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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하는 다카이치 사나에 전 총무상 홈페이지 갈무리.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하는 다카이치 사나에 전 총무상 홈페이지 갈무리.
ⓒ 다카이치 사나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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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지만, 종군 위안부라는 표현은 존재하지 않는다."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신앙의 자유인데, 비판은 유감스럽다."


이런 발언을 한 인사가 일본의 차기 총리가 되겠다고 나섰다. 오는 9월 29일 치러질 일본 집권 자민당의 총재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공식 선언한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61)다. 의원내각제인 일본은 집권당의 총재가 총리를 맡는다.

입후보에 필요한 추천 의원 20명을 모으는 것조차 힘겨울 정도로 인지도가 낮았고, 파벌이 중요한 일본 정계에서 어느 파벌에도 속하지 않는 다카이치가 단숨에 선거판을 흔드는 '복병'으로 떠오른 배경엔 자민당 강성 보수층을 이끄는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있다. 아베가 이번 선거에서 다카이치를 지지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최근 다카이치를 자택으로 불러 "어렵더라도 잘해보자"라고 격려까지 했다고 한다.

대를 이은 '정치 귀족'이 즐비한 자민당 내에서 흔치 않은 비세습 자수성가형 정치인,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가 탄생한다는 명분도 다카이치의 강점이다. 선호도 조사에서 상위권을 이루며 3파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됐던 고노 다로 행정개혁 담당상,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 기시다 후미오 전 정무조사회장 등 유력 남성 후보들이 긴장하는 이유다. 

그러나 아베 정권의 노선을 그대로 이어받는 것을 넘어, 아베도 총리 시절에는 꺼렸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총리가 돼도 계속하겠다는 다카이치가 당선되면 한일 관계가 회복 불능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승승장구 '아베걸스'

일본 나라현 출신이며 고베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다카이치는 "한 국가의 발전을 위해선 뛰어난 경영자가 필요하다"는 일본 전자업체 파나소닉의 창업주 마쓰시타 고노스케를 가장 존경한다면서 정계 입문을 꿈꿨다. 다카이치는 마쓰시타가 일본의 차세대 리더를 양성하겠다고 설립한 이른바 '정치인 사관학교'인 마쓰시타정경숙에 들어갔다.

1993년 중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 32세의 젊은 나이로 당선되며 당차게 의회에 입성한 그는 3년 뒤 자민당에 입당하며 본격적인 보수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중간에 낙선 경험도 있지만 어느덧 중의원 8선 경력을 쌓은 다카이치는 이나다 도모미 전 방위상, 마루카와 다마요 현 올림픽 담당상 등과 함께 아베와 노선을 같이하는 여성 우익 정치인을 뜻하는 '아베걸스'로 불리며 승승장구했다.

2006년 9월 제1차 아베 내각이 출범하자 내각부 특명담당대신(특임장관)을 맡았고, 이듬해 일본의 패전일인 8월 15일 아베 총리를 비롯해 각료 대다수가 한국, 중국 등 주변국의 반발을 우려해 야스쿠니신사를 찾지 않았음에도 참배를 강행했다. 그런 다카이치한테 아베는 2012년 12월 출범한 제2차 내각에서 여성 최초의 총무상,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등 요직을 내어주며 확실하게 보상했다.

일반 국민과 동떨어진 극우적 이념 탓에 당연히 구설도 잦았다. 1994년 발간된 '히틀러 선거전략'이라는 책에 나치의 선거 전략을 호평하는 추천사를 썼고, 2011년에는 네오나치 계열인 '국가사회주의 일본노동자당' 대표와 함께 일장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것이 공개돼 논란이 일었다. 그는 '추천사를 쓴 것은 잘 기억나지 않고, 문제의 인물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만난 것'이라고 해명했다.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시절이던 2013년에는 원전 재가동을 주장하며 "후쿠시마 원전 폭발로 인한 직접적인 사망자는 없다"라고 주장했다가 야권은 물론이고 자민당에서도 신랄한 비판이 쏟아졌다. 결국 "피폭이 아니더라도 건강을 잃거나 생업이 무너져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분들도 계신다"라며 "후쿠시마 주민들이 (내 발언에) 괴롭고 분노했다면 사과드린다"라고 고개를 숙여야 했다.

