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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글쓰기 그룹 '대체왜하니?'는 초4에서 중3까지 10대 사춘기 아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엄마 시민기자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편집자말]
 아이들은 맥시멀리스트다.
 아이들은 맥시멀리스트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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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이걸 왜 안 버리는 거야?

미니멀리스트 못지않게 맥시멀리스트도 많은 시대다. 최소주의로 살든 최대주의로 살든 본인의 가치관에 따라 사는 것이라 왈가왈부할 순 없지만, 내가 왈가왈부할 수 있는 단 두 사람, 참견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경우가 있다면, '내 아이들의 쓸데없는 짐'에 관한 것이다.

내 뜻대로 미니멀리스트로 살라고 할 수는 없어도 불필요한 맥시멀리스트는 지양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이토록 절실하게 든 것은, 내가 같은 공간에서 그 짐을 치우고 떠안으며 생활해야 하는 엄마이기 때문이다.

'비움'은 나이가 들어야 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아이들은 맥시멀리스트이다. 필요를 따지지 않고 많이 사들여서가 아니라, 미술시간에 만든 조잡한 장식품이나, 낙서가 된 종이, 친구들에게 선물 받은 소소한 장난감이나 학용품, 수십 개의 필통(심지어 너무 더러워졌거나 고장이 난)들을 도무지 버릴 생각을 하지 않아서이다. 한번 손에 들어온 것은 절대 놓지 않겠다는 단호한 그들의 신념은 간단한 설득 가지고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어릴 때부터의 추억이 깃든 인형이나, 유난히 애착관계에 있던 장난감, 그리고 충분히 장식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자잘한 장식품들은 단언컨대, 나도 그 효용을 인정한다. 다만 뭐에 쓰려 했는지 알 수 없는 종이 쪼가리들과 아주 작은 장난감들, 불량품들, 심지어 먹지도 않을 젤리며 초콜릿까지 아이들의 수납함에 살고 있는 오만가지의 잡동사니들은 왜 버리면 안 되느냔 말이다.

왜 그렇게 낡고 쓸모없어 보이는 물건에 집착하는지 모르겠지만, 신기하게도 손톱만 한 물건들에도 나름의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있다. 그러나 물건은 물건일 뿐, 효용을 다한 물건과는 이별도 할 줄 알아야 하는 법!

무한 고민 끝에 나는 아이들에게 '버리지 말고 나누자! 판매금액은 모두 네 것!'이라는 조건을 걸고 당근 거래를 제안해 보았다. 게다가 <상위 1퍼센트 자녀교육의 비결>이라는 책에서 보면 영국 최대의 중고거래 사이트 창업가도 중고거래를 통해 경제 감각을 키웠다고 했지 않았나.

"어릴 때 이베이를 알게 되어 집 안 여기저기에 굴러다니는 필요 없는 물건을 팔아 돈을 벌 수 있겠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 계기였습니다. 처음엔 중고 물품 자선 가게에 물건을 가져다주거나, 다락에 치워 놓으려던 물건을 파는 식으로 작은 규모로 시작했죠.

사진을 찍고 설명을 달아 올렸더니 사겠다는 사람들이 전국 곳곳에서 나타나 놀랐어요. 어머니는 제 덕분에 집 안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만족스러워했고, 저에겐 필요 없는 물건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물건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이거다!' 싶었다. 일단 마음이 끌린 데다, 이미 아이들에게 중고거래에 대한 유익한 점과 경제관념을 가르치기 위해 당근 거래를 실천하고 있다는 후기를 보고는 더는 망설일 것이 없었다. 물론 나는 경제관념보다는 '비움'에 방점을 두었지만.

순조롭던 첫 당근 거래, 그런데

아이들에게 너희에게 필요하지 않은데 친구들이나 동생들에게 필요할 것 같은 물건들을 내놓아 보라고 했다. 내심 거실 한가득 벼룩시장을 열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했건만, 아이들이 내놓은 것은 내가 생각했던 옷이나 쓸데없는 장난감이 아니라 의외로 탈덕한 연예인의 포토카드나 포스터, 그리고 굿즈였다.

쏟아져 나오는 것이 내가 생각한 것들이 아니란 점이 함정이었지만 어찌 첫술에 배부르랴. 이전에 좋아했던 연예인을 정리하는 것이라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부피가 상당히 초라했다. 저거 몇 장 없어져 봐야 티가 날까, 싶은 마음에 나도 모르게 한숨 섞인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런데 이걸 누가 사?"
"다 사지~ 엄마 내가 이거 얼마나 어렵게 구했는데, 애들도 탈덕하면 당근에 다 팔아."


그러니까, 벌써 아이들은 입덕과 탈덕을 반복하면서 경제관념까지 생겨난 것이었다. 우리 아이만 처음이었지, 벌써 사고팔고 하는 시장경제를 몸소 체득한 아이들이 기특했다. 그러나 그 정도의 물건으로는 미니멀리스트인 엄마를 절대 만족시킬 수 없었다. 나는 아이들을 구슬려 몇몇 학용품들과 장난감들을 당근에 내놓았다.

아이들의 당근 거래는 순조로웠고, 부족하지만 꽉 차 있던 수납이 조금씩 헐렁해지는 기분은 무척이나 좋았다. 그 후로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당근 거래에 글을 올리면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어느 날 올라온 글을 본 순간 당혹감이 몰려왔다.

"제가 초6인데요, 엄마 몰래(?) 몇 달 전부터 선크림, 컨실러, 섀도, 뷰러, 틴트, 노세범 파우더 등등 조금씩 사모아서 화장을 하고 다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혹시 너무 이른 것 같다고 생각하시나요?"
 
 중고거래가 오래도록 안전하기 위해선 더욱 탄탄한 안전장치가 필요하지 않을까
 중고거래가 오래도록 안전하기 위해선 더욱 탄탄한 안전장치가 필요하지 않을까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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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가 아닌 고민 상담이라는 것도 신기했지만, 초등생이 주로 어른들이 활동하는 앱에서 이렇게 채팅을 시도하는 일이 조금은 걱정스러웠다. 초등학교 6학년이 화장을 하는 것이 이상한 게 아니라, 이런 채팅과 화장품 판매를 미끼로 초등학생이 범죄에 노출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4월 SBS 보도에 따르면, 한 남성이 당근마켓을 통해 바지를 구매하려던 10대를 집에 들여 강제추행을 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우리 집의 경우, 아이들 폰에 당근 앱을 까는 대신 나의 당근 계정으로 거래를 했었다. 혹시나 싶어 아이들 폰으로 당근 앱을 깔아보았더니, 미성년자 확인 절차 없이 앱 사용이 가능했다. 

물론 중고거래앱이 범죄의 온상인 건 아니고 거래자가 늘 이런 위험에 노출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아이들에게도 여러모로 유용한 중고거래가 오래도록 안전하기 위해선 더욱 탄탄한 안전장치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아직도 충분히 비워지지 않은 짐들, 당근에서도 외면받은 우리 아이들의 저 많은 추억거리들은 과연 언제쯤 쓰레기통으로 갈 수 있을까. 새로운 주인을 찾을 수는 있을까?

group대체왜하니 http://omn.kr/group/teen_why
초4에서 중3까지 10대 사춘기 아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엄마 시민기자들의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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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고 글쓰는 일을 좋아합니다. 따뜻한 사회가 되는 일에 관심이 많고 따뜻한 소통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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