작원이다. 동지회 관계자를 만나 지하당인 '동지회'를 만들도록 포섭한 공작조의 우두머리다.

국정원과 국가수사본부가 구속영장에 적시한 리광진이 북한 문화교류국 소속 공작원이 사실이라면 동지회에 대해 국가보안법 4조 목적수행죄가 적용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두 가지 사실이 먼저 전제돼야 한다. 먼저 리광진이 북한 문화교류국 소속 공작원이라는 점이 입증돼야 한다. 두 번째는 동지회 구성원들이 중국과 캄보디아에서 만났다는 사진 속의 인물이 리광진이라는 것이 입증돼야 한다.

첫 번째 의문과 관련해서는 2017년 A목사간첩사건에 대한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법판결문을 통해 찾을 수 있다.

"리광진 여권사진 증거능력 없어"... 김동식 증언은 인정

​당시 서울고법 재판부는 리광진의 실체를 인정했다. 그렇다면 리광진의 실체를 입증하는 증거는 무엇일까?

검찰은 증거물로 리광진의 여권사진(복사본)과 1995년 부여간첩단 사건 당시 남파간첩으로 활동한 김동식의 증언을 제출했다.

재판부는 리광진의 여권사진은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판결문에 따르면 국정원 수사관은 재판에서 여권사본 입수경위에 대해 "피고(A목사)의 북한 상부선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리광진의 존재를 파악했다. 그러던 차에 2014년 7월 경 자카르타 공항에 이광진이 출현한 사실을 확인했다. 그래서 이광진의 여권사진을 해외협조망을 통해 입수하게 됐다"고 증언했다. 이어 "출처와 경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정책적인 부분도 있기 때문에 말할 수 없다"고 진술했다.

이에 재판부는 "여권사본을 어떤 절차를 거쳐서 취득했는지 불분명하고 그 원본의 존재 및 원본과의 동일성도 인정하기 어려우며 이를 인정할 만한 자료가 없다"며 증거를 채택하지 않았다.

검찰과 국정원은 두 번째 증거로 1995년 부여간첩단 사건 당시 생포된 남파간첩 김동식의 진술과 A목사와 리광진이 회동하는 장면이라며 촬영한 영상과 사진을 증거로 제시했다.

A 목사와 변호인은 "피고인이 만난 사람을 북한 공작원 리광진이라고 지목한 김동식의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피고인이 2012년 5월 31일 만난 사람이 북한 공작원이라는 것에 대해는 남파간첩 김동식의 증언뿐"이라며 "김동식은 2008년부터 지금까지 국정원 산하기관인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재직하고 있는 자로 국정원이 원하는 증언을 할 수 밖에 없어 객성성 있는 3자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1995년 당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이 공개한 남파간첩 김동식이 소지한 독약앰플 사진(출처 : 대전MBC유튜브 채널 캡처)
 1995년 당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이 공개한 남파간첩 김동식이 소지한 독약앰플 사진(출처 : 대전MBC유튜브 채널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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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김동식이 리광진을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증언 시점으로 약 21년 전 일인데 사진만으로 위 사람들을 알아보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먼저 "2012년 5월 31일 경 베트남 호치민 채증 동양상 및 사진의 증거능력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어 "김동식의 진술은 리광진 등을 알게 된 경위와 경력 등에 대한 진술인데 그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고 일관성이 있다"며 "국정원 산하기관 직원이란 이유만으로 허위 진술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A목사에 대한 1심과 2심 판결문에 기재된 부여간첩단 남파간첩 김동식의 진술은 요약하면 이렇다.

김동식은 남파공작원으로 활동하다가 체포된 이후 현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공작원 리광진 지도원은 한국에 두 번에 걸쳐 침투해 지하당을 구축, 간첩을 포섭해서 공화국 영웅 칭호를 두 번 받은 사람이다. 리광진 지도원은 체제의 보안을 요하는 공작부서의 간부이기 때문에 일반인이나 무슨 사업 목적으로 만날 일은 전혀 없다.

김동식은 리광진에 대해 1995년 남파 당시 자신을 지도했던 요원이어서 그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남파간첩 김동식은 누구?

A목사 사건에서 북한 공작원 리광진의 실체를 인정하는 유일한 증거가 된 김동식은 어떤 인물일까?

1995년 10월 24일 오후 2시경 충남 부여 정각사에 간첩 2명이 출현했다는 안기부 직원의 다급한 전화가 부여경찰서에 걸려왔다.

남파간첩 김동식과 박광남이 정각사에 머물던 고정간첩 일명 '봉화1호'를 북으로 데려갈 것이라는 첩보를 입수해 수개월째 현장에 매복했던 국정원(당시 안기부)과 대공요원의 다급한 전화였다.

부여경찰서 112타격대가 급히 현장에 출동했다. 정각사 인근 소류지 앞에서 길목을 차단 중 정각사 방향 오솔길에서 내려오는 간첩 김동식, 박광남과 조우했다.

총격적인 벌어졌다. 무장간첩 중 1명인 김동식은 다리에 총상을 입어 현장에서 검거됐다. 박광남은 길 건너 야산으로 도주해 3일 후인 10월 27일 11시경 부여군 가평마을 인근에서 추가로 투입된 군에 의해 사살됐다.
 
1995년 부여간첩단 김동식이 소지한 권총. 1995년 12월 8일 당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은 수사결과 발표 기자회견당시 김동식 일당이 소지했던 장비도 함께 공개했다. (사진출처 : 대전MBC유튜브 채널 화면 캡처)
 1995년 부여간첩단 김동식이 소지한 권총. 1995년 12월 8일 당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은 수사결과 발표 기자회견당시 김동식 일당이 소지했던 장비도 함께 공개했다. (사진출처 : 대전MBC유튜브 채널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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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장진희 순경은 교전 중 김동식이 쏜 실탄에 가슴을 관통해 현장에서 순직했다. 나성주 순경 역시 김동식이 쏜 실탄에 얼굴의 이마부위를 맞고 일주일간 치료 중 순직했다.

당시 권영해 국가안전기획부장은 부여에서 붙잡힌 무장간첩을 조사한 결과 독침과 소음권총 등을 휴대한 점으로 미뤄 내년 총선시기 등을 틈타 요인암살 등 테러임무를 띠고 남파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경찰관 2명을 죽게하고 요인암살 등 테러임무를 띠고 남파된 김동식이였지만 그는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김동식을 수사한 당시 안기부는 기소유예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고, 98년 12월30일 서울지검 공안1부에서 공소보류 처분을 받아 사법처리가 종료됐다.

사실상 어떤 처벌도 받지 않은 김동식은 2008년 현 국정원 산하기관에 연구위원으로 취업했다.

당시 수사당국은 김동식의 과거 행적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국내 재야단체 인사들이 연이어 접촉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후 김동식의 증언에 치중해 당시 이인영 현 통일부 장관과 우상호 국회의원, 허인회·함운경 등을 간첩과 내통한 혐의로 연행해 조사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혐의를 벗었다. 

이 때문에 충북동지회 사건 피의자 측은 김동식의 진술에만 의존해 애꿎은 사람을 '수상한 사람'으로 몰아부쳤던 실수가 다시 반복되는 것 아니냐고 주장하고 있다. 김동식의 말만 믿고 충북동지회가 접촉한 인물을 리광진으로 볼 수 있느냐는 게 핵심이다.

[이전기사]
'청주간첩단' 입증될까? 국정원이 풀어야 할 숙제 http://omn.kr/1v4t4
 
ⓒ 충북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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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북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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