다카이치의 위험한 역사관... "내가 왜 반성해야 돼?"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역사관이다. 일본 아사히신문·TV 정치 해설위원 다마가와 토오루는 다카이치에게 '보수 중의 보수, 우익 중의 우익'이라는 딱지를 붙였을 정도다.

그는 기본적으로 일본군의 난징대학살과 위안부 강제 동원을 부정하고, 중국 침략도 '자위를 위한 전쟁'이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초선 시절 중의원 외무위원회 발언에서 "일본의 부전(不戰) 결의는 일본 국민 전체가 반성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적어도 나 자신은 전쟁의 당사자라고 말할 수 없는 세대이기 때문에 전혀 반성하지 않는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무엇보다 한국에 대한 침략 전쟁과 식민 지배, 위안부에 대한 일본 제국과 일본군의 관여와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하며 역대 일본 정권이 계승하고 있는 고노 담화(1993년), 무라야마 담화(1995년)도 부정하며 새로운 담화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고로 이번 선거의 유력 후보 중 하나인 고노 담당상은 고노 담화를 쓴 고노 요헤이 전 관방장관의 아들이다. 다카이치가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에 올린 칼럼을 요약하면 이렇다.
 
담화에는 우리나라(일본)가 멀지 않은 과거의 한 시기, 잘못된 전쟁의 길을 걸어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리고, 식민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 특히 아시아 사람들에게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고 쓰여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전쟁에서, 어떤 행위에 대한 반성인지 분명하지 않다.

또한 현재의 정부에 반성과 사과 주체로서 권리가 있는지도 불확실하다. 죄는 지은 사람에게만 전속(專屬)하는 것인데, 일본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반성과 사죄를 해야 한다는 '민족 책임론'은 이치에 맞지 않다. 오늘날 일본 국민 대부분은 그 당시 어린아이였거나,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자신이 하지 않은 행위에 대한 죄를 반성하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1910년 체결한 한일 합방도 당시 러시아와 영국이 인정했고, 미국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국가 간에 맺어진 조약에 근거한 식민 지배로 피통치 백성이 된 분들의 원통함과 굴욕감은 배려해야 하지만, 그 당시의 협약에 따른 반성과 사죄를 현재의 일본 정부가 하는 것도 오만한 발상일 수 있다. 
 
그는 이런 논리를 일제 강제징용 피해 배상 논란에도 옮겨와 일본 제국이 한반도 노동자를 일본으로 강제 연행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며 "같은 일본 국민으로서의 전시 징용으로 봐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가 총리가 된다면 한일 및 중일 관계가 불 보듯 뻔한 이유다.

이처럼 아베의 역사수정주의를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는 다카이치에 대해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는 "일본의 차기 총리가 대중 강경노선을 취한다고 해도 이미 기울어진 대세에 전혀 영향을 줄 수 없을 것"이라며 "다카이치가 총리가 되면 중일 관계가 나빠질 수 있겠지만, 더 손해보는 쪽은 일본이 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아베의 막후 정치, 언제까지 유효할까 

다카이치는 왜 보수를 넘어 극우의 길을 걷게 됐을까. 일본 유명 정치·사회학자 시라이 사토시는 '아베걸스'의 노골적인 우익화를 분석한 <뉴스위크 일본판> 기고문을 통해 다카이치의 개인적 야망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시라이는 "선진국 중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가장 낮은 일본에서 여성 정치인의 가장 확실한 출세 수단은 권력의 뼈대를 잡고 있는 남성 정치인들의 가치관 및 세계관과 자신을 동일화하는 것"이라며 "일부에서는 그것이 과잉 동일화로 나타난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본의 구조적 문제들 대부분이 남성 중심의 사회 구조에서 비롯됐지만, 이를 바로잡겠다며 남성 정치인들의 선택을 받아 등용되는 여성들은 오히려 더 남성적인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의 사회적 임무를 완수할 수 없는 심각한 한계점에 몰린다"라며 "그들이 떠받드는 극우 이데올로기는 일본의 남성 세계에 들어가기 위한 더러운 입장권에 불과하다"라고 비판했다.

다카이치 또한 이번 선거전에서 아베의 '정치적 도구'에 불과할 수 있다. 아베로서는 다카이치가 총리가 되지 못하더라도 보수층의 표심을 최대한 분산시켜 자신의 최대 정적인 이시바를 견제하고, 자신의 편으로 여기는 기시다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총리직에서 물러난 아베는 재임 시절 자신의 측근이 운영하는 사학 재산인 모리토모 학원에 국유지를 헐값에 매각하고, 이 과정에서 공문서 조작을 강요당한 재무성 직원이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이른바 '모리토모 스캔들'에 대한 재조사 여론이 높아지면서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

이에 관련해 기시다는 지난 2일 방송에 출연해 "국민이 납득할 때까지 조사를 계속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재조사를 원하는 국민적 여론과 당원 표심을 의식한 발언이었다. 그러자 위기감을 느낀 아베가 다카이치를 등장시켜 기시다에게 경고를 던졌다는 것이다.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 후보들을 소개하는 NHK 갈무리. 왼쪽부터 고노 다로, 기시다 후미오, 다카이치 사나에, 이시바 시게루, 노다 세이코.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 후보들을 소개하는 NHK 갈무리. 왼쪽부터 고노 다로, 기시다 후미오, 다카이치 사나에, 이시바 시게루, 노다 세이코.
ⓒ N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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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는 즉각적이었다. 기시다는 7일 기자들에게 모리토모 스캔들에 대해 "재조사는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라며 닷새 만에 말을 바꿨다. 기시다 측 관계자는 "재조사를 철회하겠다는 입장은 아니지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라고 부연했다.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려려면 당내 최대 파벌인 호소다파(96명)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아베의 지원이 필요하지만, 당원 표심도 놓칠 수 없는 기시다의 고민이 엿보인다.

반면에 다카이치는 지난 8일 총재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하는 기자회견에서 아베의 모리토모 스캔들을 재조사할 것이냐는 질문 세례에도 꿋꿋하게 "재발 방지를 위해 힘쓰겠다"라고만 답했다. 일부 기자들이 "아베의 꼭두각시입니까?"라고 고함까지 쳤지만 유유히 회견장을 떠났다.

아베와 다카이치의 협공에 이시바의 속내도 복잡해졌다. 이번에는 출마를 접고 같은 '반(反) 아베' 노선인 고노를 지원하는 쪽으로 돌아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교도통신>의 객원 해설가 오카다 마츠모토는 "아베가 다카이치를 지지하지만, 그가 꼭 총리가 돼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라며 "아베의 진짜 목표는 이시바를 물리치는 것이며, 그가 실제로 지지하는 기시다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카이치도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다. 이번 선거를 통해 인지도를 한껏 높였으니, 앞으로 벌어질 선거에서도 언제든 유력 후보로서 출사표를 던질 수 있다. 다카이치는 총리가 되든 못 되든, 아베가 당내 영향력을 강화하고 정적들을 견제할 수 있도록 해주는 '꽃놀이패'인 셈이다.

그러나 다카이치가 저조한 성적에 그친다면, 이는 곧 아베의 막후 정치도 힘을 잃어가고 있다는 징후일 수 있다. 자민당이 과연 극한으로 치닫는 우경화에 브레이크를 걸지, 아니면 가속 페달을 밟을지 이번 총재 선거를 유심히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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